여의천을 지나 연륙교와 연도교를 지나 봉래산을 찾아간다.
봉래 소재지는 외곽길이 뚫렸다.
구불한 고갯길도 검은 아스팔트가 깔리고
길도 넓히는 중이다.
봉래남분교장 위를 지나 고개를 오르니 봉래산 이정표가 있다.
통신회사 중계탑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오르니 1시가 다 돼 간다.
빗방울이 몇 개 떨어진다.
단풍도 남아있고, 소사나무 매끈한 몸뚱이에 짙푸른 마삭줄 등의
덩굴들이 감아 올라가고 있어 남국의 정취를 풍긴다.
주변이 잘 정돈된 가파른 길을 지그재그 오른다.
내려오는 이들이 있어 보니 아는 얼굴들이다.
송규환 송태근 등 옛 선혜학교 직원들 단합산행이란다.
송선배가 내려가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지만 사양하고 오른다.
금방 능선에 닿는다.
소사나무 작은 낙엽이 그득한 산길이 좋다.
기분이 좋아 혼자 웃는다.
바위사이를 돌기도 한다.
저 아래 저수지 위로 푸른 삼나무? 숲과
그 바다 쪽으로는 우주항공 관련 건물이 한창 공사중이다.
봉우리를 몇 개 넘자 염포 앞바다에 햇빛이 떨어진다.
바위를 올라가 바다를 본다.
넓적바위에서 얻은 막걸리를 꺼내 마신다.
안주가 없으나 마실 만하다.
정상에는 봉화대가 쓰러진 채 무성의한 돌탑이 하나 있다.
시름재인가에서 임도를 걷다가 삼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아름드리 나무가 참 좋다.
산책로같은 길을 따라 앞 뒤로 사진을 찍으며 걷는다.
독립가옥 한 채가 펑퍼짐한 구릉을 끼고 수리 중이다.
아직도 단풍이 남아있는 길을 따라 차 있는 곳으로 오니 4시 반이 다 돼 간다.
배가 고프다.
나로도 축정항?에 가서 매운탕에 소주 한 잔 했으면 좋으련만.
포두에서 옛 기억을 살려 선대원의 집을 찾았다.
다행이 그는 집에 있었다.
오랜만에 아들의 친구가 찾아왔는지 그의 노모가 반긴다.
난 들어가지도 않고 밖으로 나오라 한다.
아우야에 가서 난 보리밥을 먹고 그는 막걸리를 한 옹구 마신다.
정당의 도당 사무처장을 하다가 중국을 3년 가까이 떠돌았댄다.
금탑사에 드나들며 금탑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중이랜다.
산동 쪽을 이은이와 다시 가서 그런 이야기를 쓰겠단다.
잡문이 아닌 작품을 써야하는 부담이 있댄다.
난 그 때가 다 완성이라고 글을 얼른 쓰라고 흰소리를 한다.
그를 내려주고 과속하여 광주로 왔다.
풍양에서 산 향주 막걸리를 최 과장님과 문교장님께 5병씩 선물하였다.
긴 하루였다.
첫댓글 봉래산을 다녀오셨군요
저는 이날 우주센터에 다녀왔는데.....
산사랑=선생님 공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