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영'은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성당에 열심히 다녔으며 나에 대하여 매우 관심이 컸다.
성당에서 그녀는 모든 여성 신자 중에서 아름다움이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날씬하게 큰 키에 균형 잡힌 몸매와 갸름하고 아름다운 얼굴, 하얀 피부에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 천사와 같았다.
그녀는 어느 곳에 가던지 남의 시선을 받을 만큼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겸손하고 말이 적으며 어른들에게 순종하고 성당의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그야말로 참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가르치는 성가대에 열심히 나왔고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잘 따라왔다. 아름답고 순진한 그녀가 나는 매우 사랑스러웠다.
그녀는 학벌이 높지 않았고 재벌의 딸도 아니어서 더욱 좋았다. 월남한 부친은 생활력이 강하여 4남 2녀의 대 가족을 거느리고 알뜰하게 자식들을 키웠다. 장남과 차남은 사업경영으로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살았다.
'신영'이를 특히 좋아 한 사람은 우리 어머니와 나의 여동생들이었다. 그녀는 우리 집에 날마다 드나들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집안 청소 등을 스스로 해주기도 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가끔씩 나의 방에 들어와 내가 없는 데도 나의 방을 깨끗이 청소하고 기물을 정돈하기도 하였다.
나와 '신영'은 부드럽게 가까워졌으며 성당의 신자들도 둘 사이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정 선생은 ‘세실리아(신영의 본명)’와 결혼 할랑가?"
"결혼 허것구만 시어머니 될 사람이 저렇게 좋아허는디......"
사람들은 이렇게 수근거렸다.
사실 나의 어머니는 그녀를 며느리감으로 점찍고 계셨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그녀사이의 좋은 감정을 짐작하고 있었는가보다.
성탄절이 가까워지고 성당의 청년들은 아기예수의 구유 꾸미기에 밤마다 모여서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고 이것저것 소품들을 만들고 구유와 크리스마스 트리 꾸미기에 바빴다.
저녁에 하던 일이 끝나면 신부님과 함께 술을 마시며 재미있는 농담을 주고받고 노래도 부르고 간단한 게임도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그녀는 항상 내 곁에 있으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참여하였다.
통금시간이 넘어서 우리는 헤어지고 각자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성당 울안에 있는 관사에 살고 있었지만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나의 방은 어머니가 계시는 큰방과의 사이에 유치원으로 쓰던 넓은 마루방이 있었으므로 호젓하였다.
새벽 한시가 지났을 무렵 '똑똑' 내 방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요?!"하고 나직하게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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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세실리안데요...! 집에 문이 잠겨있어서 못 들어갔어요...!"
"그럼 어떻하지?"
"선생님 저 지금 추워요...!"
"알았어 저쪽으로 들어와!"
방문을 조용히 열어주면서도 나는 귀신에게 홀린 듯 하였다.
이 여인이 이렇게 늦은 시간에 총각의 방문을 두드리다니... 충격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같고 연애소설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녀는 추위에 파랗게 질려 떨고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고 나는 얼른 그녀의 신발을 집어 방안 한쪽 구석에 감췄다. 행여 누가 오해를 할까 우선 두려웠다.
추위에 얼어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더욱 예뻤다.
나는 용기가 생겨 그녀의 두 손을 감싸 잡아 보았다. 적당히 차가운 손의 폭신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전달되었다.
그녀를 앉히고 요를 들어 따뜻한 방바닥에 발을 넣도록 하고 그 위를 요와 이불로 덮어주었다.
그녀는 수줍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저 욕하시고 계시죠..?"
"아--니!"
"어머니가 아시면 큰일나니까 비밀로 해 주세요!"
"그럼 집에는 언제 돌아갈래?"
"내일 아침 여섯시에 가면 돼요?"
"뭐라고? 그게 뭔 소리여?"
"아침 여섯시 넘으면 문이 열려요! 아버지가 아침운동 가시거든요! 그 때 들어가면 안 들켜요!"
"제가 알아서 할게 안심하세요!"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이 여인은 무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이 한 밤 피끓는 젊음을 어떻게 달래야 한단 말인가?
수많은 갈등과 어색함이 온 방안에 가득한 채 시간은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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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따뜻하네요!"
그녀는 뺨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더우면 코트 벗어서 걸어!"
그녀는 일어서서 코트를 벗어 벽에 박힌 못에 걸었다.
가는 털실로 짠 티셔츠가 그녀의 가냘픈 몸을 가리고 있었다.
여인의 모습을 단 둘이 있는 좁은 공간에서 그것도 나의 방안에서 한밤중에 보는 것은 정말 야릇한 흥분과 환희였다. 온통 그녀의 향기로 온 방안의 공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달라붙은 얇은 셔츠가 그녀의 몸을 그대로 들어내 보이고 있었다. 빈약한 듯 수줍게 융기한 가슴과 유난히 가느다란 허리가 가냘프고 아름답게 보였다. 평소에 보는 것 보다 훨씬 가냘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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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피곤한 듯, 그녀는 무릎을 세우고 무릎을 덮은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녀의 호흡소리가 고르고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베개를 가져다 적당한 위치에 놓고 그녀를 뉘었다. 그녀는 힘없이 누었다.
고요히 눈을 감고 깊게 잠든 그녀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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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내게 찾아 온 여인..... 나를 믿고 두려움 없이 찾아온 철없는 여인.....
가슴이 뛰고 나의 관능에 불이 붙어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여인을 범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고 어떻게 하여야하는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한 가지는 분명하였다.
참아야 한다! 안 된다! 참아야 한다!
방문 밖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에 전선이 '윙-'하고 우는소리가 들려왔다. 가랑잎들이 이리저리 부스럭거리며 나뒹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밤은 매우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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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거리며 그녀가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나는 벽에 기댄 채 잠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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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시였다.
아직 밖은 깜깜하였다.
부스스한 머리를 가다듬으며 미안하고 열적은 미소를 보내는 그녀에게서 청순가련미 같은 것이 풍겨왔다.
"지금 가야 돼요!"
그녀는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종종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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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자신의 욕망과 싸워 이긴 나의 이성에 감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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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고 학교는 운동회준비로 무척 분주한 일상이 계속되었다.
가을 예능경연대회에 합창부를 지도하여야하고 운동회의 학급경기와 곤봉체조를 지도하여야하기에 하루하루 매우 바쁜 일과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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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날 그녀가 성당에 나오지 않았음을 알았지만 친척집에 다니러 갔겠지 라고 가볍게 생각하였다.
다음 주일에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에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녀와 가까운 친구에게 그녀가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다.
"아직 그것도 모르고 계셔요?"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는 것을 보고 무언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구나하고 느꼈다.
"무슨 일인데?"
"병원에 입원한지가 벌써 며칠인데요 !"
학교의 갖가지 잡다한 일들은 나로 하여금 까마득히 그녀의 신상에 대한 관심을 흐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 내가 좋아하는 여인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는데 문병도 안 가다니............. 얼마나 나를 원망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하였다.
외로운 병실에서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얼마나 많은 원망을 하며 눈물을 흘렸을까?
부끄럽고 미안하고 착잡한 마음이 교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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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왜 나 혼자서만 모르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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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이대로 있을수는 없다 지금 당장에 찾아가서 일단은 그녀를 위로하고 사과를 해야한다.
음료수 한 상자를 사 들고 병 문안을 한 나에게
"보기 싫어요! 그냥 돌아가세요!"
싸늘하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늦어서 미안해! 난 정말 이렇게 아프고 있는 줄 몰랐어!"
"듣기 싫어요! 어서 나가세요!"
그녀의 원망과 실망, 저주와 혐오가 범벅된 싸늘한 표정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나에게 등을 보이며 까딱도 하지 않고 환자용 이불을 끄집어 얼굴까지 묻어버렸다.
"미안해! 정말 몰랐다!"
"왜 내게 알리지 않았을까?"
"이제 화 풀어!"
무슨 말을 하여도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답답하고 미안하고 착잡한 심정으로 병실 문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 어머니는 어머니의 친구인 예노파 자매님과 말씀을 나누고 있었다.
"어머니! 신영이 아픈 것을 몰랐었어요?"
나는 너무나 이상하여 그렇게 물었다.
예노파 자매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아이! 정선생! 인제 박 양이 정 선생 안만난디야!"
"왜요? 누가 그래요?"
"이런 집에 시집올라고 누가 허겄어! 긍게 정 선생이 먼저 포기혀!"
나는 어이가 없었다.
"몸도 아프고 이렇게 사는 집에 시집도 오기 싫고 그쪽 부모가 이리 시집 보낼라고도 하지 않아서 병났디야! 긍게 잊어뻔져!!"
도대체 누가 어떤 말을 하였고 어떻게 하였기에 그녀의 마음이 돌아서 버렸고 왜 나 혼자서만 그녀의 입원한 사실을 알지 못하였는지 궁금하였다.
그 후로 그녀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으며 병 치료를 위하여 요양을 하려고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말도 들렸고 전주의 다른 직장에서 그녀를 데려갔다는 소리도 들렸지만 정확한 거주지를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나는 나의 오해를 풀고 그녀와 다시금 좋은 관계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였으나 끝내 그녀는 내곁에 나타나지 않았다.
허망한 공백이 나의 가슴에서 사라지기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다.
다시는 사랑을 말자! 다시는 공상 속에서 여인을 그리워하지 말자!
나의 처지가 좋아지기 전엔 나는 결혼 같은 건 생각도 말자!
날마다 퇴근길에 먼 하늘을 바라보는 나의 눈엔 마른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나오고 하늘은 보라색으로 슬픈 바다가 되어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의 작은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저축하셨다.
또한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집 뒤에 돼지 막을 지어 돼지를 기르기도 하고 삯일을 얻어다 하시기도 하며 외아들의 장가 밑천을 장만하는 모습이 눈물겹도록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