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와 고추잠자리(숙명)
아침출근시간에 다리를 건너서니 녹음 우거진 강변언덕 숲에선 매미소리가 들려오고 그 아래에 고추잠자리가 이리저리 무리지어 맴을 돌고 있었다.
고추잠자리를 보니 가을이 왔나보다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엄격히 말하자면 고추잠자리는 여름부터 우리 곁에 다가온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제껏 보이지 않던 매미와 고추잠자리가 왜 이제 나타난 것일까? 일반적으로 매미나 고추잠자리가 나타나는 시기는 7월 초순이다. 그런데 올해는 더위가 일찍 시작되었었는데도 녀석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행여 급격한 기후변화보단 경기불황에 따른 세상 사람들의 심기 불편함을 짐짓 여겨 나타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어릴 시절 고향 정자나무에서 초여름부터 신나게 울어대던 매미는 우리들에게 음악의 진수를 알려줬고, 삼베 옷가지속의 연약한 피부가 거친 나뭇가지에 문질러지는 쓰라림을 참아가면서도 더욱 더 나뭇가지 높은 곳까지 오르게 하는 만용을 길러주었었다.
그러한 한 여름 매미소리는 당시엔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그들의 노래를 듣는 것이 요즘의 어린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MP3를 이용하여 음악을 듣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매미는 번데기가 성충으로 자라려면 날개를 펴고 말려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마저 짜증나게 하는 장마철이 끝나자마자 정신없이 울어대는데 주택가에까지 날아와 밤늦게까지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민원이 발생하는 등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또한 매미는 참매미와 말배미로 구분 하는데 참매미는 그나마 나은데 말매미는 시도 때도 없이 큰소리로 울어대는 바람에 사람들이 잠을 설치거나 소음공해에 시달려야 해서 오랜 세월동안 지하에서 철지부심하고 기다려온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보상받지 못하고 만다.
고추잠자리는 어떤가? 가을하늘을 높이 날던 고추잠자리를 보면 막연하게도 고향에 묻혀 있으면서도 마음속에 또 다른 고향을 만들어내어 그리움을 피워냈던 생각이 났었다.
누나가 장독대 근처에다 봉숭아와 채송화를 심고, 담장에 붙여 눈부시도록 새빨간 꽃이 피던 칸나를 심어 꽃을 피워 낼 무렵이면 어김없이 고추잠자리가 나타나 맴을 돌곤 하였었다.
나는 그 고추잠자리를 잡으려 대나무가지로 만든 빗자루를 들고 다가가지만 날쌘 그 녀석들은 나의 곁을 잠시 비켰다 다시 모여드는데도 잡기란 쉽지가 않았었다. 어쩌다 옥수수 긴 잎사귀에 앉아 조는 틈새에 행여나 나의 그림자라도 비칠까 조바심을 하며 살며시 다가가 살짝 꼬리를 잡아내는 행운도 있었었다.
그런데 여름철과 가을에 하늘을 나는 것이 모두가 고추잠자리가 아니란다. 그중 암수가 교미상태로 붙어서 날아다니는 녀석은 주로 고추잠자리가 아니라 된장잠자리라고 하였다. 문제는 그러한 구분을 떠나서 아직은 고추잠자리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고 그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고추잠자리가 늘어난 이유는 생태계 변화로 물속에서 애벌레를 잡아먹는 물고기가 감소했고, 고추잠자리를 먹이로 하는 제비가 사라졌기 때문이란다.
매미와 고추잠자리를 두고 보면, 두 개체 모두가 그들이 기다려 온 유충기간에 비하여 성충으로서 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다.
매미는 유충으로서의 기간이 5∼7년이라는 비교적 긴 세월을 거친 후 성충으로 생존하는 기간은 기껏 2∼3주이고, 고추잠자리는 유충기간이 1∼수년을 물속에서 지내다 성충으로 1∼6개월 정도를 지낸다고 하였다. 둘 다 무더운 여름철을 위하여 그 기다란 세월을 기다려 온 것이다.
매미가 울고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나는 것을 두고 그들이 영광이고 영화를 누린다고나 한다면? 아니! 그게 무슨...(지혜와 부와 영광을 함께 부여받은 솔로몬의 영화에 비하면 그 까짓 짧은 삶 따위를 무슨 영광이라 하랴마는) 그래도 그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생각해 본다면 축복해 주어야 마땅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방송 드라마에선가 26년이라는 긴 세월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 오다 중병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 있었다. 그 시한부 인생이 출소하여 자신을 가해자로 판단하여 사지로 밀어 넣은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려다 발각이 되어 또다시 법정에 서고 말았다.
강한 자에게는 너무나도 느슨하여 호지명 군대 개머리판(정해진 길이가 없고 제멋대로...한때는 그렇게 표현했음)같은 법이라는 요물이 약자인 그 시한부 인생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왔다.
다행이 새로운 재판을 통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보상받는 순간보다,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더 짧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현실과 배심원들이 느끼는 극히 인간적인 법 감정이 그를 구렁텅이에서 건져내는 것을 보았다. 그걸 두고 영광스런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무슨 글을 쓰려고 자판을 잡았더라?
오랫만에 가져보는 친구들과 허심탄회한 술자리를 마치고 방금 막 돌아 온 길이라 아직은 정신이 혼미하다. 그래도 아침 출근시간에 듣고 보았던 매미 우는소리와 고추잠자리가 노니는 모습을 보니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있어 뭔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앞에서의 매미나 고추잠자리의 화려할 것 같은 찰나를 접하고 영광이니 영화니 하는 따위는 사치스런 애기이고, 그들도 인간사 계율처럼 그들의 생을 두고 삶과 죽음의 무게를 저울질 하면서도 다만 자손의 번식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앞에서 그렇게 울고, 맴돌며 몸부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내 마음속에 혼란스러움이 일어났다.
첫댓글 어릴적 고추잠자리 실에 묶어 날리고, 매미 한마리 잡으면 대박이었죠. 손에 전해지던 파닥거림이 아직도,,, 일욜오후에
자전거 타고 강변 나갔더니 코스모스며 무수한 잠자리떼에,,벌써 초가을이 감지,,ㅋㅋ 너무 빠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