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3월 3일
대한항공 화물기 북한비행정보지역 첫 비행
1998년 3월 3일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대한항공 보잉 747 화물기가 북한 비행
정보구역(FIR)을 통과했다. 북한의 하늘이 열리는 순간, 우리 조종사들은 국제관례를 깨고 북한 관제사들과 우리말로 대화 동포
애를 나누면서 한민족임을 확인했다.
첫 대화가 이뤄진 것은 항공기가 북한 비
행정보구역에 진입하기 직전인 오전 8시
57분 무렵. 대한항공 부기장과 평양관제
소의 관제사간의 대화였다. 이 때만 해도 국제관례상 영어로 얘기했다.
이날 대한항공 화물기가 통과한 구간은 북
한측 비행정보구역 3백km. 일본 서해안을 따라 내려오던 종전 항로보다 6백km가 짧고 상층 편서풍의 영향도 적어 운항시간
이 34분 단축되는 효과가 있었다. 이날의 순조로운 시험비행으로 한국 국적기는 1998년 4월 23일부터 북한 비행정보구역
을 이용해 미주로 향할 수 있었다. 이로 인
한 유류 절감액은 연간 2천만 달러(3백
20억원)에 달했다.
▶1998년김종필 국무총리 서리 취임
▶1997년파키스탄 브레이크 고장으로 열차 탈선, 125명 사망
▶1996년‘연인’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사망
👉🏿 영화 ‘연인’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여류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살아 생전 “살아있는 프랑스 작가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뒤라스는 1914년 베트남의 사이공 근처에 있는 지아디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어린시절은 주로 메콩강 유역에서 자랐고, 그때의 추억과 상념은 뒤라스의 거의 모든 작품에 배어 있다. 192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자전적 경험을 담은 ‘연인’(1984년)은 14세 프랑스 소녀와 중국인 부호 아들의 육체적 애정을 다룬 작품으로 그녀에게 프랑스 최고 권위의 공쿠르상을 안겨줬다.
▶1995년한국-체코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
▶1994년UH 60 헬기, 공중 폭발사고. 조근해 공군참모총장등 사망
▶1994년근로자의날, 5월1일로 변경
▶1993년스페인 기타 연주자 카를로스 몬토야 사망
▶1992년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대통령, 보스니아 독립선포
▶1992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독립
▶1990년북한 제4땅굴 발견1985년칠레 강진, 150명 사망
▶1981년전두환, 12대 대통령에 취임
▶1978년솔즈베리협정 조인
👉🏿 짐바브웨 로디지아(Zimbabwe Rhodesia)는 1979년 6월 1일부터 1979년 12월 12일까지 로디지아가 흑인의 정치 참여를 인정하고 확대하면서 사용한 명칭이다. 로디지아의 스미스 수상과 온건파 흑인지도자 무조레와 주교가 1978년 3월 3일 솔즈베리 협정을 체결해 연말까지 흑인 다수파정권을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에 따라 1979년 6월 1일 무조레와를 최초의 흑인 총리로 한 짐바브웨-로디지아공화국을 발족시켰고 1980년 4월 짐바브웨로 독립하여 짐바브웨 아프리카 국민연합(ZANU)이 탄생했다.
▶1977년미국하원, 윤리강령 채택
▶1975년유엔측 군사정전위서 북한의 서해상공 침해를 항의
▶1974년터키 여객기가 파리근교서 추락, 345명 사망
▶1973년한국방송공사 창립
▶1966년국세청, 수산청 발족
▶1963년페루에 군사 쿠데타
▶1961년모로코 하산2세 즉위
▶1958년북한, 김두봉 숙청
👉🏿 김두봉(1889 ~ 1958?)은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한글학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구한말기에는 한글학자 주시경의 수제자로 유명했다. 일제강점기 시절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잠시 활동하였다. 일제 강점기의 한글 사전인 《조선말본》과 《깁더 조선말본》의 저자였으며, 《말모이》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이다. 중국에서 학자 활동과 무장투쟁 활동을 하다가 1935년 김규식, 김원봉 등과 함께 민족혁명당을 창당 조직하였다. 광복 후에는 38선 이북으로 귀환, 북한의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58년에 숙청된 것으로 추정된다.
▶ 1958년북한, 천리마운동 시작
👉🏿 천리마운동은 김일성이 1956년 12월 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자력갱생을 강조한 뒤 강선제강소를 방문, ‘천리마를 탄 기세로 달리자’며 제안한 것이 시초가 됐다. 천리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전설속의 말. 당시 북한은 김일성이 1956년 6월부터 50여일간 소련과 동구권 등을 순방하며 원조를 요청했으나 성과를 얻지못해 부득이 홀로서기를 감내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천리마운동은 인민들의 자발적인 역량을 총동원해 대중의 증산의욕을 북돋기위한 경제적 목적도 컸지만, 사상고양을 통한 혁명노선 강화도 못지않게 중요했다.
▶1957년이스라엘군, 가자지구서 전면 철수 선언
▶1957년나토 상임이사회서 영국군대 감축안 토의
▶1956년대한증권거래소 개점
▶1956년증권거래소 발족1955년미국-중국 방위조약 정식 발효
▶1950년유엔은 한국에 군사감시단 파견을 결정
▶1949년한국-필리핀, 국교수립
▶1938년일제, 조선교육령 개정
▶1937년독립운동가 김동삼 선생 옥사
👉🏿 많은 애국지사들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벌였지만 김동삼 선생은 시종 일본군이 우글거리는 만주벌에서 무장항일투쟁을 고수한 ‘광야의 맹호’였다. 1908년 고향 안동에 사립 협동학교를 세워 젊은인재를 키우다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열혈청년을 거느리고 만주로 건너가 1931년 하얼빈에서 체포될때까지 오로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만주벌에 바친 일송의 20년은 첫째가 독립운동, 둘째가 군관양성, 셋째가 재만주 동포의 민생안정과 권익옹호, 넷째가 교육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 때 하얼빈에서 붙잡혀 본국으로 강제송환,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이날 옥사했다.
▶1934년가야금 명인 한수동 사망
▶1923년주간지 `타임` 창간
▶1919년고종황제 국장 거행
▶1918년소련-독일간 강화조약 조인
👉🏿 레닌 정권이 1918년 3월 3일 독일 및 동맹국과의 강화조약에 조인했다. 소비에트 국가 성립이후 처음 체결한 이 조약으로 동부전선에서의 전쟁은 중단됐다. 소비에트와 독일-오스트리아-불가리아-터키 4국과의 강화조약 협상은 1917년 12월부터 동폴란드 브레스토-리토프스크에서 진행됐다. 손해를 보더라도 전쟁보다는 강화가 낫다고 주장하는 레닌과 불공정한 강화조약 반대와 철저항전을 주장하는 부하린, 전쟁을 하며 협상하자는 트로츠키간의 의견 대립으로 소련 내부가 어수선했다. 이 조약은 소련 역사상 가장 굴욕적인 조약의 하나로 영토의 1/4과 주민의 1/3을 상실했다.
▶1917년북한 정치관료 오진우 출생
▶1915년영화 `국가의 탄생` 개봉
👉🏿 세계 영화사상 최초의 장편영화로 기록될 러닝타임 3시간짜리의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은 당시로선 대단한 11만 달러를 쏟아부어 개봉후 미 전역에서 1,500만달러 수입을 기록하며 영화산업이 숨은 벤처산업임을 확인시켰다. 하지만 이날 영화가 개봉되자 전국적으로 항의시위가 줄을 이었다. 너무도 명백한 인종주의에 항의, 미국 유색인종 지위향상 협회(naacp) 수천 회원이 극장마다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사물이나 사람의 얼굴을 스크린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 전체광경을 파노라마식으로 보여주는 `롱쇼트` 등의 혁신적인 기법을 도입, 영화사에 큰 영향을 끼친 점은 부인할 수 없다.
▶1910년록펠러재단 설립 신청
👉🏿 미국 최대갑부 존 록펠러는 동업자들과 카르텔을 형성해 성장가도를 달려온 ‘석유왕’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뇌물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키고 마는 악랄한 기업가로 생각했다. 록펠러는 자선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1910년 3월3일, 그의 자선사업에 법적인 근거가 될 법안이 미 상원에 제출됐다. 대학 및 의학연구소 설립 그리고 박물관과 대규모 국립공원에도 거액을 출연지만, 일부에서는 ‘유다의 키스’라며 여전히 그의 재단신청 의도를 불신했다. 재단이 정식 설립된 것은 1913년 5월14일 뉴욕주의회가 설립을 허가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나서였다.
▶1898년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결성
▶1895년미국 육군 장교 리지웨이 출생
▶1883년한국 일본간 해저전선부설 조약 체결
▶1861년러시아 농노해방령 공포
▶1847년전화발명가 그레이엄 벨 출생
▶1709년독일 화학자 마르그라프 출생
▶1703년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 사망
▶1657년영국 생리학자 하베이 사망
▶
https://youtu.be/kBGbUsyoE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