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앞의 야만인들 [브라이언 버로 & 존 헤일러/이경식/크림슨/29,000]
인수합병, 여론조작, 사교계 등 일반인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수준의 금융행위들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금융위기가 시작되기 약 1년 전인 2007년 5월, 벤 버넹키 FRB의장은 “최근 불고 있는 차입매수 붐이 경제의 위험요인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인 발언을 했다. LBO(차입매수) 열풍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월스트리트에, 더 나아가 세계경제위기에 상당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외국계 자금이 국내 M&A시장에 유입되면서 국내 최대의 맥주회사 OB 가 미국 사모투자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에 넘어갔다. 이로 인해 국내맥주시장은 진로하이트그룹과 KKR OB맥주 간의 경쟁구도가 됐다.
1980년대 중반에 이미 파키스탄이나 그리스의 국민총생산을 상회하는 구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KKR은 2005년 삼성생명 지분인수를 시도한 바 있으며, 2009년 OB맥주를 인수하면서 한국투자에 첫 발을 디디게 됐다.
KKR은 1976년 제롬 콜버그와 헨리 크래비스, 크래비스의 사촌인 로버츠 등 3인이 공동으로 설립환 세계 최대의 사모투자펀드이다. LBO방식으로 업종을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기업사냥꾼이며, 33년간 總 4,230억 달러를 투자해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 월트디즈니를 모두 합한 것보다 많은 매출을 올렸다.
‘문 앞의 야만인들’은 전직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브라이언 버로와 존 헤일러가 RJR나비스코 인수과정을 재구성한 1990년 作으로, 미국에서 재출간된 20주년 기념판을 옮긴 국내 첫 출간본이다.
‘RJR나비스코의 몰락’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888년 월스트리트를 뒤흔들었던 LBO(차입매수) 열풍을 파고든다.
저자들은 ‘소리 없는 총성’이라고 하는 M&A의 전문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이들의 여론조작과 전략회의, 사교파티, 입찰전쟁을 직접 본 듯이 세세하게 묘사한다.
그 결과는 만천하에 공개된 상태지만, 읽다 보면 결말이 궁금해질 정도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저자들은 기자 출신답게 주요인물들을 100차례 이상 대면 인터뷰한 내용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들이 인터뷰한 인물은 콜버그, 크래비스, RJR나비스코 최고경영자 F. 로스 존슨 등이다.
이 인수전쟁의 끝은 허무하고도 씁쓸하다. 저자들은 20년이 흐른 뒤 후기에 “RJR나비스코의 LBO거래가 이뤄진 뒤로 이 거래와 관련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쓰라린 고통만 당했다”는 스티븐 골드스톤 前 RJR나비스코 최고경영자의 코멘트를 인용한다.
저자들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사모투자펀드의 황금기가 끝났다고 말하면서도 “야만인들은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자기들이 입은 상처를 닦으면서 한 번 더 문을 박차고 들어올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