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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2편 [표준새번역](안식일의 찬송시)
가장 높으신 하나님,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며, 밤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일이 좋습니다.
열 줄 현악기와 거문고를 타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손수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면서, 환성을 올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이 어찌 이렇게도 큽니까?
주님의 생각이 어찌 이다지도 깊습니까?
우둔한 자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미련한 자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악인들이 풀처럼 돋아나고, 사악한 자들이 꽃처럼 피어나더라도,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원히 높임을 받으실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저 원수들, 주님의 저 원수들은 기필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모두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들소처럼 강하게 만드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어 새롭게 하셨습니다.
나를 엿보던 자들이 멸망하는 것을 내가 눈으로 똑똑히 보며, 나를 거슬러서 일어서는 자들이 넘어지는 소리를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이다.
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으니,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다.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올곧으심을 나타낼 것이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요,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다.
시편 92편 [개역 한글](안식일의 찬송시)
지존자여 십현금과 비파와 수금의 정숙한 소리로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1절에 포함되어 있음)
(1절에 포함되어 있음)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우준한 자는 알지 못하며 무지한 자도 이를 깨닫지 못하나이다
악인은 풀 같이 생장하고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찌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지리이다
그러나 주께서 내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이셨으며 내게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내 원수의 보응 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일어나 나를 치는 행악자에게 보응하심을 내 귀로 들었도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여호와는 나의 바위시라 그에게는 불의가 없도다
시92:1-3- 가장 높으신 하나님,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주님 이름을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침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며, 밤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일이 좋습니다. 열 줄 현악기와 거문고를 타며 수금 가락에 맞추어서 노래하는 것이 좋습니다(kjv를 반영한 표준 새 번역 인용).
찬양하며 (히//자메르)는 악기(특히 현악기)를 연주하다, 혹은 (그러한 악기 연주에 맞추어 노래하다, 라는 뜻인데 원문에 십현금, 비파, 수금 등이 1-3절의 끝에 있으나 개역 성경에서는 1절에 삽입하여 번역했는데 찬양하며, (히//자메르) 라는 용어의 의미를 고려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침에 주님의 사랑을 알리며, 밤마다 주님의 성실하심을 알리는 일이 좋습니다-
본문은 아침제사 때 주께서 그분의 이스라엘을 향하신 사랑을 알리시며 저녁 제사 때마다 주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성실히 행하심을 알려주시는 것이 감격스럽다는 표현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전법(oral law)인 미쉬나(Mishna)에 의하면 본 시편은 안식일 아침에 부르는 찬송시인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본 시의 제목이 안식일을 위한 찬송 시로 정해졌으며 매 안식일 아침에 시편 92편을 현악기의 반주에 맞추어 부르면서 제사를 행하되 먼저 어린양을 번제로 드리고 전제의 포도주를 부었다고 합니다(민28장, 대상16:40, 대하13:11, 스3:3-조석 제사).
특히 다윗 왕 때부터 사독 계열제사장들과 헤만과 여두둔을 세워 나팔과 제금들과 하나님을 찬송하는 악기로 큰 소리를 내게 하였으며 저녁 제사 때에는 출15:1-18, 과 민21:16-18, 중의 하나를 노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제외한 나머지 6일 동안 성전에서 불렀던 찬송 시는 첫째 날 시편 24편, 둘째 날 48편, 셋째 날 82편, 넷째 날 94편, 다섯째 날 81편, 여섯째 날 93편을 찬송했다고 합니다.
좋으니이다(히//토브)에 대해서는 창세기 1장의 창조 때 피조 세계가 창조자의 의도와 목적에 부합됨을 보고 이를 좋게(히//토브) 여기셨는데(창1:4, 10, 12) 본 문맥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지존자이신 그분의 계획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용어이며 시편 기자의 정서적 측면으로 보면 찬양을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확신에 따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기쁨의 표현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92:4-6-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기쁩니다. 손수 이루신 업적을 기억하면서, 환성을 올립니다. 주님, 주님께서 하신 일이 어찌 이렇게도 큽니까? 주님의 생각이 어찌 이다지도 깊습니까?
우둔한 자가 이것을 알지 못하고, 미련한 자가 이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의 행사를 인하여 내가 높이 부르리이다-
시편 92편은 하나님의 창조의 일을 마치고 안식하신 것을 기념하여 찬양하는 기도의 시가이므로 뱀의 미혹에 속아 안식을 잃은 인간에게 여호와의 안식을 주신 것을 감사하며 찬송하는 내용이니 당연히 애굽에서 구속하시고 고난의 풀무에서 건져내어 안식을 주신 새 창조를 깨달은 자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는 의미로 해석해야 합니다(시28:5-9, 사5:12).
시편 92편의 기자는 본 구절을 통하여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민족 전체의 구원 혹은 그 구원을 가져온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시92:7-11)를 찬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주님께서 창조의 일을 마치고 쉬시는 안식일에 대하여 기자의 영에 비쳐진 계시로 깨달은 바로는 하나님의 창조가 뱀의 미혹에 넘어간 인간으로 말미암아 에덴에서의 실패를 완전히 회복하신 출애굽과 광야의 인도를 거쳐서 안식의 땅에 들어가 대적들을 무찌르고 그 땅을 기업으로 받아 누리는 안식을 체험하는 자가(마11:25-30) 드리는 감사의 찬송 시입니다.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비밀스런 창조세계에 대한 통치로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성, 인간의 이해를 넘는 그 계획의 방대함, 그리고 지혜의 깊이 등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영으로 깨달은 영감을 감사의 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시106:2, 시112:2).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계획들 과 그 계획들을 실현시키는 그 방법들을 두고 감탄하는 내용인데 롬11:33-36-에서 바울님이 하나님의 비밀스런 경륜을 감탄하며 찬양하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계획들을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에 감추신 뜻을 인류의 역사에서 반드시 실현하시기에 신실하시므로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믿어야 하며 자신의 일생과 사후 세계까지도 맡겨야만 하는 분이라는 사실을 감탄하는 마음으로 노래하는 표현입니다(시40:5 사55:9, 롬 11:23).
우준한 자는(롬1:18-23) 알지 못하며- 우준한 자(히//이쉬 바아르) 바아르, 라는 표현은 잔인하다, 라는 뜻의 히브리어를 반영하여 KJV는 히//이쉬 바아르, 맹수처럼 사나운 사람들(brutish man)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기질적으로 사나운 사람에 관해서나 단순히 혼적 지능이 낮은 사람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진실한 신앙에 근거를 두는 하늘의 지혜와 참 지식-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보고 듣고 아는 것 즉 영감으로 참되이 아는 것을 완악함으로 배척하고 뱀의 지혜와 지식을 담은 인간의 머리(혼적 지혜와 지식)를 의지하는 자, 하나님의 눈에 미련하고 교만한 사람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잠1:7).
근본적으로 여호와의 계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참 진리를 모르는 자들이란 사실은 인간본능으로 성경을 이해하는 자들이며 참다운 지혜가 없는 자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을 이루기 위해 그분의 주권과 그분의 공의에 따라 통치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자긍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무지한 자(히//케실)-어리석은 자, 혹은 지각이 없는 자라는 의미로서 다른 시편의 문맥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라는 내용이 그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욥과 그 세 친구들은 동방의 현자들이었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도자들이었지만 서로가 인간의 본능적인 지혜와 지식으로 여호와를 오해하여 인간의 말로 서로를 치는 말들을 내어 서로가 깊은 상처만 받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서 친히 가르쳐주실 때 가장 큰 지혜자요 지식을 구비한 자였던 욥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행하심에 대하여 순복하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위하여 그분의 원대로 행하시는 것이며 그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행하시던 주의 행하심은 모두 다 의롭도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요 지식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국 우준하고 무지한 자란 뱀의 지혜와 지식이 출중하여 인간의 타고난 머리가 박살나지 않은 사람이요 인간의 본능으로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이 실제로는 참 지혜와 지식이신 주님을 믿지 못하고 피상적인 지식에 붙잡혀 교만하고 완악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상고해보면 뱀이 사람을 속이고 미혹했을 때 인간에게는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지혜와 지식이 가려지고 뱀의 지혜와 지식에 따라 하나님을 알 되 크게 오해하여 알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제나 첫 사람은 뱀의 지혜와 지식을 의지하게 마련이고 둘째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의지하게 마련인 것은 뱀이 그 지혜와 지식으로 사람을 꾀었지만 하나님은 둘째 사람을 통해서 첫 사람을 주장하는 뱀을 속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임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야곱이 그 아비와 형을 속이고 아비의 축복을 가로챈 것으로 비치고 라반이 그 사위인 야곱을 속이고 레아를 먼저 주었으며 라헬을 위하여 자기의 양떼를 위하여 할 수 있는 한 긴 시간을 끌며 종노릇하게 하였으나 라헬이 그 아비를 속이고 드라빔을 훔쳐내고 약조한 품삯을 하나님의 역사로 야곱에게 다 주시니 하나님의 참 지혜와 지식은 아무리 지혜롭고 지식 있는 라반이라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유다가 그 며느리를 속이고 그 본 남편의 대를 잇게 하지 않았으나 그 며느리 다말이 창녀로 가장하여 그 시부의 씨를 받아 본 남편의 대를 잇게 하였고 가나안 땅의 왕들이 그 백성들을 속이고 착취를 계속했지만 그 땅의 창기였던 라합은 가나안 왕과 그의 사자들을 속이고 이스라엘의 염탐군으로 보냄을 받은 사자들을 숨겨주고 무사히 돌아가 그 땅의 모든 것들을 보고하게 하였으니 이 모든 행하심은 인간의 이성이나 지혜와 지식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것이요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행사들입니다.
이런 비밀스런 하나님의 행하심을 영감으로 깨닫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그 무엇이나 그 어떤 일이라도 다 의롭도소이다-주께서 행하신 일은 다 옳으니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참 지혜자요 참 지식을 구비한 진실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시92:7-8- 악인들이 풀처럼 돋아나고 사악한 자들이 꽃처럼 피어나더라도, 그들은 영원히 멸망(滅亡)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주는 영원토록 지존(至尊)하시나이다.-
악인은 풀같이 생장하고에서 풀(히//에세브)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풀이라는 뜻인데 식물 곧 모든 수목들과 각종 꽃들을 포함하는 용어이며 비가 내리고 나면 온 들판이 푸른 나무들과 각종 꽃들로 아름다운 정원올 이루게 되는데 기자는 바로 그 장면을 염두에 두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유로서 하나님을 모르는 완악한 자들도 세상에서 일시적으로는 비 내린 뒤의 들판의 과수들과 초식들 같이 번성하여 평안할 수 있으나 그들의 인간 세상 영화는 급속히 소멸되고 헛된 것임을 알게 되는 육신의 끝 날이 빨리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는 지존하신다는 뜻은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는 것이니 그 끝이 없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 영이 거듭나는 것이 곧 영생을 얻는 것이며 영생의 말씀은 최초에 예수님이 전파하셨고 사도들이 계속해서 그 말씀들을 증거하였습니다(사40:6-8, 약1:10-11, 벧전1:23-25).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리이다- 본문에서 죄악을 행하는 자란 뱀의 지혜와 지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죽은 양심을 따라 죽은 행실을 하면서도 자신은 산 자로 여기고 선하고 의로운 자로 여기는 자들이며 우준하고 무지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흥왕할지라도 영원히 멸망하게 된다는 표현은 인생을 향한 종말론적인 경계가 감추어져 있는 표현이니 그 마음에 하나님을 안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의를 힘써 대적하는 자들은 이 땅 위에서 일시적으로 번영하여 행복을 누리나 그 행복이 이생을 마친 후에도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들의 번영은 이생에 생존할 동안뿐이요 결국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지옥에 떨어진 상태를 벗어날 수 없는 영영한 형벌을 받을 것인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복음을 믿은 의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존재와 행하심을 인정하지 않고 뱀의 지혜와 지식으로 가득한 인간의 머리-혼적 기능을 따라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으며 자기 길을 걷다가 일생을 마치기 때문입니다(시 73편 등등).
시92:9- 주님, 주님의 저 원수들, 주님의 저 원수들은 기필코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사악한 자들은 모두 흩어지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 곧 주의 원수가 패망하리니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흩어지리이다.-
주의 원수들이 패망하고 다 가루되어 흩어지리라는 기자의 표현은 실제로 주 예수의 복음 전파를 훼방하며 대적하던 유대교지도자들과 그들에게 속한 유대인들이 주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자칭 지혜(빛)의 아들들임을 자부하며 자기들이 본능으로 아는 성경지식으로 대적하다가 주님의 입으로 나오는 심판을 선고받고 로마에게 패망하여 사방으로 흩음을 당한 사실에 대한 예언이기도 합니다.
시92:10 -그러나 주님은 나를 들소처럼 강하게 만드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어 새롭게 하셨습니다.-
내 뿔을 들소의 뿔같이 높이셨으며- 성경에서 들소의 뿔이란 가공할 만한 힘, 능력과 권세 등을 상징하므로(시22:21, 욥39:9) 하나님이 시인의 뿔을 높이셨다는 것은 신에게서 나오는 엄청난 용기와 활력의 생명력 즉 영적 권위와 권세와 능력의 힘을 공급하셨으므로 사망 권세도 견디며 이길 수 있는 부활의 능력을 부여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본문과 대비되는 바로 앞절에는 악인의 멸망이 언급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신의 생명력을 공급받은 시인은 사망의 고통에 매여 있지 않을 것이며 무한한 신의 생명력으로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 영생할 것입니다.
신선한 기름으로 부으셨나이다- 신선한 기름(히//쉐멘 라아난)은 푸른 기름인데 이것은 최고 품질의 생명력을 부음 받았다는 뜻인데 원래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대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로 선택하시고 세우신 사실을 대중 앞에서 공개하는 의식이었습니다(출29:7, 삼상10:1, 왕상19:15-16).
본문에서는 침체 되었던 영을 소성시켜서 새로운 활력을 공급하신다는 뜻으로 신선한 기름을 부으셨나이다, 라고 감사의 찬송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 더러는 심각한 침체에 빠져 사망을 맛보기도 하지만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영을 새롭게 공급해주심으로 영과 혼을 새롭게 소성시켜서 부활을 체험하고 승천시켜주심을 노래한 것입니다.
시92:11-14-나를 엿보던 자들이 멸망하는 것을 내가 눈으로 똑똑히 보며, 나를 거슬러서 일어서는 자들이 넘어지는 소리를 이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이다. 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으니, 우리 하나님의 뜰에서 크게 번성할 것이다. 늙어서도 여전히 열매를 맺으며, 진액이 넘치고, 항상 푸르를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의 올곧으심을 나타낼 것이다.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요, 그에게는 불의가 없으시다.-
내 원수의 보응(報應)받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며 - 원수(히//슈르)는 구약성경에 1회만 등장하는 단어로서 그 유사한 분사형으로 민35:32, 렘17:13, 미 2:8, 등에 나타나는 피한 자, (여호와를) 떠나는 자,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 등으로 번역한 의미를 고려할 때 상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숨어서 기다리는 자로 이해됩니다.
눈으로 보며, 는 은밀히 숨어서 기자를 넘어뜨리려고 기다리는 대적-원수의 멸망을 분명히 목격한다는 뜻인데 숨어있던 원수-대적이 누구라도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멸망당한다는 사실을 목격하며 그 사실을 들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기자를 쓰러뜨리려고 간교하게 숨어서 기다리던 원수-대적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징벌당하는 장면을 보여주시고 그 사실을 분명히 들려주신 것은 침체에 빠진 기자의 신앙을 회복해주신 원동력인 신선한 기름부음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하심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더해주시는 (이상-묵시)계시를 보고 들은 것이었습니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기자는 악인의 멸망과 대비를 이루는 의인의 승리를 증거하려고 이 두 나무의 이름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두 나무는 푸르른 생명력 무성한 번식력, 한 없이 샘솟는 왕성한 생명력 등을 함축하는 의미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여름의 열기 속에서 뿐만 아니라 겨울의 냉기 속에서도 연중 내내 그 푸르름을 유지하며 번성하고 백향목이 올 곧게 높이 자라는 발육을 빗대어 신선한 기름부음을 받은 자신과 동일한 신앙을 가진 자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늘 푸르고 늘 과실을 맺는 종려나무와 레바논의 백향목을 기자와 동일한 신앙을 가진 의인들에 비유한 반면 곧 번성하다가 시들고 말 들풀을 악인에 비유하여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 시52:8에도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는데 구속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처소에 심은 나무로 비유하는 표현은 출15:16-18-에 나오며 이런 표현의 근본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동산에 심어진 각종 실과를 맺는 생명나무들 곧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은 씨가진 과목들에 기인하며 계시록 22장의 새 예루살렘의 생명 강가에 심겨진 생명나무들로 완성됩니다.
본문에서는 의인이 여호와의 집과 왕의 궁전 경내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나무에 비유되고 있는데 성전 뜰과 왕궁의 뜰 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은 완전한 영혼의 거처-안식의 처소에 들어간 상태를 노래하는 표현으로서 본 시편의 목적을 마무리하고 확실하게 본 시편의 의미를 매듭짓는 표현입니다.
본 시편이 매 안식일 날 아침 제사 때 불리어지는 목적과 의미이며 본 시편의 제목을 분명하게 규정짓는 구절로서 나무로 비유되는 구속받은 사람의 혼은 반드시 여호와의 전 뜰과 왕궁의 뜰에 심어진 생명나무처럼 완전한 안식처인 하나님의 동산에 심어진 나무가 달마다 새 열매를 맺도록 생명강가인 주님의 교회에 심어져서 번성하고 발육해야 합니다(하나님의 궁정-시84:2, 10, 시100:4).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며 빛이 청청하여-
늙어도 결실한 사람은 아브라함과 사라이며 모든 산 자들의 아비와 어미는 날마다 새로운 새 생명을 얻은 새 사람을 대표하고 진액이 늙은 후에도 풍족하다는 표현은 신의 말씀 속에 흐르는 무한의 생명력이 다함이 없다는 뜻이며 빛이 청청하다 함은 그 혼의 젊음을 의미하는데 날마다 새로워져서 계속해서 더 깊고 높고 넓은 진리의 세계가 깨달아 진다는 뜻이니 곧 영원한 안식처에서 영생하는 상태-완전한 안식인 천국을 누리는 상태를 노래한 구절입니다.
여호와의 정직하심- 정직하심(히//야솨르)는 다른 사람을 상대함에 있어서 공평한 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로서 야솨르의 기본적인 뜻은 평평하다, 올곧다, 라는 뜻이며 기자는 하나님의 만사와 만물을 향한 통치가 공평하고 의로우심을 찬양함으로 안식일 아침에 드리는 찬송시를 끝맺고 있습니다.
(베다니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