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우리에게 주신 아들”입니다.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란 단어를 주고 생각나는 것을 하나씩 말해보라면 산타크로스, 루돌프, 캐럴, 선물, 츄리 등이라고 합니다. 근래에 캐럴을 들어보셨습니까? 상점에도 캐럴을 틀지 않고 대형마트에 가도 잔잔히 멜로디로만 틀어놓은 것을 듣게 됩니다. 사실 캐럴은 예수님과 크게 관련이 없습니다. 루돌프 사슴코가 예수님과 무슨 상관입니까? 예수님과 산타할아버지가 무슨 연관입니까? 창밖을 보라는데 왜 봐야 합니까? 눈 내리는 것 보고 “추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맑고 흰 눈이 새봄 빛 속에 사라지기 전에 마음껏 즐기라”고 합니다. 그게 결론입니다. 가사 어디에도 예수님과 관련된 것이 없습니다.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달리는 기분 상쾌도 하다”는 노래가 있었는데, “우리 썰매 빨리 달려 멀리 달리자”는 썰매 경주 노래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과 상관없는 노래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캐럴이 없어도 예수님의 탄생에는 큰 지장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마치 아이들이 엄마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엄마 손에 든 선물만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때문에 받는 선물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바로 알고 성탄을 맞이해야 합니다. 선물을 주고 받아도 예수님 덕분임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선지자가 많이 있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으뜸입니다.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을 예언했고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가문을 통해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의 탄생 약 700년 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을 누구라고 말씀합니까?
6절에 한 아이가 났다고 했습니다. 한 아이가 우리 가운데 났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 아기는 우리에게 내어주신(사9:6)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이, 누구를? 아들을, 누구에게? 우리에게, 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결정, 우리를 구원하실 사랑의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과거에 생활이 어려워서 할 수 없어 자녀를 친척이나 높은 분에게 양자로 맡기는 부모님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양자로 맡기는데 우리 집 형편보다 더 못한 집에 보내는 경우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서 배는 굶지 말라고 좋은 환경에서 공부도 하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들을 좋은 환경에 보내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높고 높은 보좌에 앉으신 이가 낮고 천한 마굿간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천사들의 손에 받들려 하나님 나라에 계시던 이를 나사렛 빈민촌에 내어주시고 십자가 죽음에까지 내어주셨습니다. 잘 돌봐달라고 맡긴 것이 아니라 죽음을 위한 희생 제물로 아들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한 아이가 났지만 사실은 내어주신 바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아들입니다. 아들을 왜 내어주셨습니까?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대신하려고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요일 4:10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할렐루야!
1. 먼저 그 이름을 기묘자요, 모사라고 했습니다. 기묘자란 "그리스도께서는 너무나 위대하고 신비하시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고 다 설명할 수도 없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분입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처녀의 몸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었습니다. 이 신비는 우리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그가 행하신 모든 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기묘자입니다.
모사라는 뜻은 영어성경에서는 '카운셀러'로 번역되었습니다. "상담가"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상담해서 옳게 지도하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문제를 만드는 분이 아니라 문제들을 풀어주는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지혜가 풍성하신 분이므로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 인생의 완전하신 상담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세상의 어떤 현자보다도 더 위대한 지혜를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고 곧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모사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는 아버지’시라고 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성자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전능이라는 용어는 아무에게나 쓸 수 있는 단어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사람에게는 절대 쓸 수 없는 단어입니다. 아무리 사람을 신격화시켜도 전능하지 않을뿐더러 그 단어조차 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존하시는 아버지’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버지란 영원히 존재하는 근원이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을 아버지라 하실까요? 여기서 아버지는 성부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라는 말은 몇 가지로 다르게 쓰입니다. 우리가 흔히 바하를 음악의 아버지라 합니다. 피카소를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이 때 아버지라는 말은 그 분야의 권위자, 대가, 개척자라는 말입니다. 낳아주신 아버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아버지라는 말은 예수님이 1)생명의 근원자이기 때문에 2) 우리의 보호자요 공급자로서 아버지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우리의 보호자요, 공급자이십니다. 우리를 지금도 보호하시며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지키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란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지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근원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네가 아직 오십도 안 되었는데 어찌 2,000년 전 조상인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고 하자 예수님께서 나는 처음부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아들로 말미암아 아들을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곧 시작과 끝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3. 평강의 왕이십니다. "평강의 왕"이란 뜻이 무엇일까요? 그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막힌 담을 헐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평화를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군 천사들이 노래한 것이 영광과 평화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였습니다(눅2:14). 평강이 누구에게 온다고 합니까? 하나님이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 임합니다. 평강은 예수님을 통해 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찌어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내게 있는 평안을 너희에게 준다고 했습니다. 그가 평강의 왕이기 때문에 평안할찌어다, 라고 선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 대로 만물이 창조된 것처럼 평강을 허락하시면 그대로 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염려와 근심을 가져가시고 평강을 허락하는 분이십니다. 그 평강이 우리에게도 영원하기를 축복합니다.
4.그의 나라를 굳게 세워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나라를 보존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처음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외친 말씀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수없이 하시며 천국은 마치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다면 분명히 자기 나라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나라로 인도하기 원해서 오셨습니다. 골1:15입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면서도 “네 나라는 어디에 있느냐? 네가 왕이라면 네 나라는 어디에 속했느냐?”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내 나라는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보이는 것으로 임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라면 예수님이 통치자가 되십니다. 평화의 임금이, 사랑의 구주가 통치하는 나라입니다. 가장 정의롭고 공의로운 나라입니다. 세상이 알 수 없고 침범할 수 없는 평화로운 나라요, 사랑의 나라입니다. 우리 왕이신 예수님이 보좌에 앉아 친히 그 나라를 다스릴 것입니다. 다시는 눈물이 없고 근심하는 것이 없으며 슬퍼하거나 애통하는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주님은 그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앉아 통치할 보좌가 어디입니까? 내 마음이 보좌가 되길 주님은 원하십니다. 나를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 삼길 원하십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계셔서 내가 주님의 통치를 받으면 주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왕으로 모신 우리가 함께 하면 교회가 되고 교회가 또한 그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머리되신 주님이 통치하면!
그 아들은 기묘자요, 모사이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존하는 아버지시며 평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왕을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이라 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7절). 그런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열심을 구경만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을 구경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동역하길 축복합니다. 우리의 왕이요 구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진정한 경배를 드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