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
성 요한 세례자 수난 기념일인 오늘 우리가 듣게 되는 복음의 말씀은 요한이 어떻게 죽임을 당하게 됐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특별한 영예를 하느님께로부터 부여받아 자신의 온 생애를 바쳐 주님의 오실 길을 준비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 모든 이들에게 회개를 외치며 이제 곧 오실 주님을 합당히 맞으라고 소리치던 세례자 요한은 오늘 복음이 전하듯 그저 입으로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말한 바를 지키고 살아가는 하느님의 예언자였습니다. 그런 그를 헤로데 왕이 불편하게 여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동생의 아내와의 혼인이라는 불륜을 저지른 헤로데 왕을 세례자 요한이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헤로데 왕이 저지른 일이 분명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이자 임금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 세례자 요한은 설사 그가 왕이라 할지라도 그의 행동이 하느님의 뜻과 어긋난 것이라면 그 잘못된 행동을 분명히 짚고 넘어갔던 것입니다. 결국 그로 인해 요한은 감옥에 갇히게 되고 헤로데의 생일에 헤로데를 즐겁게 해준 딸의 청을 이기지 못한 헤로데에 의해 죽음에 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실을 전하는 오늘 복음 말씀 가운데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 같은 사건이 있기까지 헤로데의 마음 안에서 일어난 일련의 과정입니다. 헤로데는 자신의 딸이 자신의 생일날 모든 고관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 앞에서 자신을 기쁘게 한 일을 두고 몹시 기뻐합니다. 이에 헤로데는 자신의 딸에게 사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의 무리한 약속을 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되어 하느님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목을 베게 되는 어찌 보면 하느님의 사람이자 메시아를 준비하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인 요한이 정말 어처구니없이 죽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 안에서 오늘 복음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사가는 헤로데가 그 결정을 하기에 앞서 몹시 괴로워했다고 전합니다. 헤로데가 이토록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앞서 심적으로 괴로워했다는 것은 헤로데 역시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임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물론 자신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그래서 남들 앞에서 무안을 안겨주는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에게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헤로데이지만 그 역시 마음으로부터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 이제 곧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요한을 두려워하며 또 한편으로는 그를 경외하며 그가 하는 말 하나하나를 마음에 깊이 새겼을 것입니다. 그랬던 헤로데이기에 딸의 청 앞에서 머뭇거리며 심정적으로 몹시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결국 그토록 두려워하던 요한을 죽이기에 이르게 된 것은 손님들 앞에서 약속한 자신의 말을 스스로 지키지 않았을 때 자신이 겪게 될 우스운 꼴이 두려워서였습니다.
무심결에 뱉은 한 마디 말, 자신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내뱉은 한 마디 말이 스스로를 옭아매어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상황, 또한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두려워 스스로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게 되는 상황. 오늘 복음이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 이면에 숨겨진 헤로데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은 우리로 하여금 내 입에 담긴 말 한 마디, 내 마음 속에 있는 내 진심의 마음, 그리고 내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그들을 대하는 내 마음의 상태라는 일련의 것들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같은 헤로데의 지극히 인간적이면서도 부족한 그의 부족한 인성으로 인해 하느님의 예언자 세례자 요한의 목이 잘리게 되었다는 그 일련의 사건이 너무도 어처구니없고 황당하게만 느껴집니다. 하느님의 예언자가 이렇듯 의미 없이 죽을 수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죽음은 하느님의 예언자에게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언제나 삶의 의미와 내가 하는 모든 일의 보람과 사명을 찾는 우리들에게 세례자 요한의 이 같은 죽음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 같은 모든 우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의 예레미야서의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의 삶이 모든 이들로부터 배척받고 박해를 받는 삶이라는 것을 예고하며 동시에 그런 모든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 그 분만을 믿고 자신에게 맡겨진 예언직을 수행하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그 직무를 수행하는 예언자와 함께 할 하느님의 보호를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전합니다.
“그들이 너와 맞서 싸우겠지만 너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예레 1,19)
오늘 복음 말씀이 드러내듯 세례자 요한이 어떠한 위협과 반대에도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요한은 바로 오늘 독서에서 전하는 이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이제 곧 오실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는 일을 맡게 되었을 때, 또 그 일을 수행해나가며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반대의 상황 속에서도 그는 하느님의 이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또 헤로데 왕에 의한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느님의 이 약속을 믿었기에 그는 두려움 없이 헤로데왕의 잘못된 행실을 탓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요한은 예수님이 장차 겪게 될 반대와 그들에 의한 예수님의 죽음을 자신의 삶으로 미리 증거하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내가 너를 구하려고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오늘 복음환호송의 말씀처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언제나 그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 하느님의 함께 하심으로 하늘나라를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입당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임금들 앞에서 하느님의 법을 자신 있게 말하며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말한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삶으로 지키려 노력하며 그 삶을 사랑하는 이들이 바로 하느님이 함께 하시며 하늘나라를 약속해 주는 이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 같은 가장 대표적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이 같은 세례자 요한의 삶이 보여주는 하느님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하느님 아버지의 보호를 굳게 믿으며 우리 삶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임금들 앞에서 당신 법을 말하며, 저는 부끄러워하지 않으오리다.
당신 계명을 되새기며 끝없이 사랑하나이다.”(시편 119(118),4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