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아는가 Ⅱ>
징용으로 조선에서 끌려온 노무자들이 홋가이도 비행장 공사에 투입된 1년쯤 후, 무서운 호열자 전염병이 퍼지고 있었다.
참으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잠을 자다가 보초가 깨워서 본부 앞으로 갔는데, 자다가 불려나온 사람이 40여 명이었다. 일본군 장교의 명령에 따라 삽과 괭이를 들고 산비탈을 올라가 산을 넘어서 내려가니, “정지! 이 지점을 석 자 깊이로 판다. 빨리빨리!”
도대체 여기다 뭘 파묻으려는 것일까?
한참 지난 후, 두 명씩이 들것에 시체 같은 걸 들고 왔다. 얼핏 보았을 땐 시체였지, 들것에 누워있는 건 분명 산 사람이었다.
들것 10개가 구덩이 앞에 나란히 섰다.
장교가 명령했다. “처넣어!”
들것들이 일제히 뒤집어지고 사람들이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아이고, 살려 주이소!” “살려줘요, 살려줘!” “살려 주셔유우!”
장교는 “흙 빨리 덮어라, 흙!” 명령했다.
구덩이 속 환자들은 계속 소리치며 버둥거리고 몸부림쳤다. 대원들은 삽과 괭이로 흙을 퍼 넣기 시작했다.
흙 속에서 얼굴이 불쑥 솟으며 외치고, 손들이 허공을 쥐어뜯고, 발들이 허공을 걷어차고 있었다. 그러나 흙이 계속 퍼부어지면서 그런 움직임들은 얼마 가지 못하고 흙 속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달빛 아래 흙이 꿈틀꿈틀 움직였지만 흙이 구덩이를 반 이상 채우면서 그런 움직임도 끝나고 흙이 구덩이를 수북하게 덮었다.
장교가 명령했다. “전원, 위로 올라가서 다져라! 모두 힘껏 밟아!”
그들은 흙더미 위로 올라가 제자리 뛰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흙은 다져져 평평하게 되었다.
장교는 “수고했다. 오늘 밤 일은 절대 비밀이다. 만약 소문이 나면 너희들 전원 총살한다!”
- 조정래 아리랑 제1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