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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에 장마가 계속된다고 해서 여차하면 가까운 곳의 대체산행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내리지 않고, 07시에 출발한 만차(46명)의 우리 버스는 목적지를 향하여 내달린다.
용봉산(龍鳳山)은 높이가 겨우 381m이지만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올린 형세로 오묘한 산세와 기암괴석군 등이 마치 금강산에라도 온 듯 아름답다.
근처에 가야산(677.6m)과 덕숭산(495.2m) 등 도립공원에 속한 내로라하는 산에 가려 유명세는 덜하지만 직접 올라봐야 그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산이다.
용봉산에서 수암산으로 길쭉하게 늘어진 능선 바위 위에 아슬아슬하게 얹어진 기암들은 잘 생긴 소나무와 함께 각각의 특색있는 이름으로 자태를 뽐낸다.
능선에서 살짝 비켜선 보물 제355호인 마애석불은 빠뜨리지 말아야 한다.
덕숭산(德崇山·495.2m)은 이름만 듣고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덕사가 있는 산’이라고 하면 모두가 알아 듣는다.
지금도 어느 곳에선 덕숭산이라 하고 어느 곳에선 수덕산이라 부른다.
높이도 낮고 등산 거리도 길지 않지만 발길 닿는 곳곳마다 불심을 느낄 수 있는 깊이가 있는 산이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라 함은 이름난 산에 유명한 절이 있음을 말하지 않는가?
수덕사는 백제시대의 고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본사이자 ‘한국 선(仙)불교의 중흥지’.
국보 제49호인 수덕사 대웅전이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고려시대에 지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1937년 해체 수리 때 나온 묵서명(墨書銘)에 의해서 고려 충렬왕 34년(1308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수덕사 대웅전은 단청을 칠하지 않아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은, 목조건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고목의 맨살을 드러내며 미끈하게 빠진 배흘림기둥은 할머니의 항아리치마처럼 풍만하고도 푸근하다.
산림초당은 한국 선불교의 큰 스님인 만공스님이 참선하던 곳이고, 만공탑은 만공스님의 부도탑이다.
세 개의 기둥 위에 둥근 돌이 올려져 있는 모습은 여느 부도탑과 다른 형태다.
이곳의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글귀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라는 뜻이란다.
산행코스: 용봉산자연휴양림-용봉산청소년수련원-최영장군활터-용봉산-노적봉-악귀봉-마애석불-용바위-가루실고개-용봉저수지-수덕고개-덕숭산-
정혜사-수덕사-주차장(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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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km에 5시간 30분
고도표
개념도.
용봉산자연휴양림 주차장에 버스를 댔다. 네비에 '용봉산청소년수련원'을 입력하여 버스를 청소년수련원까지 올라가서 내릴 수 있었다.
그러면 무더운 여름날 아스팔트를 걷지 않고, 7~8분 시간을 단축할 수도 있었는데...
주차장 화장실 좌측의 잘 생긴 소나무를 지나면 2차선 아스팔트도로. 이도로는 '용봉산청소년수련원'으로 올라가는 길.
정면에 용봉산의 올망졸망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돌아본 모습.
청소년수련원 앞의 주차장. 이곳까지 버스가 올라왔으면 수월했을 텐데...ㅉㅂ
조금 더 오르면...
매표소가 기다리고 있다. 단체 산행팀이 휴양림으로 오지 않는 이유. 입장료가 1,000원이니(단체 800원) 경로를 제외하고 두루뭉실 (20명X1,000원=20,000원)
안내판
매표소의 입장료 안내문.
매표소를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만나는 'Y'로에선 좌측...
좌측 최영장군활터 방향.
안전난간이 설치된 암릉으로 올라선다.
돌아보면 트인 전망이...
진행방향으론 암릉이 이어지고...
자라(거북이)를 닮은 바위를 만나고...
주능선으로...
금강인 듯,설악인 듯 절경이 펼쳐진다.
다시 내려다보니 홍성벌판에 개발이 한창이다.
기암을 지나...
우측으로 우리가 나아갈 능선이 펼쳐진다.
고인돌처럼 교묘히 얹혀있는 비행접시바위(?)를 지나며...
카메라에 담기에 바쁜 일행들.
개발 중인 벌판은 계획도시 창원시보다 적지 않다는 오형님의 말씀.
흔들바위인가, 아무래도 밀면 안될 것 같애.
오르는 곳도...
내려보는 곳도...
모두가 절경이라~
최영장군활터 팔각정자에 올랐다.
'봄처녀'님을 불렀다. 최영장군 활쏘는 버전으로 포즈를 한번 잡아 보시라 했더니, 에구~~ 그만 고무줄 새총을 쏘고 있넹.ㅋ
'백하수오'님이 전망바위에 올라 만세를 부르더니...
활은 이렇게 쏜다네. ㅎㅎ 이런 폼으론 참새도 한 마리 못잡겠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고려말 위화도 회군을 한 이성계의 신흥세력에게 죽임을 당한 최영장군.
그는 고려의 충신이였고, 이성계는 고려의 반역자이지만 역사는 항상 승자의 편.
최영장군활터의 이정표엔 정상이 300m.
곳곳이 전망대이더니...
용봉산 갈림길 주능에 올랐다. 좌측으로 100m 정상을 찍고, 다시 이곳으로 U턴을 하여야만 한다.
바위 여러개가 옹기종기 모인 정상부엔 화강암 정상석이 높이를 더하고 있다.
정상을 내려서서 갈림길 숲속에서 점심보따리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이동, 파라솔을 치고 아이스케키를 팔고 있는 노적봉이 지척으로 보인다. 그 뒤는 악귀봉.
돌아보니 하늘금에 박치용님이 섰다.
노적봉과 악귀봉.
노적봉을 오르기 전 휴양림갈림길.
휴양림갈림길의 이정표
노적봉엔 아이스케키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신다.
김상곤씨가 상당히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는 건 지난 월각산의 트라우마?
돌아본 모습.
눈가는 데는 모두 전망대.
하늘을 받치고 선 이놈은 솟대바위.
그 아래 스토리텔링화한 행운바위. 조그만 돌멩이를 집어 던졌으나 빗나가 버리니...
곳곳에 무너진 성터가 이어지더니...
암봉으로 올라선다.
돌아본 모습을...
살짝 당겼더니 철계단이 없었다면 애시당초 산길이 날 수 없었으리라.
임간휴게소 갈림길.
여긴 하늘정원.
진행방향 좌측으로(사진의 우측) 우리가 걸을 덕숭산이 조망되고, 그 우측 뒤로 시설물이 조망되는 가야산이 짐작된다.
살짝 당겨본 중앙의 시설물이 있는 가야산.
악귀봉 암봉에 올라섰다.
물개바위와...
삽살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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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를 지나...
자연훼손 대왕봉을 지나고...
마애석불 갈림길에 닿았다.
마애석불의 이정표
150여미터의 거리를 30여 미터 고도를 낮추면 폐사인 듯 넓은 공터에 산하를 굽어보는 마애불이 서 있다.
충남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용봉산에 있는 고려의 불상으로 정식 명칭은 '홍성신경리마애여래입상(洪城新耕里磨崖如來立像, 보물 제355호)
높이 4m로 노각시바위라 불리며 바위 표면을 불상의 윤곽을 따라 타원형의 감실 모양으로 파내고 부조한 불상이다.
마애석불의 이정표
마애여래입상은 머리가 몸에 비해 큰 편이며, 넓은 어깨에 비해 상체가 약간 짧아 보이나 전체적으로 장대한 모습이다.
얼굴의 양 볼과 턱, 드러나 있는 가슴 등에서 상당히 살찐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렇다고 종교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마모가 심하지만 반원을 그리고 있는 눈썹, 가늘게 뜬 눈, 오뚝한 코, 살짝 다문 입, 어깨까지 닿아 있는 긴 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애여래입상은 오른손을 오른쪽 무릎까지 내려 뜨려 법의(法衣 : 불상의 옷) 자락을 잡고 있으며, 왼손은 왼쪽 겨드랑이까지 들어 올려 손바닥으로 밖으로
내 보이고 있다.
보통 시무외인(施無畏印 : ‘두려워하지 마라’는 뜻의 손 자세)을 결한 불상들은 오른손을 들어 올리는 것이 상례인데, 이 불상은 왼손을 들어 올리고 있고,
오른손으로 법의 자락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설법인(說法印 : 설법하는 손 자세)을 결한 듯하다. <자료>
목 부분도 마모가 심하여 삼도(三道 : 세 개의 선)의 표현이 선명하진 않으나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감실안에 양각으로 새겨진 마애불은 산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다시 능선으로 올라오는 데는 마애불 뒤로 올라와 우측으로 병풍바위를 쳐다보며 능선으로 바로 붙는다.
우측으로 용바위가 보이더니...
'병풍바위-53' 말뚝이 이정표의 능선에 올라선다.
다시 올려다 보는 용바위.
등로 옆의 인공굴은 광산이었던 듯.
용바위에 올라섰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그림과 비교해 보아도...
도무지 용을 닮아 있지않아...정말 용용 죽겠구만...
안내판을...
가까이 확대하여 본 모습.
그리고 홍성 벌판에 신시가지가 조성되고 있고, 충남도청이 보인다.
비교.
산자락 끝으로 수암산 자락이 보이고...
터닝 포인터인 가루실고개는 아직 멀지만...
좌로 덕숭산과 용봉저수지가 보이는 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말씀.
나무계단을 타고 잘록한 안부인 '가루실고개' 사거리에 내려섰다.
가루실고개의 이정표. 우리는 좌측 '덕산면둔리' 방향이다.
직진 오름의 수암산 방향으론 수암대장군,수암여장군 목장승이 서 있다.
이정표 아래의 작은 안내판엔 용봉저수지가 1km남짓.
목장과 넓은 농장지대를 내려오며 덕숭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용봉저수지에 닿았다.
'T'자 갈림길에서 돌아본 내려온 길. 우리는 육괴정(수덕고개) 방향이다.
'둔2리마을회관'을 지나고, '가루실가든'을 지나노라니 마침 버스 한 대가 지나간다.
맞다. 버스를 가루실가든 앞으로 불러서 더위에 지친 B팀들을 태워야겠다. 네비엔 '가루실가든'입력.
'ㅏ'자 갈림길에서 용봉저수지를 우로 돌아...
이 지점의 이정표에서 '육괴정'을 따른다.
용봉저수지를 우로 바라보며 걷노라니 덕숭산 가는 일행들이 뒤따라 간다는 무전 연락이다.
후미팀들을 20여분 기다리는데 '가루실가든'으로 B팀을 태우러 가는 우리 버스를 만난다.
합류한 4명과 수덕고개에서 기다리던 또 한 명을 합쳐 8명이 덕숭산으로 향한다. 사진은 돌아본 수덕로와 우리가 걸어온 길(중장비가 오는 길)
수덕고개마루의 휴게소.
이 지점에서 건너 보는 승용차 뒤로 철조망이 쳐진 등로 입구. 철조망을 따라 우측으로 우회하여...
철조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산길로 진입.
철조망 끝지점에서 내려보니 용봉저수지에서 올라온 길이 100여미터 전방에 보인다.
철조망을 우회하여 조금 올라 횡단하는 묵은 임도를 걷다 산길로 꺾어 오른다.
금방 화강암 슬랩구간을 만나면...
트이는 조망에 용봉산을 비켜서 본다.
수덕고개 휴게소가 발아래 보이고, 건너로 용봉산의 위용.
흡사 사자를 닮은 사자바위를 지나고...
산길은 육산의 숲속길로 변해있다.
수덕사 갈림길을 만나고...
이 지점 갈림길의 이정표.
전망바위를 만나 살짝 비켜 올랐더니...
오형님도 궁금이 동하야...
덕숭산에 올랐다. 사람들은 덕숭산이 100대 명산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하다. 아무래도 수덕사 덕을 보는 100대 명산 덕숭산일 것.
안내판의 구간 탐방 거리를 알기 쉽게...
이정표도 참고.
올라온 반대편 길이 1.67km이니 하산길은 워낙 탐방객이 많았던지 길이 움푹 파여있다. 등로가 비가오면 물길이 되고 있는 듯.
산아래 넓은 주차장.
당겨보니 우리 버스가 보인다.
정혜사 후원으로 통하는 작은 문.
일광문(日光門) 편액이 걸렸다. 햇빛이 제일 먼저 든다는 뜻?
낙관의 송원(松原)은 수덕사의 주지를 역임하시고 덕숭총림의 수좌로 정진하고 계시는 설정 송원(雪靖 松原 1944. ~ )스님을 말한다..
스님은 14세에 수덕사에 입산하시어 1955년 원담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셨다
이기 무슨 자(字)고?
뚫어져라 쳐다보지만 'ㅇ수문(ㅇ修門). 역시 송원스님의 글씨다.
아치형 석문을 지나...
돌아본 석문에는 담쟁이 넝쿨이 엉켜있다.
이젠 진양문(眞楊門). 역시 송원스님.
만공탑에 닿았다.
만공탑은 만공스님의 부도탑이다.
만공스님의 제자였던 동경미술학교 출신 박중은 스님에 의해서 만공스님을 추모하기 위해 1947년에 제작된 것이다.
원형의 2단 초석위에 세워진 부도탑은 모두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상륜부라고 할 수 있는 맨 윗부분의 둥근 원석 안에는 만공스님의 사리가 안치되어 있고, 가운데 팔각의 세 기둥은 불교의 불(佛)·법(法)·승(僧) 삼보를 상징한다.
또 기단부라 할 수 있는 8각기단은 팔정도(正見, 正思惟, 正語, 正業, 正命, 正精進, 正念, 正定)를 나타낸다.
팔정도란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하는 8가지의 올바른 길이다.
팔각의 세 기둥사이에는 세 개의 면석이 들어가 있는데, 서측면에는 만공스님의 서체로 세계일화가 새겨져 있다.
동측면에는 만공 스님 (1870~1946)의 생애가 간략하게 적혀있고 그 옆으로 스님의 법훈이 적혀있다.
만공탑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향운각이 있는 곳에 1924년 만공스님에 의해 조성 봉안된 '관음보살입상'이 있다.
이 석불은 7m가 넘는 거대한 입상으로 자연암벽을 깎아 조성되었다.
사각의 좌대 배면은 후암벽과 붙어있고 석불은 환조로 조형되었다.
축대를 쌓아 지대석처럼 다진 뒤에 기단과 석불입상을 조성했으며, 석불이 세워진 하부에는 2층의 기단식 좌대이다.
사각의 보관 위에도 탑의 상륜부처럼 낙수면이 있는 지붕돌처럼 이중의 보개를 얹었으며 보주가 올려져 있다.
보살의 머리에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으며 굴곡이 없는 신체위에 선각된 천의를 입고 있다.
손가락의 표현이 정교한 양손으로는 정병을 감싸안듯이 쥐고 있고, 정병 안에는 생노병사에서 오는 중생의 8가지 고통을 덜어주는 감로수가 들어있다.
1층기단의 하대갑석에는 '세존응화이천구백오십일년갑자동십만공계수봉안(世尊應化二千九百五十一年甲子冬十滿空稽首奉安)'이라는 명문이 보인다.
2951-1027(기원전)=서기 1924년으로 보인다.
석불입상 앞에는 장방형의 배례석이 있으며 육각석등에는 시주자의 이름인 듯 빽빽히 기록되어졌다.
등로에 있는 사면불(四面佛). 1983년에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서 발견된 백제시대 유일한 사면불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라 한다..
4면에 약사불,아미타불,석가모니불,미륵존불이 조성되어 있다.
안내석
장마기간이지만 충남에는 비가 오지 않은 듯 계곡은 바싹 말라 있다.
심우당(尋牛堂)을 비켜들어와
수덕사 대웅전 측면을 바라본다. 목조 건축물의 신비함이 느껴진다.
예산 수덕사 삼층석탑(충남 유형문화재 제103호).
충남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수덕사에 있는 통일신라의 석탑으로 높이가 4m.
상륜부는 2개의 보륜과 함께 보개(寶蓋)·앙련(仰蓮)·노반(露盤)이 찰주(擦柱) 없이 포개져 있는데,
노반은 방형(方形)으로 탑신부의 최상층 옥개석과 1매의 석재로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기단과 탑신 및 상륜 일부가 잘 남아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잘 갖춘 탑이다. 1,2층 옥개석 귀퉁이 일부가 파손되었다.
안내판
국보 제49호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다.
대웅전 현판은 원담(圓潭)스님이 썼다. 원담(圓潭)의 원(圓)을 원(○)으로 표현한 게 재미있다.
정면 3칸, 측면 4칸에 겹처마와 맞배지붕을 지닌 주심포계 건물이다.
배흘림이 현저한 기둥은 낮고 기둥 사이는 넓어서 안정감을 주며, 헛첨차를 써서 공포가 주두 아래에서 시작되는 백제계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마루보와 대들보의 낙차를 크게 두고 우미량을 겹으로 걸어 지붕에서부터 계속된 우미량의 율동미가 소슬합장의 곡선, 이중량의 곡면과 함께
백제계 특유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1937년부터 4년간에 걸친 해체·수리 작업중에 발견된 묵서명에 의해 1308년(충렬왕 34)에 세워졌음이 확인되었다.
충청남도 지역의 대표적인 건물로서 건축연대가 뚜렷하며 이 시기 목조건물 양식편년의 기준이 되는 것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자료>
안내판
건물 앞면의 3칸에는 모두 3짝의 빗살문이 달렸고,
중앙이 불룩한 배흘림 기둥이 안정감을 준다.
불당에는 목조삼불(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보물 제1381호
고개를 들고 천장을 바라보니 맨살을 드러낸 나무결이 그대로 느껴지고...
주심포 건축양식
건축물은 언제나 중앙에 바로 서서 바라 봐야만 제대로 멋을 알 수 있다. 좌우 대칭을 이룬 대웅전.
법고각과 세계일화.
법고각에는 종(鐘)을 제외한 법고(法鼓)와 목어(木魚)가 나란히 있고, 종(鐘)은 범종각에 있다.
일주문을 나와...
돌아보니 '덕숭산 수덕사' 편액.
'임인청추 소전손재형(壬寅淸秋 素筌孫在馨)'이란 관지가 있다.
손재형(孫在馨.1902.4.28∼1981.6.15)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이 글씨는 1962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일주문 안에 또다른 편액이 달렸는데,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禪院)' 임인장월 소전산인(壬寅長月 素筌算人)' 일주문 편액과 같은 날 쓴 것으로 보인다.
다시 걸어 나와 돌아보니 거대한 일주문에 '덕숭산덕숭총림' 이라 한글로 적혀있다.
매표소가 있는 곳이다. 입장료 3,000원(단체 2,500원)
주차장에 도착.
일행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산행 후담을 나누고 있다.
마른 목에 막걸리 두어잔 마신 뒤 화장실로 직행, 씻은 후 셔츠를 갈아 입는다.
- 탁 발 -
민달팽이 일보 일배 해탈문을 나섭니다
저 한 몸 달랑 들어갈
걸망 하나 지고 가다가
아니다
이 집도 크다
다 버리고
갑니다
<김 영 주>
첫댓글 보기좋은 산행과 해박한 문화유산답사처럼 유익한 글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산길은 물론이고, 산의 속살을 오롯이 담아오고 싶지만 갔다오면 늘 아쉬움이 남죠.
산자락에 흩어진 문화와 유적은 덤이고요. 기회가 닿는다면 자주 뵙기를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