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오늘도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났어요', 고문영의 동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위즈덤하우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건 '페이크'예요. 고문영이란 작가는 실존하지 않습니다. 고문영은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 속 주인공의 캐릭터입니다. 베스트 셀러 작가인 캐릭터에 맞추어 몇 권의 책이 실제 출간되었고,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은 그 중 한 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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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몽을 먹고자란 소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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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지 않는 드라마 속 캐릭터의 '실재'하는 작품이라, 마치 우리가 꾸는 '꿈'같지 않나요? 실재하지 않지만, 우리 삶의 실존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악몽을 먹고 자란 소년>의 소년은 잊고 싶은 과거의 기억들이 매일 밤마다 소년의 꿈속에 나타나 괴롭습니다.
나이가 많고 적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꿈'은 차별이 없어요. 그중에서도 악몽은 소년처럼 잠드는 게 무서울 정도죠. 어떤 '악몽'을 꾸시나요? 전 종종 꿈속에서 굉장히 애를 쓰다 깨곤 합니다. 진이 빠져서 가위가 눌릴 정도가 돼서 깨면, 그 한밤중에 홀로 앉아 몽쉘 하나를 베어 물며 당 충전이라도 해야 악몽의 무한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악몽을 꾸시나요?
동물들도 꿈을 꿉니다. 개를 보면 웅얼웅얼 잠꼬대도 하고, 다리를 버둥거리며 꿈속에서도 달립니다. 그들도 '악몽'을 꿀까요?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2020년 <마리 퀴리>로 볼로냐 라가치상 논픽션 부문 대상을 수상한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그린 <그림자의 섬>에는 동물들의 '악몽'을 치료해주는 신비한 병원이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왈라비'입니다.
병원은 어느 이름 없는 숲 속, 소원의 늪과 잃어버린 시간의 폭포 사이, 꿈의 그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거대한 발에 짓밟히는 꿈을 꾸는 가시두더지, 시커먼 어둠에게 밤새 추격당하는 에뮤, 사나운 고함 소리에 고통받는 주머니쥐들이 찾아옵니다.
그러면 왈라비 박사는 믿음직스러운 딩고와 함께 악몽 사냥에 나섭니다. 뛰어난 악몽 사냥꾼 딩고는 악몽을 먹어치우기도 하고, 꿈에 나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괴물을 위해 꿀을 담은 플라스틱 병을 가지에 걸어두기도 하고, 쫓기는 꿈을 위해서는 여우 덫을 만들기도 합니다. 고함 소리가 들리는 꿈은 덫에 먹이를 넣어두고 유인하기도 하지요. 땅콩도, 피리도, 딸랑딸랑 소리가 나는 장신구가 제가 베어 문 달콤한 몽쉘 한 조각 같은 역할을 하는가 봅니다.
1900년 <꿈의 해석>를 발간한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왕도'라고 정의내립니다. 꿈을 꾼 대상이 기억되는 꿈은 '나타난 꿈manifest dream'입니다. <그림자의 섬>에서 거대한 발이나, 괴물, 기분 나쁘거나 기괴한 소리가 그것이지요. 그런데 이 '나타난 꿈' 안에 꿈의 원본인 '숨어있는 꿈 latent dream'이 있습니다.
꿈속에까지 찾아와 쫓고, 짓밟으려 하고, 기괴한 소리를 내는 것들은 대부분 동물들의 '천적'들이거나 그들이 업그레이드된 괴물들이지요. '꿈은 무의식과 현실 경험의 합작품'이라고 합니다. '숨어있는 꿈은 의식 세계로 들어가는 검문소를 거치며' 재편집되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정도언, <프로이트의 의자>)
하지만 현실 속 나를 괴롭히는 불안과 공포들처럼 악몽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째 계속 꿈속에서도 앙다문 이가 얼얼할 정도로 애를 쓰며 버둥거리다 깨어나고 보면 한동안 얼이 나가 앉아있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현실에서 내가 끙끙거리는 어떤 상황들이 떠오르며 혀를 차게 되지요. 내 '의지'의 영역을 넘어서는 어떤 고민들에 대한 나의 '아등바등한 욕망'이 꿈의 형태로 되풀이되었다는 걸 깨달으면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모르겠어요. 꿈을 꾸면 텅 비어있는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깊고 깊은 곳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있는 어둠만 보여요."
먼 곳에서 찾아온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의 고민입니다. 이건 어떤 '악몽'일까요? 왈라비 박사는 흔한 악몽을 다룬 책도, 특이한 악몽을 다룬 책도, 그리고 희귀한 악몽을 다룬 책도 뒤져보지만 늑대와 같은 악몽은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악몽조차 삶이다
도대체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가 꾼 꿈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태즈메이니아주머니늑대란 동물을 아시나요? 혹시 조금이라도 동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까요?
<그림자의 섬> 속지에는 여러 동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표범, 수마트라코끼리, 시베리아호랑이, 카리브해몽크물범, 여행비둘기, 파란영양, 부발하테비스트, 발리호랑이, 핀타섬코끼리거북, 오하우꿀먹이새 등등. 그래요, 이 이름조차 생소한 동무들은 멸종 동물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겁니다. 당신 꿈은 진짜 꿈도 아니고, 악몽도 아니에요. 정반대죠. 꿈이 없는 겁니다.
왈라비 박사는 말합니다. 마지막 태즈메니아주머니늑대가 오랜 전에 사라져 이제 한 마리도 없다고. 나를 찾아온 당신은 유령이라고요. 그리고 태즈메니아주머니늑대를 '그림자의 섬'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곳은 책 속지에 있던 수많은 멸종 동물들의 영혼들이 모여사는 곳입니다.
이렇게 <그림자의 섬>은 '악몽'을 통해 멸종동물들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더 이상 꿈조차 꿀 수 없는 것입니다. <악몽을 먹고자란 소년>에서 과거의 나쁜 기억들이 밤마다 찾아와서 괴로웠던 소년은 머릿속 나쁜 기억을 지웁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소년은 더는 악몽을 꾸지 않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금도 행복해지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마녀를 원망했지요. 약속대로 소년의 영혼을 거두며 마녀는 말합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기억, 처절하게 후회했던 기억, 남을 상처주고 또 상처받았던 기억, 버림받고 돌아섰던 기억, 그런 기억들을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가는 자만이 더 강해지고, 뜨거워지고, 더 유연해질 수 있지. 행복은 그런 자만이 쟁취하는 거야.
삶의 행복은 고통과 불안과 공포을 겪어낸 자에게 온 선물이라고 책은 말합니다. 하지만 우린 삶이 행복과 행복하지 않은 많은 시간의 쌍두마차라는 걸 쉬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소년처럼 늘 '행복'에만 해바라기를 하며 살아가지요.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 인간은 행복을 찾기 위해 삶의 또 다른 이면인 악몽을 '제거'해 버린 소년처럼 인간만의 온전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동물들과의 공존을 거부했습니다. 악몽조차 꿀 수 없는 멸종 동물,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들에게서 빼앗은 '삶'을 절실하게 깨닫게 해 줍니다.
'악몽'도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나의 삶이 소중하면, 다른 '존재'의 삶도 소중합니다. 그들에게서 '꿈'을 빼앗지 말자고요.
첫댓글 악몽을 꾼적이 있지요..
고통과 불안과 공포의 기억들도 있지요..
악몽과 그 힘듦의 기억들도 우리네 삶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