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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상황 정민호
제주평화순례에 세 번째로 참가한 송지훈 팀장은 7년차에 접어든 40대 ‘실무’ 활동가다. 스스로를 ‘활동가’라기보다는 ‘실무자’ ‘직업인’ ‘행정간사’로 여긴다. 소명의식의 과잉보다 직업정신에 충실할 때 더 순적하게 일이 진행된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이 식사에 만족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세 명의 채식 참가자를 위해 매번 채식 식당을 섭외했다. 간식 준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현장과는 다소 거리를 두어야 하는 그에게는 이번 제주평화순례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지 궁금했다. 아울러 참가 활동가 중 다섯 번째로 젊은 이 ‘청년’ 활동가에게 기독운동이 침체되는 이유도 들어봤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성서한국 사무국에서 7년째 일하고 있다. 행정과 재정 업무를 맡고 있는데, 2년마다 여는 성서한국 전국대회 실무가 주된 업무다.
2년이면 전국대회를 준비하기에 넉넉한 시간인가?
2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전국대회가 몇백 명 모이는 규모이다 보니 맡고 있는 업무가 적지 않다. 인력을 고려할 때 준비하기 넉넉하다고 보기 어렵다.
제주평화순례는 몇 번째로 오는 것인지?
순수 참가자로 온 적은 없고 성서한국이 참여하면서 세 번째로 왔다.
쉴 새 없이 핸드폰을 하시던데…
관찰하고 있었나?(웃음) 계속 업무 연락을 주고받는 건 아니다. SNS도 하고 이것저것 보고….
순례 기간 내내 운행하고 물품 구매하는 등 뒤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봤다.
이곳에서 맡은 게 지원 업무라서 응당 해야 하는 일들이다. 특별히 고되진 않다. 이곳에서 거주하며 활동하는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우리가 잠깐 힘쓰는 것은 고생이라 하기가 참 민망하다.
20명 참가자 가운데 채식하는 사람들이 셋 있었다. 채식 옵션이 있는 식당을 알아보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
세 분이면 적지 않은 비율이다. 불편함을 최소한 줄여드리고 싶었다. 취사가 아닌 매식이기에 필요한 식당을 미리 찾으면 되는 거여서 번거롭진 않았다. 채식하시는 분들과 상의하는 과정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번이 세 번째 참가다.
첫 번째는 전체 참석은 안 했고, 성서한국이 주도하기보다는 연대단체가 중심이 되어서 했던 때라서 하루 정도 지지 방문했었다. 재작년과 올해는 실무자로서 온 것이다. 솔직히 성서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매시간 사회적인 이슈나 사회적 선교 문제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다. 나도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직장인처럼 사는 면도 없지 않다. 일차적으로는 당연히 업무로 왔다. 그럼에도 여기 계신 분들 얼굴도 보고 인사 드리면서 스스로를 환기하는 면이 있다. 물론 이곳 활동가분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지는 않는다. 그분들도 정해진 에너지가 있는데 나까지 말을 붙이면 되겠나. 그런데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환기하는 측면이 있다.
‘환기’라면, 구체적으로?
일체감?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아닌데, 함께 일하는 임왕성 목사님 같은 경우 어제도 송강호 박사님 얘기하면서 눈물 흘리지 않나. 이해는 안 가는데 한편으로는 또 이해된다. 제주평화순례 같은 경우는 재작년에 오기 전까지는 강정에 와서 이렇게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었다. 기질상 회의감부터 드는 성격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성서한국에서 일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활동가들,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마음이 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질 수 있는데, 단체 활동가 입장에서는 현장에 상주하시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2년마다 모여서 함께하는 게 여러 의미를 다지게 하는 것 같다.
제주평화순례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뭔가.
일단 지원 업무로 온 것이기 때문에 참가자분들의 식단?(웃음) 엄청 중요하다. 아침 식사는 나름 신경 쓴 거다. 전에 일했던 단체에서도 여름마다 7천 명 넘게 모이는 수련회를 준비했다. 그 경력을 인정받아 성서한국에 온 거다. 간사들 수백 명 모인 수련회 총괄도 해보고 그랬는데, 은근 재밌었다. 흔히 수련회는 강사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일단 식사가 맛있어야 하고 간식이 예상에서 벗어났을 때 희열이 있다. 이번 견과류 간식은 오버가 맞다.(웃음) 하지만 예상을 벗어나야 재밌다.
대규모 수련회를 준비하면 쉽지 않을 것 같다.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몸빵이다. 전 직장은 간사들이 워낙 많아서 큰 수련회가 무리 없이 돌아간다. 수련회 몇 달 전에 조직도가 나오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매뉴얼이 있다. 그래서 어렵지 않은데 성서한국으로 이직하고 나서는 그게 달라진 거다. 대회를 준비하려면 조직위원회 준비위원회가 꾸려져서 실무자 활동가들이 거기에 붙어서 들어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는 입장에서 사무국은 준비할 게 훨씬 많다. 성서한국 실무자는 사무총장, 사회선교국장, 그리고 나까지 셋이 전부다. 그런 점에서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제주평화순례 같은 경우는 재작년에 오기 전까지는 강정에 와서 이렇게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싶었다. 기질상 회의감부터 드는 성격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성서한국에서 일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활동가들, 마을 주민들의 얼굴을 보고 나면 그런 생각이 어리석었다는 마음이 든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이 멀어질 수 있는데, 단체 활동가 입장에서는 현장에 상주하시는 분들에 대한 미안함이 있다. 2년마다 모여서 함께하는 게 여러 의미를 다지게 하는 것 같다." (이하 성서한국 송지훈 간사) ⓒ복음과상황 정민호
어떤 때 보람을 느끼나?
참가자들이 식사에 만족하거나 성서한국 전국대회가 잘 치러졌을 때다. 전국대회가 잘 치러졌다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실무자로 지금까지 세 번의 대회를 치렀다. 앞선 두 번의 대회는 좀 어려웠다. 재정적으로나 동원하는 거나. 절대적인 참가 수로 보면 전국대회는 하락세다. 대형 청년 집회가 하향세일 수밖에 없는 시대니까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작년 대회는 여러모로 잘 진행된 면이 있어서 보람 있었다. 성서한국 참가자 중 보수적 교회에서 발붙이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기 힘든 청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들이 와서 위로를 받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 이번에는 1년 늦춰서 2년 뒤 개최 예정인데, 이런 청년들이 늘어나는 흐름은 계속될 것 같다. 교회는 점점 보수화될 테니까.
참가 활동가 중에 다섯 번째로 젊은 멤버다.
민망하다. 40대 초반인데 젊다, 어리다 하기가…. 활동가 그룹이 전체적으로 연령대가 높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젊은 편에 속한 것 같다.
송 박사님을 많이 따르는 윗세대와는 좀 다른 느낌이다. 특별히 롤모델로 삼은 활동가가 있나?
없다. 굳이 두고 싶지도 않고. 가는 길이 다르다고 할까? 40대 중반 이후에도 똑같이 지금처럼 활동가로 있을까 의문이다. 기독운동 쪽은 대다수 남성 활동가들이 목사 안수를 받고 섬기는 교회가 있을 때, 활동을 병행하며 결국 임원도 되는 현상이 굉장히 많다. 두드러진 특징이다. 그런 분들의 삶이 나와는 양상이 다르다. 신학 공부와 목사 안수를 고민한 적도 있지만, 역시 아닌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왜 그런 결론을 내렸나.
목사로서 얽매이고 싶지 않아서?(웃음) 그냥 전형적인 활동가나 사역자의 삶이 나와는 잘 맞지 않고, 그래서인지 그렇게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럼에도 활동을 지속하는 것을 고민할 텐데.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일은 계속할 텐데, 여기서 얼마나 길게 일할 수 있을지는 자연스러운 고민이다. 어쨌거나 직업인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자연스럽게 더 잘할 수 있는 일자리가 생긴다면 이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이직의 기회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 걱정도 된다. 물론 사회인으로서의 느끼는 당연한 불안이겠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여느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있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많지 않다. 나름 현재 하는 일과 내 삶의 패턴이 잡힌 것 같다. 이 직업으로만 활동하는 건 아니고, 전혀 다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책 팟캐스트와 유튜브를 한다. 이런 활동이 이후 직업으로까지 연결됐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직업 활동에만 목숨을 걸지 않는 것이 역설적으로 일을 지속하는 동력이 된다. 물론 직장에서 맡은 일을 완수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활동가 느낌보다는 직업인 느낌이 든다. 오히려 그런 점이 운동을 지속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기도 하고.
활동가라는 인식보다는 직업인으로 스스로를 규명하고 있다. 뜨거운 소명이나 의식을 앞세우기보다는 페이를 받고 일을 하는 거니까. 받는 만큼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동력이 절대 가볍지 않다. 특히 기독 진영에서는 소명이나 자의식이 과잉된 모습보다는 직업인으로 충실한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물론 활동가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러운 것도 있다. 영어로 하면 ‘액티비스트(activist)’니까. 그보다는 스스로를 행정 간사로 여기고 있다.
균형 감각이라고 봐야 할까?
다 내 모습이다. 분리하고 분류하기보다는 이 모습 저 모습 모두 나다. 균형 감각이라기보다는 생존전략인 것 같다. 살기 위해 여러 가지 해보다가 딱 지금 정도로 살아갈 내 모습을 찾은 느낌이랄까.
"활동가라는 인식보다는 직업인으로 스스로를 규명하고 있다. 뜨거운 소명이나 의식을 앞세우기보다는 페이를 받고 일을 하는 거니까. 받는 만큼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 동력이 절대 가볍지 않다. 특히 기독 진영에서는 소명이나 자의식이 과잉된 모습보다는 직업인으로 충실한 것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다. 물론 활동가라고 부르기에는 쑥스러운 것도 있다. 영어로 하면 ‘액티비스트(activist)’니까. 그보다는 스스로를 행정 간사로 여기고 있다." ⓒ복음과상황 정민호
이쯤에서 이번 제주평화순례는 어떤지 묻고 싶다. 잘 순항하고 있는지?
아무래도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지다 보니 조심스러웠다. 결국 일반참가자를 받지 못하게 됐고 활동가 네트워크에 있는 분들만 모시게 된 것이 아쉽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연대감이 더 끈끈하다는 느낌은 있다. 이번에는 송강호 박사님 관련 이슈가 있어서 지난 평화순례와는 결이 다른 것 같다. 앞으로 제주가 어떤 상황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2년에 한 번이라도 평화순례는 이어져야 한다. 강정 이후의 제주를 그리스도인들이 맞닥뜨려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비자림로’ ‘제2신공항’ 이슈가 아니라 제주는 평화에 대한 이슈, 평화에 대한 줄기들이 계속 이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순례 참가자 중 여성이 없다.
여성 분들이 기독운동 쪽에 안 계신 건 아닌데, 담당 업무가 많아서 못 온 경우가 많다. 실무자가 이런 연대활동에 오기 어려운 것은 업무의 과중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업무를 조정하고 와야 하는데, 한 단체의 실무 인원이 많아야 넷, 다섯,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다. 한두 명이 자리를 비웠을 때 생기는 업무 공백은 부담이 클 거다. 이차적으로는 여성 활동가들이 단체 안에 오래 있기 어려운 것도 있다. 결혼, 출산 등의 이유로 이런 일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기도 하고. 또 일자리가 그렇게 상대적으로 많은 분야가 아니다. 박봉에 업무도 많아 젊은 활동가가 유입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최소한 이 일에 뛰어들었으면 3년을 한 텀으로 보고 두 텀은 일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만한 비전이 젊은 세대에겐 잘 안 보일 것 같다.
비전이라고 한다면?
박봉이더라도 뭔가가 보이면 여기서 더 커리어를 쌓을 수 있거나, 이 운동이 잘 맞거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지지와 인정을 누리고 있다면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 거다. 그런 게 동력이 된다. 물론 이런 게 없어도 자기를 불태워 활동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고….
지금 있는 위치에서 활동가 지속성 문제의 원인을 진단한다면?
이전 직장은 캠퍼스 선교단체였다면 여기는 사무국 체제를 운영하는 시민단체 형태의 직업 세계다. 아마 사무국을 따로 운영하면서 활동하는 모든 시민단체 활동의 한계가 거의 유사할 텐데, 실무자들과 임원들 간의 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실무자들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에너지를 쏟지만, 이사들과 임원들은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업무뿐 아니라 업무 환경, 직장 내 관계 등이 다 얽힌 복잡한 문제라서 해결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실무자들의 책임과 권한이 많아지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안전하게 조심조심 조직을 꾸려가기만 하면, 완만한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다. 교회든 윗분들이든 조직과 단체의 획기적 전환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실무자들을 잘 키워내면 좋겠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 돈이 드는 일이라….
실무자들을 키워내는 데 돈 외에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도 돈, 둘째도 돈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안 되어서 우리는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거 아닌가. 2순위는 같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얘기할 수는 있겠는데, 그 마음도 결국 돈으로 표현되는 거니까. 있는 돈을 어떻게 쓸 것인지 결정할 때도 실무자의 권한이 더 필요하고.
모금이 쉽지 않은 현실 아닌가.
그렇다기보다는 복음주의라는 독특한 영역이 너무 좁은 거다. 여기 들어와 있는 교회들의 범위와 역량이 너무 적다. 복음주의는 보수적인 근본주의까지 아우르는 교회들이 있어 그쪽이 많이 유입되는 게 방법이지만, 지금 같은 상황으로서는 쉽지 않다. 복음주의 신앙을 공유하더라도, 동성애 이슈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너무 갈라치기가 심해졌다. 협력이 아닌 완벽한 대치 상황이 되었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별로 할 말 없는데?’ 싶은.
"실무자들과 임원들 간의 갭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실무자들은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내고 에너지를 쏟지만, 이사들과 임원들은 적정선을 유지해야 하는 입장이다. 업무뿐 아니라 업무 환경, 직장 내 관계 등이 다 얽힌 복잡한 문제라서 해결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실무자들의 책임과 권한이 많아지는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안전하게 조심조심 조직을 꾸려가기만 하면, 완만한 하락세를 이어갈 것이다. 교회든 윗분들이든 조직과 단체의 획기적 전환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실무자들을 잘 키워내면 좋겠다. 물론 그게 쉽지 않다. 돈이 드는 일이라…." ⓒ복음과상황 정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