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석의 추억
임병식
예전의 덕석은 쓰임이 많았다. 낮에는 곡식을 말렸고, 저녁에는 사람이 앉고 눕는 자리였다.
조금 고급스러운 말로는 ‘멍석’이라 하지만, 내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는 ‘덕석’이라 했다. 마을의 못된 사람을 벌줄 때도 ‘덕석말이를 한다’고 했지, ‘멍석말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예전에는 머슴의 솜씨를 가늠하는 일로 쟁기질과 덕석 만들기를 꼽았다. 쟁기질은 흔적이 남지 않지만 덕석은 달랐다. 해마다 하나씩 만드는 것이 상례였으니, 머슴을 부리던 집에는 그들의 손길이 덕석마다 남았다.
날이 맑으면 아침 일찍 덕석을 마당에 펼쳤다. 보리와 벼를 말리고 고추와 콩깍지, 깨단도 널었다.
어른들이 들로 나가면 아이들은 집을 지키며 곡식을 돌보았다. 보리와 벼는 발로 길을 내듯 뒤집었고, 다른 곡식은 손으로 뒤집었다. 참새나 닭이 넘보면 장대를 휘둘러 쫓아냈다. 놀다가도 장대 하나 곁에 세워 두면 제법 지키는 사람 노릇을 했다.
저녁이 되면 덕석의 쓰임도 달라졌다. 늦여름과 초가을에는 마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덕석에 둘러앉아 밥을 먹고 상을 물리면 모깃불을 피웠다.
아이들은 덕석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나둘 돋는 별을 바라보다 유성이라도 떨어지면 그것을 쫓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초가지붕에는 박꽃이 하얀 얼굴을 내밀었고, 한쪽에는 둥글게 자란 박이 매달려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어머니를 졸라 옛이야기를 들었다. 모깃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모기 소리가 앵앵거렸지만, 매캐한 연기 속에서는 쉽사리 가까이 오지 못했다.
“자, 그만 자고 방에 들어가자.”
이야기를 듣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덕석 귀퉁이에는 아직 모깃불의 기운이 남아 있었다. 불은 사그라지고 실낱같은 연기만 가늘게 흔들렸다.
어른들은 모깃불에 물을 부어 끄고 덕석을 말아 처마 밑에 갈무리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름을 났다.
돌이켜보면 오래전 이야기다. 채 백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덕석은 사라졌고, 그 위에서 곡식을 말리고 밥을 먹으며 별을 바라보던 여름밤도 함께 사라졌다.
덕석 한 장을 떠올리면 물건 하나가 아니라 사람의 손길이 깃든 한 시대의 여름이 떠오른다.
(2026)
첫댓글 '덕석'은 당시 단순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머슴의 손재주를 기억하는 '유품'이자, 낮의 일터와 밤의 쉼터를 품는 '삶의 무대'로 여겼습니다.
곡식을 발로 뒤집고 참새를 쫓던 낮의 분주함부터, 모깃불 연기 냄새, 하얀 박꽃, 밤하늘의 유성으로 이어지는 밤의 풍경까지 오감을 자극하는 묘사입니다.
아침에 펴서 곡식을 말리고, 저녁에 밥을 먹고, 밤에 이야기를 듣다 처마 밑에 말아 넣는 덕석은 하루 필수 도구였죠!
사라져간 풍경을 감상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짚어내시어, 아련한 향수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가끔은 옛일이 생각나는데 그것 중에는 순간이나마 펴놓은 덕석에서 펼쳐진 전경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중에서도 잠결에 졸다 일어나면 그때까지도 실낱같이 피워오르던 모기불의 가는 영상이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하나의 실루엣처럼 눈에 거립니다.
정겨운 고향 말 '덕석'에 깃든 손길과 곡식을 말리고 별을 세던 그 시절 정겨운 마당의 풍경을 퍼올려 주신 선생님의 귀한 작품 잘 읽었습니다.채 백 년도 되지 않은 세월 속에서 사라져간 덕석과 여름밤의 추억을 이토록 아늑하고 깊이 있게 짚어내신 선생님의 문장 결에서 삶을 향한 숭고한 예의가 느껴집니다. 이제는 사라져가는 많은 것들 중에 인간다움의 소중한 가치는 지켜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지금 자라는 아이들은 그런 정취를 짐작아나 할까요.
어릴적 시골에서 보낸 세월이 감성을 여전히 퍼올리며
글을 쓰게 만들지 않나 싶습니다.
점감어린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