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의 최후
임병식
평소에도 길 위에 나와 죽어 있는 지렁이를 가끔 보지만, 오늘 아침은 유난히 많았다.
며칠째 이어진 비 때문인지 잔뜩 흐린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질 듯했다. 우산도 없이 산책을 나섰다가 갑자기 굵어진 빗줄기를 피해 되돌아오던 중, 그만 지렁이 한 마리를 밟고 말았다.
이미 생명을 다해 가는 녀석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그 마지막 순간을 조금 앞당겼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발끝으로 전해진 감촉은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문득 생각했다.
왜 지렁이는 삶의 마지막에 흙을 떠나 길 위로 나오는 것일까.
빗물이 굴속을 메워 밖으로 나온다는 설명도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는 모습까지 모두 설명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짐작해 본다.
평생 어둡고 좁은 흙속에서 살아왔으니 마지막만큼은 넓은 세상을 온몸으로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눈도 귀도 거의 퇴화한 채 몸 전체로 세상을 감각하며 살아온 생명이다. 마지막 순간만이라도 흙 냄새가 아닌 바람의 냄새를 맡고, 하늘의 기척을 느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혼례식에는 가장 좋은 예복을 갖춰 입고, 떠나는 길에는 마지막 예를 다한다. 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가장 낮은 자세로 포복하듯 길을 기는 지렁이가 새롭게 보였다. 차바퀴도, 사람의 발길도 피하지 않는 모습은 체념이라기보다 모든 것을 받아들인 평온처럼 느껴졌다. 이제 하늘에 몸을 맡겼으니 어디로든 가라는 듯한 담담한 자세였다.
그러나 그 평온을 깨뜨린 것이 내 발이었다.
'왜 하필 내 발밑이었을까.'
그 생각은 머릿속을 오래 떠나지 않았다.
지렁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작은 생명 하나는 내게 삶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2026)
첫댓글 지렁이를 통해 생명의 엄숙함을 이토록 맑고 담백하게 풀어내신
청석님은 관찰을 철학적으로 승화시킨 사유수필의 모범 글입니다.
비 내리는 날의 공기처럼 서늘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을 따뜻하게 적시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격조 높은 글입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죽을줄 뻔히 알면서 길에 나와있는 지렁이는 이미 생의 끝을 예감한듯이 보였습니다.
죽어가는 마당에 무엇을 두려워하랴는 듯이 위험따위는 이미 내려놓은 모습이었습니다.
비록 환경 변화에 의한 현상이긴 하지만 불현듯 가스실 안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이 따오릅니다 그러다가 또 하마스 병사들이 은신한 지하갱도에 대량의 물을 투입한 아스라엘군의 행위가 떠오릅니다
땅속에서 숨어살다 최후에 쳥량한 공기를 마셔보고 싶어서 나온게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