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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4.28(주일) 히브리서 2:1~9 ’큰 구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예산수정교회
독일의 신학자이며 히틀러에 대항하다 옥사했던 본회퍼 목사는 [나를 따르라]는 책에서 ‘값싼 은혜'(Cheap grace)란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보지 않아도 알 것 같은 표현이기는 합니다. 은혜가 싸구려 취급당한다는 의미일 것 같습니다. 싸구려 취급한다는 것은 귀하게 여기지 않고 소홀히 여긴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런 의미도 있지만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를 읽어 보니 정교하게 이해할 부분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는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의 설교요, 공동체의 징계가 없는 세례요, 죄의 고백이 없는 성찬이요, 개인의 참회가 없는 죄 사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따르라, 김순현 역, 31-32) "값싼 은혜"라는 말로 본회퍼는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죄인의 의로움이 아니라 죄의 의로움을 말하는 것이 곧 값싼 은혜라고 설명합니다.(30) 죄인이 의로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죄가 의로움을 받는다는 것은 곧 죄짓기를 꺼려 하지 않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죄인이니까 그냥 마음놓고 죄를 범하자는 태도가 바로 "값싼 은혜'의 태도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은혜되게 하자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야 은혜가 임할 테니까요. 그러나 본회퍼는 이런 태도가 은혜를 싸구려로 만드는 태도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니라 값비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는 예수를 따르라는 명령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예수의 목숨을 대가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를 따르라"라는 책에서 값비싼 은혜를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미쳤기 때문에 그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속에서 예수를 따르는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본회퍼는 수도원 운동을 비판합니다. 수도원 운동은 예수를 따르는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일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마틴 루터가 수도원에서 나온 것은 매우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회퍼는 지적합니다. 본회퍼에 의하면 루터는 그가 발견한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는 은혜가 그의 생명을 날마다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합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값싼 은혜’라는 말을 통해서 사람들은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진리를 알기는 하여도 그 진리를 삶에 적용시키지 못하는 삶을 꼬집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큰 은혜를 너무도 값싼 것으로 전락시켜 버렸습니다.
히브리서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능력을 믿는 것을 ‘큰 구원’(3절)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작은 구원’이란 예수를 믿으면 나의 건강, 생업, 자녀, 삶의 질이 좋아진다고 하는 내용입니다.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라는 말은 성도들의 믿음이 작은 구원인 행복에 머물고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큰 구원인 거룩,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인격을 닮아가는 삶에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뛰어넘어서, 큰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며 우리에게 주신 영혼구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어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통해서 ’큰 구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이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기를 원합니다.
1.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1~4절).
큰 구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3절 상반절에서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ignore such a great salvation) 무시하다, NIV)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3절상)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경고합니다. 3절의 '큰 구원'이란 천사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셨던 율법의 구원 사역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구원을 의미합니다(Bruce, Morris, Hewitt). 성도의 구원은 6일 만에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수천 년 공들여 마침내 완성하신 사역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전 생애, 즉 성육신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그의 육체와 영혼 전부를 바쳐 고난을 받으시며 성취하신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기까지 통곡으로 기도하시면서 순종해내신 결과로 마련된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수많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피를 뿌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십자가 상에서 피 흘리신 후에야 획득된 구원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절묘하게 조화된 구원이며,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총집결된 구원히며, 구약의 모든 선지자와 초자연적인 천상의 존재인 천사들조차 할 수 없는 구원입니다. “이같이 큰 구원”(3절)을 소홀히 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보응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이토록 오랜 기간 온 정성과 목숨까지 다해 나를 위해 마련한 최고의 선물을 내동댕이치는 자라면, 무슨 좋은 것을 줄 수 있겠습니까? 큰 구원을 등한시 여기면 다른 것을 다 갖춰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잘 날 사람이 아니라 구원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쓰십니다.
(행복의 문을 여는 193가지 이야기 / 임한창)에 보면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에 대한 일화가 소개됩니다. 찰스 다윈은 인생의 말년을 매우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다윈이 운명하기 몇 달 전 호프 부인이 병실에 누워 있는 그를 방문했습니다. 성경을 펼쳐 들고 있던 다윈에게 호프 부인이 물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
다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성경입니다. 아주 고귀한 생명의 책이지요."
호프 부인은 성경 창세기를 펼쳐 보이며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허구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다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며 놀라운 간증을 털어놓았습니다.
"나는 참 미숙한 젊은이였습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의심을 품고 접근했습니다. 진화론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화론을 학문이 아닌 창조론과 적대되는 종교처럼 신봉하게 됐지요. 제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해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행복의 문을 여는 193가지 이야기 / 임한창)
다윈은 청년시절의 혈기와 미숙함이 빚어낸 진화론이라는 사상에 대해 깊이 후회하며 자신의 저작을 다시 회수하지 못하는 것을 한스러워했습니다. 그는 임종을 앞에 두고 늘 '위대하신 하나님, '비할 데 없는 구주여'라고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a)고 했습니다. 사도는 이전에 좋게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추구했습니다(빌 3:8). [빌립보서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 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 로서 난 의라” 사도 바울은 세상 사람들이 여전히 좋게 여기는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면서까지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님을 주목하고 바라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복음은 무엇입니까?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좋은 직장을 구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자식 낳고 키우는 것보다 못한 ‘이같이 작은 구원’입니까? 아니면 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내 목숨까지 잃어버릴지라도 부끄럽지 않은 ‘이같이 큰 구원’입니까? 성도가 복음을 받고서도 세상이 좋게 여기는 것들을 소유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부끄러워한다면,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선물을 ‘이같이 보잘것없는 구원’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마음가짐이 이런 상태인 성도는 참으로 두려워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 1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1절에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는 '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다'의 의미로 복음에 대한 관심 부족과 부주의로 인해서 진리를 잃어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성도가 복음의 진리라는 안전한 항구에서 떠나 위험하게 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결코 흘러 떠내려가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들었던 복음의 말씀을 반드시 ‘더욱 유념해야 합니다’ 즉 그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주목해야 합니다. 나의 말씀에 대한 평소의 무관심은 환난 날에 신앙을 뿌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항구에 정박해서 닻으로 고정하지 않은 배가 폭풍우가 몰려오면 사정없이 흔들리며 표류하는 것과 같이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려 놓지 않은 우리의 신앙은 이처럼 됩니다. 내 주위에서 거짓 복음이 맹렬하게 파도칠 때 말씀에 뿌리를 두지 않았던 약한 믿음은 파선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주목하여 굳게 붙든 사람만이 환난 날에도 그 닻을 내려 바닷물속 바닥에 든든히 고정해 둔 배처럼 견고하게 견딜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쉽게 적용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을 늘 가까이 함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그분께서 언약의 성취자요 계시의 종결자라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 의미들을 선명히 알기까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하여 늘 권면 받아야 합니다. 아들로 말씀하신 복음의 내용에 무지하면 할수록 교묘한 이단 사상에 흔들리기 쉽습니다. 또한 말씀에 유념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장악한 반성경적 사상을 분별치 못한 채 대세의 조류에 휩쓸려 떠내려갈 것입니다. 비유로 우리가 달리던 자전거를 갑자기 멈추면 정지 상태로 머물러 있지 않고 곧장 쓰러집니다. 이처럼 복음을 붙드는 일을 멈추면, 성장이 정지 상태에 머물지 않고 파선의 위험에 빠집니다(딤전 1:19).
적용) 나에게 주신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고자 내가 해야 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내가 부끄워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나는 들은 말씀에 유념합니까?
2. 오직 예수께만 복종해야 합니다(5~8절).
큰 구원을 소홀히 하지 않으려면, 오직 예수께만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을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지만, 부활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의 발 아래 만물이 복종하게 하셨습니다(7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장차 올 세상을 천사가 아닌 오직 예수께만 복종케 하십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찾아오면 우리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천사처럼 신비한 존재를 따라 가고 싶어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천사 같은 돈과 권세에 복종하지 않고 오직 예수께서 복종하게 될 때 “새 창조의 세상”(5절)을 누리게 됩니다.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 복종할 수 없습니다. 순종은 우리가 스스로를 낮추어 다른 이의 권위에 항복할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교만을 싫어하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또한 사람은 천사보다 열등해 보이지만, 주께서는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장차 올 세상을 주시려고 그를 생각하시고 돌보십니다(4절). 또한 나를 생각하시고 나를 돌보시는 주의 사랑을 생각하고 이 땅에서의 고난을 잠시 받는 것이라고 여기며 오늘을 믿음으로 기쁘게 사는 성도를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주십니다(7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아직까지도 주님께 복종하지 않은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재림 때에는 결국 모든 만물,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 복종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영원한 왕으로 임하시는 날까지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도 지금 이 땅에서 고난의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림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은 이 땅에서 주님의 돌보심을 받을 뿐더러 결국 주님께서 주시는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고 영원한 영광 가운데 살 것입니다.
[큐티인 간증] 술고난에 복종하기 홍태은
저는 믿지 않는 남편과 만난 지 3개월 만에 행복을 꿈꾸며 재혼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재혼한 뒤에는 도살장에 끌여가는 소처럼 살았습니다.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서 온갖 제사장과 술상을 차리고 무서운 시어른들을 대하면서 숨이 탁 막혔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말해봐야 소용이 없고 말씀을 읽어도 전혀 깨달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으로 맛보려 하신 예수님과 달리, 저는 시댁의 무시가 싫고 어디서든 인정과 대접을 받고 싶었습니다(9절). 그러니 제 안에는 ‘왜 하나님이 나를 이런 힘든 곳에서 꺼내주시지 않을까?“라는 생색과 원망만 가득했습니다.
그때 저는 저를 생각하시며 돌보시는 주님의 인도로 믿음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6절). 그곳에서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면서, 지금의 고난은 큰 구원을 등한시 여기고, 불신 재혼을 선택한 새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3절). 그리고 오직 예수께만 복종하는 지체들의 본을 따라 저도 결혼의 목적이 행복에서 거룩으로 바뀌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의 구원을 간구하게 되었습니다(8절).
올해 설 명절에 저는 둘째 아주버님이 암 치료를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남편과 함께 아주버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아주버님은 홀로 방 한편에 누워 잠들어 계셨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무런 소망 없는 마른 뼈처럼 보였습니다. 순간 저는 ‘친정 아버지도 술로 고독사하실 때 저런 모습이셨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남편에게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아주버님께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하자 남편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등록한지 10년이 지나도록 주일예배만 가끔 드리던 남편이 처음으로 수요예배에 나왔습니다.
이 일은 저주의 사건이 아니라 아주버님을 주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려는 축복의 사건인 줄 믿습니다(8절). 친정 아버지와 시댁의 술고난 가운데 말씀이 들려 구원을 위해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적용) 혼자 계시는 아주버님께 겨울 옷을 선물하겠습니다. 아주버님이 교회초청을 거절하셔도 상처받지 않고 지혜롭게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이 없고,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우리의 삶의 모범이십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 결국 하나님 주시는 영광과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말씀을 적용하며 살아갈 때 여러 가지 고난을 받게 됩니다. 때로는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때로는 이로 인해 핍박도 받고 오해도 받고, 억울함도 당하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처럼 여러 가지 수모와 멸시와 고통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0절에 주님을 위해서 핍박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11,12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로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먼저 이 땅에서 고난을 받으셨기에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이 땅에서 고난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나타난 영광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받게 될 하나님의 복과 은혜와는 비교조차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주시는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생각하고 이 땅을 매일 매일 살아가는 사람은 이 땅에서 내가 받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수고의 십자가를 잘 참고 묵묵히 인내하며 주님께 기도하면서 믿음으로 잘 감당합니다.
적용) 천사보다 못한 내 모습과 환경이지만, 그것을 통해 나를 생각하시고 돌보시는 주님을 만났습니까? 재림의 주님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믿음으로 인내하고 있습니까?
결론)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구원 받은 자는 계속해서 들은 것에 유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게 됩니다.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큰 구원을 소홀히 하지 마십니다.
* 믿음이 자라지 않는 10가지 이유 (‘평생 믿어도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10가지 이유’ 중에서, 탐 알렌)
1) 깊이 없는 그리스도인의 실상 - 그리스도와의 내적 생활을 무시하고 외양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2) 독불장군 신드롬 - 교회에서 이탈해 나와 혼자 힘으로 성공하려고 하기 때문에
3) 이중인격 -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삶의 질서를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4) 까마귀 노는 곳 - 성장에 미치는 외부 영향력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5) 분산작전 - 중요한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6) 사해 신드롬 - 주지는 않고 계속 받기만 하기 때문에
7) 청룡열차 신앙 - 믿음으로 아니라 감정으로 살기 때문에
8) 시련을 쓴 뿌리로 키우는 문제 - 낙심과 비극을 더 좋은 기회로 삼지 않고 쓴 뿌리로 키우기 때문에
9) 얽매이기 쉬운 죄 - 죄를 즉시 그리고 철저히 처리하지 않기 때문에
10) 그 코끼리 내가 안 죽였소! -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의 완전한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 풍성한 생명을 누리는 법
1) 자기를 부인하라.
2)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3) 날마다 새로워지라. (1) 우리는 죄를 매일 처리해야 한다. (2) 자아에 대해서 매일 죽고 성령으로 새롭게 채우심을 경험해야 한다. (3) 힘을 얻기 위해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4)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어야 한다.
# ‘잘 마쳤다’고 말한 바울의 마지막 말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1)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
2) 나는 경주를 끝냈다.
3) 나는 믿음을 지켰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우리에게 주신 큰 구원을 소홀히 하지 마시고, 들은 말씀에 유념하시고, 말씀을 소중히 여기시며, 주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지 마시고 믿음에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