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열일곱살 때 들어가 스무살에 졸업하고 그 이듬해에 폐교된 나의 모교 대전사범학교는 지금 없습니다. 사라졌습니다. 세월에 묻혀 빈티지가 된 나의 모교는 추억더미 속에서 아직도 아쉬움과 그리움의 진주알로 남아 반짝이고 있습니다. 사라져버렸음에 서글퍼지면서도 모교에 대한 고마움이 새록새록 살아남은 무슨 연유일까요? 나이들어 조금 철들었다는 투정일지도 모릅니다.
그 학교를 나오면 선생님이 된다는 어린 소견만 가지고 입학시험을 보러 혼자 대전행 기차를 탔습니다. 음악 실기시험에서 불러보라는 노래 곡목들 중에 아는 노래라곤 오직 하나 '해는 져서 어두운데' 뿐이었지요. 그 노래의 제목이 '고향 생각'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렇게 어리숙한 촌뜨기였습니다. 합격한 게 이상했습니다.
입학하자마자 정말 낯선 과목들이 앞을 가로막고 쭉 서 있었습니다. 그런 컬리큐럼들이 일반 고등학교와 달랐던 것에 무척 당황했고요. 특히 여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던 무용실습과 '도쏠미쏠' '도라파라'하면서 하는 올갠실습은 정말 하기 싫었고 , 눈물짜게 했습니다. 또 대학에서나 배운다는 철학과목까지 있었지요. 그냥 참고 따라갔습니다. 나중에 보니 지적편식[知的偏食] 없는 골고루 균형잡힌 식사를 한 셈이 되었고 , 전인적 인격형성에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대전사범학교에 참 고맙다는 말씀을 안 드릴 수 없습니다. 조금 부끄러운 얘기이기는 하지만 요새 술자리에서 막춤을 춰야 할 때, 내가 친구들을 따라 몸을 흔들 용기를 가질 수 있는 것도 그 때 무용실 덕택이 아닌가 합니다.
또 독일어 불어 중국어를 사범학교에서 안 가르쳐 준 것에도 감사를 드려야겠습니다. 대입시험을 보러 가니까 법대에서는 제2외국어를 필수과목으로 요구했고, 문리대에서만 우리같은 사범학교 졸업생들을 위해서 제2외국어 대신에 물리 화학 생물 중 택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물리를 선택했지요. 제2외국어 때문에 법대 못간 것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니 그게 아닙니다. 유유자적하는 나의 감성은 법대생이 아닌 그 때 문과에서 길러진 것이었으니까요. 물리를 가르쳐주고 문과생이 될 수 있게 해준 대전사범학교에 감사합니다.
40여년 전 일반 행정조직에 들어갔을 때 거기에 선후배가 없었음을 감사합니다. 일반 고등학교 나온 친구들은 밀어주고 끌어줄 선후배들이 즐비했지만 나는 혼자였습니다. 외로웠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신세질 것 없이 각개약진 한 것이 더 자유스럽고 떳떳한 것이었음을 나중에 깨달았지요. 승진이 조금 늦어지고 신상이 고달팠지만 나에게 홀로서기를 만들어 준 대전사범학교에 감사드립니다.
또 사범학교가 부여가 아닌 대전에 자리했던 것에도 감사합니다. 1학년 때 쌀푸대를 메고 세도나루까지 와서, 강을 건너 강경역에서 기차 타고, 대전역에 내려 삼성동 자취방까지 가야만 할 때는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대전 사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고, 나의 자취생활이 참 쪽팔리고 싫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그 때 밥짓고 반찬 만들고 빨래하던 것은 생존기술을 터득하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지요. 가끔 마누라가 집에 없을 때도 나 하나 생존하는데 근심할 이유가 없음은 물론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 사범학교는 학생수가 대전공고보다 턱없이 적었습니다. 거기에 여학생이 거의 반이나 되었고요. 농구시합 때마다 우리학교는 질 때가 많았고, 지고나면 여간 분하지 않았습니다. 응원단 숫자도 우리가 훨씬 적었고, 걔네들이 우리보고 암캐구리 수캐구리 꽥꽥하며 놀려댈 땐 ,더욱 더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들이 우리 동창들처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갈까 의문이 생깁니다. 여학생 동창 하나 없는 삭막한 그들의 동창회를 상상할 수도 있고요. 지금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귀한 우리 동창들을 갖게 해준 사범학교에 깊이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 동창회는 한시적입니다. 아쉽습니다. 우리 세대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겠지요. 내 맘을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꽃도 지는 거니까 더 예쁜 거고, 반짝이는 별들도 아침이면 사라지니까 더 영롱해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 동창회도 사라지는 거니까 더 귀중할 거고. 그런 이치를 알면서도 비바 ! 대전사범 !을 목놓아 외치지 않을 수 없음은 무슨 연유일까요 ?
첫댓글 Viva! Daesa. You're a spokesperson of us.... I think, you described yourself so well above exactly in my place. Thanks for your speaking.
어린 나이에 힘 들었을 추억 들을 나이 들어 아름답게 승화시킨 귀연님의 마음과 글 솜씨에 찬사를 보냅니다 . 자랑스런 우리 사범학교, 사랑 합니다, 사랑 했습니다
우리 대전사범학교의 고교교육과정은 전무후무한 최고의 알찬 전인교육과정이었습니다. 교육현장에서 생활하고 보니 우리들은 행운아였던것 같습니다. 사범학교 다닌 것을 후회 한적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보람된 점이 더 많았던것 같아요. 우리들과 영원이 함께 묻힐(?) 대전사범이여! 감사
취직이 보장되니 너도 나도 선호했던 대전사범이 아니었던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좋은 글 읽으니 이 아침이 거워요.여자 동창 댓글 쓰고... 대전공고 카페에 이런 모습 있겠어요
남자 동창 글 올리고
감사와 감사, 낮아짐에 더욱 낮아지려는 겸손함, 둥굴게 성숙되어져 가는 귀연님의 향기가 글에 맺혀져 오네요. 우리 여학생들이 있어서 좋지요 우리들은 남학생들이 있어서 무척 좋거든요 오들도 거운 하루를 감사.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제 조청장이 철이 들어가나 이렇게 지나온 삶을 반추하는데 칠푼이 되어 가는 나는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앞으로 갈 생각만 하는데 언제 철이 들려나 팔푼은 훨씬 넘겨야 하겠지
서울에 있는 여학교 갈려다가 주저앉은 대전사범 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부모님 말씀처럼 여자에겐 최고인 전인교육장 이었습니다.
문학의 피가 흐르는 그대.대전사범 나오고 서울대 가고. 토끼 세마리를 다 잡은 거네. 생각할수록 통쾌한 일이로다 .감사
당신의 오늘이 있기까지 모든 것을 모교애로 귀착시키는 따뜻한 마음과 아름다운 시각, 겸손함과 후덕함! 당신 땜에 나도 덩달아 철이 들어가는 느낌을 갖어 봅니다--아쉬움과 미련속에 우리의 모교는 사라졌지만
끈끈한 동문애만은 잊지 말고 지내십시다. ㄱ ㅅ
바른 심성을 가진 친구들바른 사고를 가진 친구들도전하면 이루어졌던 두뇌들 가진 친구들아직도 더 높은 곳에 도전해 보지도 못하고 안주해 있었던 지난 세월에 잠깐 아쉬움도 가져봅니다. 감사
귀연님의 삶의 자취는 진실과 뚝심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성취 ...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 우리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줗은 글 감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