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읽지 마시길 권합니다. 스포일러 강합니다.세상이 온통 ‘조작’으로 시끄럽습니다. ‘조작(造作)’은 ‘어떤 일을 사실인 듯이 꾸며 만듦(네이버 국어사전)’을 의미하는데, 그럴 듯하지만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2010년 개봉한 설경구, 류승범 주연의 영화 <용서는 없다(No Mercy)>는 그런 조작에 관한 내용입니다.
영화는 금강 하구둑 부근에서 목과 사지가 절단된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됩니다. 과학수사대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존경을 받는 강민호 박사(설경구 분)가 이 시신의 부검을 맡게 됩니다. 강 박사는 엄마 없이 희귀병으로 고생하다 13년 전에 유학 간 딸이 하나 있는데, 그는 며칠 후 딸이 귀국하면 과학수사대를 그만둘 예정입니다.
여섯 토막 사체의 신원은 군산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오은아로 확인됐습니다. 강 박사와 이 사건을 담당한 신참내기 형사 민서영(한혜진 분)은 범인이 사체의 지문과 얼굴을 훼손되지 않았다는 점과 살해 현장(레미콘 공장)에 팔 한쪽을 남겨 뒀다는 점을 통해 범인이 무엇인가 메시지를 던지려 한다는 것을 추리해 냅니다.
과거는 잊으려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경찰은 처음 살인 용의자로 죽은 오은아의 기둥서방인 민병도를 조사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습니다. 이때 민 형사는 “살인에는 이유가 있다”는 강 박사의 조언을 받고, 새로운 용의자로 ‘아이 러브 비너스’라는 지역 환경운동단체의 대표 이성호(류승범 분)를 지목하게 됩니다.
민 형사는 이성호가 금강에 대한 과도한 집착, 하구둑으로 금강의 생태계를 훼손한 것에 분노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추리해 냅니다. 환경 파괴를 토막 살인이라는 끔찍한 사건으로 이슈화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입니다. 사체가 유기된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이 척추 장애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이성호의 것과 동일하는 것도 이성호가 범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경찰 취조실에서 민 형사의 추궁을 받던 이성호는 자신이 범인임을 순순히 자백합니다. 같은 시각, 공항으로 딸을 마중 나온 강 박사에게 낯선 남자가 다가와 이성호가 전해주라는 봉투를 건넵니다. 그 속에는 강 박사의 딸이 납치된 사진이 들어 있습니다. 영화는 이때부터 ‘살인의 진짜 이유’를 보여줍니다. 이성호가 왜 토막 살인을 저질렀으며, 강 박사의 딸을 왜 납치했는지, 그리고 이성호와 강 박사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를 말입니다.
이성호는 강 박사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강 박사의 딸을 살리려면 자신을 경찰서 안에서 3일 안에 빼달라고 말합니다. 이성호는 “사람이 왜 약해지는지 아세요? 잃을 게 있어서 그래요”라면서 강 박사를 압박합니다. 할 수 없이 강 박사는 증거를 조작합니다. 사체를 토막 내는데 사용됐던 도구에 묻어 있던 피를 바꿔치기 하는 것으로 시간을 벌게 됩니다.
이어 강 박사는 이성호와 자신의 관계 알아내기 위해 이성호의 현재를 찾아다닙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과거 기억과 연관된 인물임을 알게 됩니다. 10여 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이성호의 누나가 고위층 자제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관련한 재판 과정에서 이성호 누나의 친구였던 오은아는 돈에 매수돼 위증을 했고, 강 박사 역시 희귀병 걸린 딸의 치료비 때문에 부검결과를 조작해 증언했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이성호의 누나는 자살을 하게 됩니다. 이성호는 “과거는 잊으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면서 그 때의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강 박사는 이제 딸을 살리기 위해 살해된 여인의 동료를 이용해 민병도의 체액을 얻게 되고, 그것을 사용해 결정적 증거 조작을 시도합니다. <용서는 없다>의 충격적인 결말 부분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이 직접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진실 조작’이 계속되는 이유 <용서는 없다>는 ‘조작’과 ‘조작’이 어떤 파국으로 귀결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적으로 극대화 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입니다. 강 박사가 살인 사건의 증거를 조작하는 것처럼 만큼 우리나라 실제 수사 및 증거 보관 시스템이 그렇게 허술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지금이 자유당 시절처럼 허술한 사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사회는 여전히 ‘조작’이 판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국가의 중요 기관이 나서서 말입니다. 이는 매우 불행한일이며, 부끄러운 일입니다. 또한 있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서 국가의 공식 정보기관이 나서서 국민의 여론을 조작하려고 했습니다.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도 범죄를 단속할 집단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축소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없는 간첩을 만들기 위해 외교문서까지 조작했다는 강한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한 술 더떠, 이런 조작을 옹호하기 위해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의원은 타국을 비하 하는 망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처럼 과거 ‘조작’으로 재판이 잘못됐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국가 기관은 이 역시 부정하고 있습니다. 2014년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개인적 차원에서 ‘조작’하는 것도 문제가 되는 판국에, 자유당 시절도 아닌 현재도 국가 기관이 진실을 조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조작의 피해는 국민이 받고, 이득은 ‘자기들’만 누리는 상황은 결코 정의롭지 않습니다.
조작이 계속 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진실을 조작했던 이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가올 지방선거에서 진실을 조작해 자신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려 했던 이들이 당선되면, 진실은 계속 조작될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