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의술] 자비로운 일격과 혈관묶음
 
32년간 전장에서 쌓은 경험… 의학 발달 ‘자양분’
 
법파레, 1537년 ‘프랑수아 1세와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전쟁에 외과의사로 종군 시작
상처 불로 지지는 지짐법 대신 혈관묶음법 고안해 출혈 막아
심한 염증·환자의 고통 덜어
 
무릎 위 절단술을 시행하는 군의관 파레. 삽화=김성욱
절단 부위를 열로 태워 출혈을 막던 지짐기들.
필자 제공 |
프랑스의 의사 암브로이스 파레(Ambroise Pare 1510∼1590)는 의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이다. 그는 26세 때인 1536년 전장에서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파레는 군의관으로 복무 중 화약에 심하게 화상을 입은 두 병사를 만났다.동료 병사가 다가와서 그 두 환자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잊을 수 없는 경험
가망이 없다고 생각한 파레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그 병사는 조용히 단검을 꺼내 부상한 두 병사의 목을 그어버렸다. 파레는 놀라서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이 악당(A villain)아!”
그러자 동료를 죽인 병사가 대답했다. “만일 내가 그런 상태가 된다면, 누구라도 나를 이같이 만들어달라고 신에게 기도할 거요.”
그 병사가 한 일을 두고 우리는 자비로운 일격(coup de grace)이라고 부른다.
파레는 이처럼 부상한 병사들은 고통을 당하며 목숨을 부지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이때부터 어떻게 하면 환부에서 통증이 유발되지 않는 치료를 해줄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총상 치료법인 ‘지짐법과 혈관묶음법’
전장에서 총상을 입은 환자는 출혈을 멈춰야 생명을 살릴 수 있다. 16세기 중엽까지는 교황청 의사인 비고(Giovanni da Vigo·1450∼1525)가 1514년 발표한 ‘외과 실제’에 수록된 총상 치료법이 널리 쓰였다. 총상 부위에 끓인 기름을 부어 지져서 출혈을 멎게 하는 방법이었다.
파레는 1545년 ‘화승총이나 기타 총으로 인한 상처 치료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그 후로는 부상자의 사지 절단 수술을 할 때나 동맥 출혈을 지혈할 때 상처 부위를 불로 태우는 지짐법(cauterization) 대신 혈관을 실로 묶는 법(ligation)을 도입해 출혈을 막을 수 있었다. 그가 묶음법을 고안하고 시행한 이유는 지짐법 후 염증이 잘 생기고, 환자가 매우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이다.
파레는 1537년 프랑수아 1세와 신성로마제국 카를 5세의 전쟁에 외과의로 종군을 시작해 1569년 몽콩투르 전투까지 32년간 현장을 누비며 경험을 쌓았다.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헛팔다리통증’
1564년 발간한 책 『외과 논문(Treatise on Surgery)』에서 그는 사지 절단 환자가 상실한 팔다리를 아직 있는 것처럼 느끼고 그곳에 통증을 느끼는 증상을 기술했다. 그것이 유명한 헛팔다리통증(phantom limb pain)이다. 이 증상은 잘려나간 팔다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뇌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독일의 의사 출신 작가 되블린이 쓴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는 트럭에 치여 한쪽 팔을 잃은 주인공이 그 잃어버린 팔이 얼마나 아픈지 통증으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해 하소연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나온다.
이 헛팔다리통증은 보통 간헐적으로 나타나고 그 주기와 감각의 강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줄어드는 것이 보통이다. 절단된 팔다리의 신경 말단부에 순환장애나 ‘유착반흔(조직이 비정상적으로 결합해 생긴 흉터)’이 있으면 증상이 생기기 쉽다.
정신적 요소도 악화 인자 중 하나고 정신적으로 평온한 상태에서는 통증도 적은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불안, 날씨 변화로 인해 더 악화할 수도 있다. 치료법으로는 안정제·진통진정제 등의 약물 요법 외에 재절단술을 시행하고, 심하면 교감신경절단술이나 척수후근(척수의 운동신경 다발이 뒤쪽으로 나온 것) 절제술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이란 가지고 있지도 않은 팔다리에서 통증을 느낄 만큼 섬세하고도 감각이 발달한 존재이기 때문에 파레가 전장에서 겪은 경험으로 이룬 의학의 발달이 더욱 소중한 것이리라.
<황건 인하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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