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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휴가 기간에 단 하루의 일정을 잡아 폴신님과 함께 고향 대야를 찾았다. 나그네가 처음 서울 상경 때 7시간쯤 들여 갈 수 있었던 곳을 이제는 3시간이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거리이다.
반세기를 살아가면서도 고향을 잊어 본적은 없다.
그러면서도 사람을 만나는 일이나 특별한 볼 일 없이는 쉽게 찾아가지지 않는 곳이다.
고향은 그 산천과 함께 옛사람들을 찾고 떠올리는 곳이지만 오늘 만큼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그 땅에서의 추억을 따라 돌아볼 생각이었다.
옛사람과의 대화는 어릴 때부터 늘 함께 해온 폴신님과 함께 동행 함으로 옛추억을 되살려 내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고향은 말 없는 자연만으로는 우리를 맞기에 부족했나보다.
기다려 주고 맞아주며 식사 대접까지 준비해 주신 고향인들이 반겨주었다.
8년 후배 김상철 님과 18년 후배 김성원 님과 백국현 님이 마침 시간을 내어주어서 더욱 고마웠다.
우리 모두는 신앙이 같기도 하여서 삶의 진정한 의미속에서 세대를 초월하여 이루어지는 선후배와 고향인으로서의 대화들을 식사중에 마냥 좋고 진지하게 나눌 수 있었다.
김상철 후배님은 대야노인복지센터 원장님으로 근무 하시며 직원들과의 관계도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봉사하는 마음이 우선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미루어 볼 수 있었다.
우리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였던가? 회화나무가든에서 음식 나누는 옆 자리에 식사 하시는 선배님들이 계셨고 마침 마땅히 찾아뵙고 싶었던 두용균 선생님(4학년담임)께서 앉아 계셨다.
"오~ 일성이~ 나, 자네 군산신문에 난 기사도 읽었어~!" 포옹의 인사를 나누시며 2년 전의 일까지 잊지 않으시고 말씀해 주셨다.
어린 나그네의 사고가 싹이 틀 무렵 인간의 죽음과 삶, 그리고 신의 존재에 대하여 선생님께 어려운 질문을 많이 드렸으며 가난한 중에 선생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새로왔다.
동군산의 입구는 대야에 들어가는 입구이다.
대야 삼거리~.. 면 소재지에서 삼거리라면 번화가 거리이다. 익산 방향의 전군도로와 김제 방향의 지방도로의 갈림길이며 군산선 기찻길이 교차하고 그 너머에는 어릴 때부터 봐 왔던 검문소가 아직도 있다.
가까이에서 본 대야 삼거리.. 임피 성산 방면의 길로 구 시장과 연결된 상권의 거리지만 소읍지의 구거리는 발전보다는 쇠퇴해가는 모습이다.
폴신님과 나그네 어릴 때 생활 속에선 하루에 두 번 이상은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거리이다. 유일하게 가까운 거리에 다방이 두 군데 있었는데 이젠 하나도 없다.
군산 방향으로 돌아서 본 중심 거리. .몇년 전까지도 교통 체증이 심했었는데 새 길이 두 곳 뚤려 생기고 산업도로가 나면서 조금은 한가한 느낌이다.
삼거리의 증인 옥구 철물점 마님..
이 곳으로 시집와서 그 많던 가족들 모두 떠나보내시고 51년 째 지키고 사셨다니~..
오봉리에서 동오산으로 연결된 마을 모습..
대야초등학교 등하교시에는 정문보다 훨씬 많은 어린이들이 이 길을 걸으면서 지났다.
오메산 봉우리와 초등학교 강당 건물이 보인다.
석화리로 향하는 길과 구 시장길에서 삼거리로 연결 된 길..
5일 마다 서는 장날엔 가장 붐비던 길이다.
얼마전에 교회당 신축 헌당 예배 드린 대야 교회 예배당전경
양철지붕 흙담 건물일 때 나그네와 폴신님이 신앙생활을 같이 했었는데 두 번 이사하며 최신 설비로 지어진 예배당이다.
나그네가 어린시절에 살던 초가집은 헐려진지 오래이고 그 집터 자리에 새로지은 집이 보인다.
나그네 외로울 때마다 마당 앞에 서있는 팽나무를 주시하던 그 옛날의 감정을 지금까지도 저렇게 푸르게 자라서 보여주는 나무에게 옛이야기라도 나눠보고픈 심정이 들었다.
집으로 드나드는 저 골목길~..
지친 걸음 느린걸음 바쁜 걸음 빠른걸음..
물통도 지어 날라 보았고 땔감으로 맵겨도 지고 날라보았었다.
겨울철 하얀 눈길을 새벽기도회에 가느라 첫 발자국 그려내고 도깨비 장난으로 임신한 새댁 놀려드리던 골목도 바로 이 길이다.
바로 이 길~.. 강씨 아저씨네 밭이 있던길~..
집 뒤로 올라가면 옥수수 심어놓은 밭이 있었다.
나그네 초등학교 1학년무렵~.
어린 마음에 생 옥수수 한개를 따다가 주인 강씨 아저씨에게 들켰었다.
강씨 아저씨는 어린 나그네의 두 손목을 끈으로 묶더니 나무에 매달아 놓겠다고 끌고 갔다.
그 때 17년 위인 형님이 듣고 오셔서 그만한 일로 어린아이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다투던 모습이 지금도 떠올랐다.
아~! 남몰래 그런 것에 손대는 것이 그렇게도 무서운 것인가? 지금도 생각하면 온 몸이 오싹한다.
나그네 소년은 자라면서 책을 들고 이 길을 지나 산으로 가서 저 눈 앞으로 펼쳐진 대야 들판을 멀리 바라보면서 자랐다.
멀리는 만경강과 서해 바다까지.. 동남 쪽 전주 방향으로 보이는 희미한 노령산맥 줄기위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솜털 구름을 보면서 꿈의 소년 시절을 보내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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