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야산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과 해미면 그리고 당진
군을 걸쳐 있는 산으로 가야봉 석문봉
원효봉 옥양봉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통일신라시대 석문봉 자락
명당 자리에 가야사라는 절을 세운뒤
가야산이라 이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가야사 명당
터는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 가야사라는 사찰이 있었으나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2대에 걸쳐 천자
가 나올 명당 터라는 풍수가의 말에
가야사를 불을 지르고 탑을 부순뒤
경기도 연천에 있던 부친 남연군
이구의 무덤을 옮긴 것이다.
이는 대권의 꿈을 이르고자 지관의
도움을 받아 흥선 대원군이 아버지
묘를 이장을 하였다 한다.
현대사에도 이름을 거론하면 누구나
알수 있는 대통령 후보자들도 대권을
꿈꾸고 산새가 좋은 예산 지역 명당
자리를 찾아 조상의 묘를 이장하였
지만, 그 들은 대권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중도 하차 하였다.
특히 남연군 묘는 독일인
상인이자 개선교 신자 오베르트는
남연군 묘를 도굴 하다가 석회가 두
꺼워 실패 하고 도망 하게 되었고 이
로인하여 병인박해 천주교인들이
순교를 당하게 된다.
또한 프랑스 중국등 서양인들이
남연군의 시신을 도굴하여 이를 이
용해 통상 압력을 가 하고자 하였
던 역사 현장이기도 하다.
남연군 묘 동북쪽 150m 떨어진
계곡에 북향하고 있는 미륵불이
하나 있다.
이름하야 상가리 미륵불 이다.
볼래 가야사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
묘를 쓰자 묘를 바라보고 있던것이
방향으로 돌리게 되었다는 설도있고
북쪽 계곡쪽으로부터 쳐 들어오는
적의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북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보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관음보살 불상이다
미륵불 옆으로 산길을 따라 서산시
운산면 고풍리 쪽 정상에 이르면 크
나큰 장승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그곳을 지나다보면
계곡은 계곡으로 이어 산과 산
사이로 맑은 시냇물이 흐른다.
산새들이나 살듯한 곳에
몇몇 촌로들이 모여 사람 손길이
다다르는 계곡이다.
"이씨조선 500년은 전주이씨
이성계 태조로부터 27대 순종까지
왕들이 계승하고 양반들의 당파싸움
으로 분열되어 당파 싸움에 눈이 멀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겨 35년을
치욕으로 왕조는 마감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을
가야사 명당 터에 쓰고 지관의 예언
대로 대원군의 둘째아둘 고종과
고종의 둘째아들 순종이 2대에
걸처 대권을 잡았다.
현대사에도 대권 주자들의 조상의
묘를 예산의 명당 터를 찾아 이장하게
된 동기도 이를 보고 그들도 대권을
잡기위해 이장 한것으로 보인다.
정상에 이르러 장승 옆 쉼터에
앉아 할머님 살아 생전에 가끔
말씀하시던 "나는 옹주다"라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
선조가 덕산에 모셨저 있다라고
하시던 생전의 말씀이 생각난다.
할머님의 존암은 전주 이씨
효자 숙자 이시다.
할머님의 가족 계보는 알수는 없지만
할머님의 어린시절 할아버지님이 왕
족의 피줄로 옹주님이라고 불러
주셧는지도 모른다.
남연군이 이구의 계보도 전주 이씨
라는 것, 그러나 근거를 찾을길 없고
기억속에 남을 뿐이다.
남연군 묘는 풍수 지리를 잘 몰라도
위치는 정말 참 좋아 보인다.
주의의 산새가 앞 뒤 옆을 감싸않고
물을 안고 있는 지리적 위치는 누가
보아도 좋은 곳, 명당 터 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석문봉의 뒤심이 곳게
내려와 뭉치곳에 위치하고
묘 주의에 단단한 바위가 땅
심이 강한 명당 터 임을
짐작게 한다.
상가리 미륵불 사이 계곡을 지나
장승옆 휴식터에서 잠시 머물어
할머님 생전에 해주신 말씀을
더듬다가, 장승과 한 컷하다.
굿데이!/ 김 통장











카페 게시글
힐링!/ 굿데이!!
가야산의 명당자리
김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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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2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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