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하는 민시야
오늘 예배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성령’이라고 할 수 있다. 예배를 드리며 찔리는 점도 있고 결심하게 된 것도 있다. 다양한 생각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이번 예배에서 지식과 습관으로 아는 것이 아닌 성령으로 알고 고백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 찔렸다. 나는 모든 것을 습관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월리 가기 귀찮다고 투덜거렸다. 요새 중학교를 다니며 지치고 피곤해 토요일이라 쉬고 싶었다. 그런 나한테 언니가 왜 월리를 왜 다니냐고 물어봤다. 나는 습관적으로 다닌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보면 좋기도 한 습관이지만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말씀 읽는 것도 습관으로, 찬양 부르는 것도 습관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가 깨닫지는 않고 습관적으로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인지 고백하라고 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나는 이번 예배를 마친 후에 하나님께 간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게 해달라고 말이다. 더 이상 습관적으로, 지식으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닌 성령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누는 김하랑
도마는 예수님의 존재를 의심했다. 그런데 나도 다를 것 없이 예수님이 계신지 의심해 본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정말 주님이 계실지, 우리 곁에 계시는지 요즘 들어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러한 의심이 드니 신앙생활도 소홀해진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잠을 택하고, 예배 시간에 집중하지 않는 날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머릿속으로는 예배에 집중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지만 행동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예배에서는 찔리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게 살았는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도마에게 자신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믿냐고 말씀하셨다. 너도 주님이 나 앞에 오신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떳떳하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주님은 자신을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이제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의심을 버리고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삶을 살길 바란다.
담대한 고이든
도마가 예수께 대답하기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하니 예수께서 도마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도마는 예수께서 열두제자들에게 찾아와 모습을 보이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의 못자국을 보고 손가락을 넣어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런 도마의 불신앙을 보고 예수님은 친히 도마에게 나타나 자신을 보이셨다. 그제야 도마는 예수님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의심을 떨쳤다. 나는 이 말씀이 예수님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마의 모습에서 보았듯이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고 보지 못하는 것은 쉽게 믿지 못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그중에서도 나 자신만 보고 나 자신만을 믿도록 부추긴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다. 물론 쉽지 않겠지만 보지 않고도 믿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내 신앙에 불신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가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 주신 말씀과 기도를 통해 내 믿음을 지킬 것이다.
성실한 장영찬
나는 예수님을 믿는가? 진심을 다해 고백해 본 적이 있는가? 답은 반반이다. 분명 머리로는 예수님을 믿고 찬양하고 있는 내 몸은 정작 그렇지 않은 거 같다. 항상 말씀을 들을 때면 사탄이 내 옆에서 정말 그런 거 같아? 이건 과학적으로 설명 못 하지 않아? 신학 관련된 행동을 할 때면 시도 때도 없이 사탄이 속삭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하나님은 응답이 없으셨다.
오늘 예배를 드리고 내가 진심으로 고백하고 찬양할 때를 생각해 보면 3가지 정도가 있다. 찬양할 때, 수련회 할 때, 기도회 할 때이다. 이때만큼은 사탄의 속삭임보다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럼 앞으로 사탄의 속삭임을 어떻게 없애야 할까 모두 기도라고 하지만 내가 경험해 본 바 기도는 어려웠다. 답은 진심으로 회개하고 찬양 드리며 고백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나의 믿음이 성령님이 내 옆에 있게 하시고 내 기도를 들으신다. 난 앞으로 그 어느 순간, 찰나에도 감사하며 진심을 다해 고백해야겠다.
도전하는 강현준
오늘 은혜로운 김미순 선생님에 나의 고백 이란 강의를 하셨다. 오늘 강의 시작 전 요한복음 20_21장을 읽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 도마, 베드로 등이 나왔다. 특히 이번 강의에 대해서 중요하게 다뤘던 사람은 도마와 베드로였다.
도마와 베드로의 공통점은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을 고백했다는 점이다. 도마는 다시 살아나는 예수님을 직접 보고 고백했고, 베드로는 고백했지만 바로 예수님께 꾸중 받고 다시 살아나신 후 3번이나 고백했다. 나는 직접 보지 않고 믿고, 3번이나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뻐하는 김담희
예수님을 알고 산 지는 18년이 되었지만,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주님의 능력들이 진짜일까 궁금했고, 시험에 들기도 하고, 의심했다. 지금도 사실 순간순간 예수님을 의심하고 탓하기도 한다.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지만 점점 커지는 의심을 막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주일이, 그리고 월리에서 예배드릴 시간이 간절해졌다. 요즘은 매일 큐티를 하며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내가 모르는 하나님의 모습을 알 수 있고, 매일 나의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그런 마음을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이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지 못한 도마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나에게서 조금만 멀어져도 믿음보다 의심이 앞서가는 나의 모습이 예수님을 직접 보지 믿을 수 없다는 도마 같았다. 이 마음을 회개한다. 도마처럼 주를 믿지 못했던 것들, 주님을 진심으로 모시지 못했던 것들 모두 회개하며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나의 전부로 받아들이며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슬기로운 민시은
부끄럽지만 솔직한 내 상황을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 절박하다. 감기에 걸렸는지 어제부터 몸 상태가 안좋고 목이 아프다. 시험은 점점 다가오지만 늘상 시간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그래서 말씀을 읽고 싶다는 생각도 안들었다. 오히려 하나님께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나님께 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무덤 앞에 울고 있는 마리아를 부르시는 부분이 있었다.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어리석어 보이고 잘 이해되지 않았다. ‘어떻게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은혜로운 선생님 말씀을 듣던 중 깨달았다. 예수님이 지금 나를 그렇게 부르고 계시겠구나. 그런데 나 역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읽는 모든 말씀이 모두 나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어왔다.
본문을 다양한 사람들의 고백으로 해석하신 것이 나에겐 매우 새로웠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세 번이나 고백하였고 도마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였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을 나의 예수님이라고, 내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자신이 없다. 나는 지금껏 내 마음까지도 나의 것으로 여기며 내가 주인인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을 때만 사랑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죄인인 나밖에 없다. 그러니 나는 하나님께 나를 드리겠다. 그럴 때 은혜로운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을 주셔서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할 힘을 허락하실 것을 믿는다.
연구하는 정재훈
요한복음 20장에서 21장에는 예수님의 부활이 보여주는 제자들의 특징처럼 느껴졌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마리아부터 시작해 베드로, 도마, 요한 등의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중 마리아가 생각났다. 예수님을 보았음에도 알지 못한 마리아처럼 나도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왜 나는 이런 생각을 했을까? 나를 고백하자면 믿음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 보는 걸 귀찮아하고, 하나님이 있다는 사실은 믿지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 같다. 하나님을 보아도 부족한 믿음으로 예수님이 말을 거실 때 오지랖 넓은 사람인가 라고 생각할 거 같다. 나는 예수님을 보았을 때, 예수님인 줄 알기 위해서 예수님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 보고, 미리 만나보아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보고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성경 속이다. 요즘 세상 느끼지만 성경이 그때의 장면을 너무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어서 그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한 번에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을 자세히 연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잘 알진 못하고 그만큼 열정도 없지만, 모든 제자가 했던 거처럼 회개하여 예수님을 만나는 그날에 세상 것을 떨치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