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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00년 9-10월호(통권 제54호)에 "꿈의 힘으로 만드는 마을"이란 제목의 서평으로 엔도 야스히로가 쓰고 김찬호가 옮긴 책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를 서울시정개방연구원 도시설계연구팀장으로 있는 정석 연구원이 쓴 글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느낀 점과 "이런 마을에 살고싶다"라는 책을 통해서 느낀 점을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서호천의 주변은 모두 아파트로 되어 있습니다.
아파트 살기는 좋습니다. 남에게 간섭받지 않고 생활의 편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폐쇄된 공간과 이웃과의 교류가 없는 공간은 더 이상 우리가 어렸을 때 느꼈던 정을 느낄 수 없는 죽은 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서호천의 친구들'이란 환경모임에서는 그동안 여러가지 사업을 시행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아파트도 넓은 의미에서 우리가 앞으로 가꾸어 나가야할 도시 마을이고 우리가 꿈꾸고 있는 이상입니다.
저 자신은 오래전 부터 다른 곳에서 만들어 갈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모임이 '서호천의 친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호찬의 친구들'에 기대하는 바가 크큽니다.
앞으로 이러한 무지개빛 꿈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다음의 글을 소개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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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녹색평론] 2000년 9-10월호(통권 제54호)에 실린 "꿈의 힘으로 만드는 마을'이란 제목의 서평으로, 엔도 야스히로가 쓰고 김찬호가 옮긴 책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 황금가지, 1997년]를 소개한 것입니다.
어떤 마을에서 살고 싶으세요?
정 석(서울시정개발연구원 도시설계연구팀장)
당신은 지금 어느 마을에 살고 계십니까? 마을이란 말이 생소하다면 바꾸어 여쭙지요. 지금 어느 곳에 살고 계십니까? 사시는 곳은 맘에 드십니까? 이웃들은 어떤 분들이고, 그네들과의 마을 삶은 만족스럽습니까? 지금 살고 계시는 곳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습니까? 아니라면, 어떤 마을에서 살고싶으세요?
제 이야기를 먼저 드려볼까요? 저는 지금 경기도 일산 문촌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일산으로 이사온 지 햇수로 4년째이고, 이곳 문촌 마을에서 산지는 만 1년이 조금 못되었습니다. 시골이라면 모를까, 도시지역에서는 자기가 사는 곳을 어느 어느 마을이라 부르는 대신, 대게는 무슨 동 몇 번지 아니면 아무 아파트 몇 단지로 부릅니다만, 신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언제부턴지 마을 이름이 불려지고 있어 퍽 정감이 갑니다. 특히, 제가 살고 있는 일산의 마을 이름들은 모두 옛 지명들을 살려서 지었다고 합니다. 옛날 서당이 있던 곳이라서 '문촌마을', 밤나무가 많아서 '밤가시마을' 하는 식이지요. 뜬금 없이 '사랑마을', '별빛마을' 하는 식보다는 훨씬 정감이 가지 않나요?
잠시 얘기가 샜습니다만, 저는 지금 살고 있는 우리 마을이 맘에 듭니다. 이웃들도 좋은 분들이고, 그네들과 함께 사는 게 즐겁고 만족스럽습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고요. 누가 저에게 어떤 마을에서 살고싶으냐고 물으신다면 전 주저함 없이 대답하겠습니다. 지금 살고있는 이 곳, 문촌마을에서 살고싶다고 말이지요. 혹 괜찮으시다면 잠시 우리 마을 자랑이나 좀 할까요?
우리 마을은 호수공원과 주엽공원에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원을 이용할 수 있지요. 이른 새벽에 호수공원에 가보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상큼한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삶의 재미를 만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조용히 산책하는 사람, 건강을 위해 열심히 뛰는 사람, 체조하는 사람, 명상하는 사람 등등 이루 다 얘기할 수 없을 만큼 다채롭습니다. 저 역시 얼마 전부터 매일 새벽 호수공원에 갑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 큰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서 한 시간쯤 인라인 스케이트 무료강습을 받고 옵니다. 집 가까이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게 너무 너무 고맙고 사는 게 참 즐겁습니다.
주엽역에서 호수공원에 이르는 넓은 보행광장인 주엽공원 역시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보물 같은 장소입니다. 해거름이면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고, 자동차로부터 해방된 이 곳에서 맘껏 뛰노는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다 시원해집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을 보는 것도, 또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젊은 새댁의 모습을 보는 것도 주엽공원을 거닐면서 느끼는 재미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거환경이 쾌적하고 만족스러운 것보다 더 큰 재미와 보람은 좋은 동네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이사온 뒤 한 동안은 그저 집에서 직장을 오고갈 뿐, 이웃과 동네사람들을 거의 알지 못했지요. 그러다가 동네 테니스 클럽에 가입하면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테니스 코트에는 늘 아이들이 함께 따라와서 어른들이 운동하는 동안 자기들끼리 어울려 놀곤 합니다. 다소 내성적인 데다가 늘 집구석에만 박혀있던 우리 아이들이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뛰노는 것을 보는 기쁨은 운동하는 재미보다 훨씬 큽니다. 테니스를 통해 동네 아이들을 알게되고, 이웃 식구들을 하나 둘 알게 되다보니 요즘은 동네에서 몸가짐이 사뭇 조심스러워지기까지 합니다.
이번 여름 휴가 때에는 동네사람들과 함께 강원도 산골에 다녀왔습니다. 네 가족이, 그러니까 어른 여덟에 아이들이 모두 열 명인 대식구가 함께 2박3일 동안 피리도 잡고, 별구경도 하고, 옥수수도 삶아먹고, 모닥불에 감자도 구워먹으면서 신나게 놀다 왔지요. 동네 사람들과 함께 했던 휴가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맛이 참 색다르고 좋았습니다. 휴가 때가 아니어도 동네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일들은 종종 있습니다. 몇 일 전에는 정발산역 앞 미관광장에서 야외 영화상영과 댄스경연이 있었습니다. 통닭을 한 마리 사고, 맥주와 음료수를 준비해 우리 식구끼리 돗자리를 깔고 노는데, 그곳에서도 우연히 동네 사람들을 만나게되어 함께 어울려 막걸리까지 마시면서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왔지요.
이야기가 또 두서 없이 장황해졌네요. 언제 또 샛길로 빠질는지 모르니 이쯤해서 미리 결론부터 말씀드려야 하겠군요. 이 글을 통해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제 이야기의 요지는 '마을 만들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함께 실천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마을 만들기'가 무엇이냐고요? 말 그대로 우리 '마을'을 우리가 '만드는' 일이지요. 남들이 아닌 바로 우리들, 그러니까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이웃과 동네 사람들이 지금 살고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우리 마을'을, 다른 사람들의 손이 아닌 바로 '우리들의 손'으로 함께 만들고 가꾸어 가는 게 바로 '마을 만들기'가 아니겠는지요?
앞에서 다소 주책 없이 우리 마을 자랑을 해댔습니다만, 저 역시 처음부터 우리 마을의 좋은 점과 우리 이웃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언제부턴지 조금은 의식적으로 우리 마을을 살펴보려 애도 써보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조금씩 눈도 트이고 사람들도 하나 둘 알게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조금씩 '동네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물론 멀었지만요. 그저 매일 매일 직장과 집만을 오고갈 뿐 마을에는 별 관심이 없고, 오직 가족과 내 집에만 집착했지 이웃에는 누가 어떻게 사는 지 거의 알지 못했던 제가 조금이나마 동네 아저씨로 변하게 된 데에는 사실 두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저에게 다소 부끄러운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책을 만난 덕이었지요.
지난 1999년 한 해 동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제가 맡았던 연구는 전국의 마을 만들기 사례들을 두루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이웃과 함께 마을의 문제들을 풀거나 개선해 나가는 다채로운 활동들을 하나, 둘 찾아내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저는 참 많은 걸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그동안 '주민참여'의 중요성이라든가, 전문가들의 '터 만들기' 못지 않게 주민들의 '삶터 가꾸기'가 중요함을 숱하게 떠들어댔지만, 이처럼 생생한 현장들을 풍부하게 목격하지는 못했기 때문이었지요.
특히, 제 자신이 스스로 부끄럽게 느껴졌던 것은 어느 세미나 자리에서 한 참석자로부터 "정 박사님은 박사님의 마을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서였습니다. IMF를 맞아 멈추어서버린 주엽역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가동시키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닌 일과, 주엽역앞 횡단보도 신호주기를 보행자 위주로 바꾸기 위해 경찰서 관계자들과 몇 차례 실랑이를 한 일 등을 열거하며 위기를 모면하긴 했지만, 사실 세미나가 끝날 때까지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전문가랍시고 이런저런 사례들을 들먹이며 마을 만들기를 강조하고 다니는 내가, 지금 내가 사는 우리 마을에서는 사실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구나' 하는 깨달음은 제게 상당한 충격이었고, 동네 아저씨가 되어야 하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저로 하여금 동네 아저씨가 되도록 일깨움을 준 것이 앞서 얘기했던 세미나 자리였다면, 동네 아저씨가 되는 지혜와 힘을 제게 준 것은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일본 치바(千葉)대학교 건축공학과의 엔도 야스히로 교수가 쓴 《마찌즈쿠리 독본》을 김찬호 박사가 번역한 책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가 바로 그 책입니다.
' 주민들이 직접 나서는 마을 만들기'라는 부제가 달려있기도 한 이 책,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에는 책의 제목처럼 "정말이지, 이런 마을에서 나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우리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다채로운 '마을 만들기' 사례들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한번 살펴볼까요?
<화로가 있는 집 >
교토 시에 위치한 집합주택 [유코트]에는 Y씨 가족을 비롯한 48세대가 살고 있습니다. 3층에서 5층까지의 건물이 알파벳 U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어 [유코트]라 불리는 이 곳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아파트나 연립주택과는 퍽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집 만들기에 처음부터 참가하여 각자 원하는 생활방식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건축가의 도움을 받아 환경을 디자인한 결과 흙과 물이 있는 광장, 골목을 연상케 하는 계단실, 아이를 돌보거나 파티를 열 수 있는 40평 규모의 주민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알차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천편일률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우리네 아파트와는 달리 이 곳 [유코트]는 한 집 한 집마다 그 가족이 원하는 고유한 방 배치와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3층 건물의 가장 위층에 있는 Y씨의 집은 화로(이로리)가 있는 집으로 유명합니다.
산과 자연을 매우 좋아하는 Y씨는 휴일에는 자주 가족과 함께 산행을 합니다. [유코트]에 이사오기 전 겨울의 어느 일요일 산을 넘어가다가 비를 만났습니다. 비를 피해 산 속의 조그만 오두막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화로가 있었지요. 그것을 보고 딸이 속삭였습니다. "아빠, 이런 불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 그 당시 그런 일은 얼토당토않다고 흘려버리고 말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닿아 집합주택 조합에 참가하게 된 Y씨는 건축가와 살고싶은 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번뜩 "화로가 있는 집을 만들까?"라는 생각을 떠올렸고, 결국 딸아이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화로가 있는 산 오두막 풍의 새집에 이사오던 날 아이들이 받은 감동과 기쁨은 대단했지요.
화로가 있는 집에 사는 부모와 아이들의 옷에는 겨울 땔감으로 때는 떡갈나무의 달콤한 향기가 배어든답니다. 아무 향기도 없는 근대식 빌딩 속에 들어갈 때, 떡갈나무의 향기는 한층 더 달게 느껴지겠지요. 안전과 편리를 너무 내세우다보니 요즘의 집에서는 불이나 바람소리나 향기를 없애버린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집에서는 그것들을 되살려냄으로써 아이들은 감수성을 자극 받아 풍부한 마음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별을 볼 수 있는 집>
" 집에서 창문으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 주택에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대도시인데도 집 안에서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보려고 노력한 끝에 그것을 실현한 주민들이 있습니다. 교외의 널찍한 대지에 세워진 단독주택에서라면 그런 일은 별것이 아닐 테지요. 그러나 주택과 공장이 뒤섞여 있는 과밀 도시지역에서 그런 집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적지 않은 감동일 것입니다. 오사카 시에 인접한 도요나카 시의 [데네프]라 불리는 공영주택이 바로 그 곳이랍니다.
이 곳 역시 획일적인 주택설계대신 하나 하나의 주택 내부를 설계하는 일에 주민의 소망을 그대로 담고 드러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에 맞게 내 집을 만드는 일에 주민들이 직접 관여하고 참여함으로써 얻어지는 정신적 만족감은 삶의 보람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러한 주민참여의 설계과정을 거친 결과 5층 주택의 맨 위층에 살게될 두 가족이 별을 볼 수 있는 집을 원해 지붕에 창을 내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욕조에 들어앉아 쉬면서 산의 경치를 바라보기를 간절히 원했던 두 집에는 집의 한 구석에 틀어박혀 있어야 할 욕실이 전망 좋은 창가 쪽으로 옮겨지게 되었지요.
2 층에 살게될 주민들 가운데에도 별을 볼 수 있는 집을 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2층집의 2층이라면 천장에 창을 뚫으면 일이 끝나지만, 5층 주택에서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지요. 그러나 설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 요망은 결국 받아들여집니다. 바깥쪽 공간의 일부를 불룩 튀어나오게 해 그 윗 부분을 유리 댄 천창으로 만든 결과,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볼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건물에도 적당한 요철이 생겨 리드미컬한 공간감을 자아내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지요.
북반구의 여름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백조자리의 별 이름을 가진 주택답게 [데네프] 주택은 그 이름처럼 과밀도시에 사뿐히 내려앉은 한 마리 백조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방 하나 더 갖기 운동>
센리 뉴타운의 한 구석에 11평 규모의 작은 아파트 390호로 이루어진 오사카 부영주택 [다케미다이] 단지가 있습니다. 1960년대에 지어진 이곳은 작은 방 두 개에 식당 겸 부엌 하나가 전부인데 입주한지 오랜 세월이 지나 한창 자라난 아이들 탓에 집은 몹시 비좁았지요. 또한, 세대마다 욕실이 갖추어지지 않아 생활의 불편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 같으면 이쯤이면 대개 '이사하기'나 '재개발'을 생각할텐데, 이곳 주민들은 뜻밖에도 '방 하나 더 갖기 운동'을 전개합니다.
1975 년에 '방 하나 더 갖기 운동 시민연합'이 결성되어 주민들은 필요한 조사와 학습과정을 거칩니다. 그 후 오사카 부와 중앙정부 등 행정당국과 몇 차례의 협의를 거쳐 마침내 1979년에 11평 아파트 350호를 17평으로 증축하는데 성공합니다. 일조권 확보나 프라이버시 문제 때문에 물리적으로 증축이 불가능한 40호를 제외한 모든 주택의 발코니 쪽에 방 하나와 욕실, 그리고 세탁실이 하나씩 늘게 된 것이지요.
11 평이 17평으로 늘어났으니 여전히 작은 규모이긴 했으나, 방 하나 더 갖기 운동의 성공은 주민들에게 방 한 개보다 훨씬 커다란 성취감과 새로운 희망을 심어줍니다. 이사보다는 계속해서 동네에 머물러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20퍼센트 이상이나 늘었고, 아이들은 자기 방을 갖게되어 대단히 기뻐했지요. 부모들도 마음의 여유가 생겨 사소한 일로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던 일이 크게 줄었고요. 방 하나 더 갖기 운동을 통해 얻게된 더욱 값진 소득은 '이웃끼리 힘을 합친다면 내 집과 우리 마을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가꿀 수 있다'는 신념이었습니다.
' 방 하나 더 갖기 운동 시민연합'은 1984년부터는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준비위원회'로 새롭게 발전하여 1)주택, 환경, 녹화, 2)자동차 및 주차장, 3)공동체 만들기, 4)자치회 조직과 주민규약의 정비 등 네 가지 과제를 세세하게 검토하고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그 결과 1,500그루 나무심기 사업이 주민들의 노력으로 진행되고 있고, 단지내 주차장의 일부를 '차 없는 구역'으로 정해 일정시간 아이들의 놀이터로 활용하고 있으며, 더 넓은 집을 원하는 주민들을 위해 이사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두 집을 합쳐 큰집(34평)으로 넓히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에는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있습니다. 메마른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물장구를 치며 놀 수 있도록 마을 어귀에 '여울길'을 만들어준 이야기, 시민의 손으로 60만 그루의 나무가 우거진 숲을 만들어 가는 이야기, 집안에 처박혀 있기 쉬운 도시 아이들이 자연을 벗삼아 맘껏 뛰놀 수 있도록 타잔 오두막이 있는 '모험놀이터'를 도시 한 복판에 만들어준 이야기 등등 모두 열 아홉 마을에서 벌어졌던 가슴 뿌듯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마을 만들기는 집을 짓거나 장소를 꾸미는 것과 같은 하드웨어적인 환경만 문제삼지 않습니다. 이 책의 저자 엔도 교수는 건축학을 가르치는 건축학자입니다만, 마을 만들기에 있어서는 건축가들이 주로 관심을 갖는 물리적인 환경 이외의 측면, 이를테면 주민의 건강, 복지, 교육, 공동체 형성과 같은 소프트웨어적인 영역이 더욱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마을 만들기를 사물과 생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사이에 다리를 놓고 관계를 디자인하는 일에 비유하고 있고, 〈마음 만들기〉가 마을 만들기의 핵심 주제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나와 이웃이 함께 마을에 대한 공동의 〈꿈〉을 꾸는 일에서부터 마을 만들기가 시작된다는 것이지요.
왜, 마을 만들기가 중요하고 지금 우리들에게 특히 필요한지, 마을 만들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고 어떻게 전개되는지, 마을 만들기의 어려움은 무엇이고 그것은 또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런 마을에서 살고 싶다》는 매우 자상한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을 꼼꼼하게 번역한 김찬호 박사는 〈역자후기〉에서 마을 만들기의 '의미'와 '꿈이 갖는 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고 있습니다.
자기 집이나 사무실 또는 가게, 그 집합체인 쇼핑센터는 갈수록 산뜻하고 화려해진다. 하지만 그를 벗어난 공공공간은 어떤가. 우리들의 동네는 이대로 괜찮은가. 마을 만들기의 의미는 거기에 있다. 저마다 사적인 공간에 골몰하는 동안 방치되어 황폐해진 지역공간을 너와 나의 마당으로 가꿔 가는 작업이다.
낭만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그리고 이 책은 그쪽 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동화책에서 이야기를 끌어내 마을 만들기의 현장으로 연결시키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도 우리들이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를 일깨우기 위한 전략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현장으로 들어가 보면 골치 아픈 문제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음에 놀라게 된다. 물론 버려진 시유지 공터를 빌려서 자그마한 꽃밭이나 공원을 주민이 함께 만드는 정도의 일이라면 낭만과 꿈만 가지고서도 가능하다. 그러나 쾌적한 보행로 또는 안전을 위해 길을 넓히는 작업은 도로에 접한 건물 주인들의 이해 관계에 직결된다. 예를 들어 고베 시의 경우를 보아도 대지진 이후 복구 과정에서 그것이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아 일이 진척되지 않는 지역이 많다.
그런데 그러한 이해 관계는 아무리 합리적으로 조정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도시에서는 공간 그 자체가 원천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거기에 바로 〈꿈〉의 힘이 있다. 자기가 입을지 모르는 경제적 손해를 감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마을의 미래에 대해 가슴 두근거리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풍부한 힌트를 제시하고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마을에 살고 계십니까? 사시는 곳은 맘에 드십니까? 이웃들은 어떤 분들이고, 그네들과의 마을 삶은 만족스럽습니까? 지금 살고 계시는 곳에서 앞으로도 계속 살고 싶습니까? 아니라면, 어떤 마을에서 살고싶으세요?
첫댓글 햐~~ 기회가 되면 책속에 나오는 그런 마을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제 SBS에서 아침에 방송된 "어느 마을에서 살고싶으십니까?"는 서울 강남의 한 마을의 이야기와 영국 리버풀에 있는 마을이소개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간다운 우리의 옛 시골의 정감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서호천 주변은 이런 마을이 없는 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을이름이 청소마을, 백설마을 등이 있는 데 앞으로 이러한 도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서호천의 친구들" 앞장서면 많은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링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서 열심히 활동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 서친정 옆에 심은 감나무는 언제나 따 수 있으려나~~~
강원도 철원이 고향인 나는 어릴때 나왔지만 아직도 꿈속에서도 아련히 떠오르는 고향의 들판은 향수에 젖게 합니다. 언젠가 돌아갈 생각으로 지난달 부터 차근 차근 준비를 위한 계힉을 세워 보지만 쉽지가 않네요. 맑은공기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고향산천에서 네것 내것이 없이 일하다 지치면 먹고 마시고 자고 그리고 서로가 형제 보다 더 가깝게 지내는 그런 시간 기대해 보며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 운동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