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사인(死因) 규명은 보건의료 정책의 기본이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경우 주민들의 사망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된 보건의료 정책을 세우는 데 난항을 겪고 있다. 이제 「최소침습부검」이라는 새로운 방법이 개발되어 지금까지의 관행을 시정하고, 궁극적으로 지구촌 주민들의 건강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Rembrandt Harmensz. van Rijn 007
▶ 하루 전에 사망한 안토니오라는 소년(15세)의 시신은 가슴 한쪽이 부풀어 올라 있었고, 부어오른 가슴 반대쪽 다리를 제외하면 외관상으로는 멀쩡해 보였다. 발가락 사이에는 아직 먼지가 끼어 있었다. 많은 의사들이 사인(死因)을 규명하기 위해 부검실에 모였다. 그런데 병리학자인 파올라 카스틸로는 안토니오의 부어오른 상반신에 메스를 대는 대신, 주삿바늘 한 세트를 움켜쥐었다.
오전 9시 8분, 카스틸로는 시신의 두개골과 척추 사이의 부드러운 부분에 주삿바늘을 찔러넣어 뇌척수액을 채취했다. 그리고는 8센티미터짜리 긴 바늘로 바꿔 우측 쇄골위에서 채혈을 시도했다. 걸쭉하고 몽글몽글한 혈액이 나오자, 카스틸로는 좌측 쇄골 위로 장소를 바꿨다. 하지만 사후경직 때문에 뻣뻣해진 머리가 채혈을 방해하는 바람에, 곁에 있던 조수가 달려들어 낑낑거리며 머리를 우측으로 돌려야 했다. 다행히 좌측 쇄골 위에서는 부드러운 혈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조수가 손을 놓자마자 시신의 머리는 원위치로 복귀했다. 처음에는 서서히 좌측으로 움직이다가, 갑자기 - 마치 왼쪽에서 뭘 보기라도 한 것처럼 - 휙 돌아갔다.
몇 시간 동안 시신의 사지를 옆으로 젖히고 바늘을 찔러넣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만, 다른 대안, 즉 완전한 부검을 위해 시신을 해부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사실 카스틸로가 이 같은 최소침습부검(MIA: minimally invasive autopsy)을 선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부검을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MIA는 완전부검(full autopsies)보다 빠르고 저렴하고 깨끗한 방법이다. MIA의 옹호자들에 의하면, MIA가 제공하는 사인에 관한 정보는 완전부검 결과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다고 한다.
사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 놀라는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 전세계 어느 나라를 불문하고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사람이 죽는 원인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원인불명의 감염증에 의한 사망이나, 어린이의 사망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사망 원인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보건당국은 제한된 의료자원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질병퇴치 프로그램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아내는 이상적인 방법은 완전부검이지만, 경제적·사회적·문화적으로 걸림돌이 많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MIA라는 방법을 개발하여, 완전부검을 대체하고 정확한 사망률을 추정하고 싶어한다. MIA란 체액이나 예닐곱 가지 장기조직을 채취하여, 연구실에서 사망원인을 추정하는 방법을 말한다. MIA에 대한 아이디어는 수십 년 전부터 제시되어 왔지만, 최근 핫이슈로 부상한 것은 국제 보건기구들이 사망 관련 데이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현재 모잠비크를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는 MIA의 과학적 타당성과 문화적 적합성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연구자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MIA를 전세계에 보급하는 것이다.
모잠비크 팀의 프로토콜에 따르면, 카스틸로가 다음으로 해야 할 작업은 간(肝)조직 샘플을 채취하는 것이다. 그녀는 시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간이 종종 위쪽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간조직 채취용 바늘의 작동원리는 석궁과 비슷해서, 뒤로 젖혔다가 앞으로 발사하여 몇 센티미터짜리 조직을 떼어내게 된다.
주삿바늘이 간을 관통하자 시신은 움찔했다. 그러나 카스틸로가 주삿바늘을 빼냈을 때, 바늘 끝부분에는 자줏빛 살점 대신 고름만 묻어 있었다. 고름은 옅은 녹색에, 거품이 섞여 있었다. 카스틸로는 위치를 바꿔 다시 바늘을 발사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더 많은 고름이 나왔다. 간 조직을 채취하는 건 비교적 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스무 번 주삿바늘을 찔러대도 나오는 건 고름뿐이었다.
카스틸로는 거대한 농양(abscess)이 간을 좀 더 위쪽으로 밀어올렸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조수를 시켜 몇 번을 더 찌른 후에, 젖꼭지에서 무려 10센티미터나 올라간 부분에서 고형조직을 겨우 채취했다. 그러나 채취된 조직의 색깔이 너무 하얘서, 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혹시 폐(肺)인가?" 카스틸로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나중에 현미경으로 검사해야 정확히 밝혀지겠군."
▶ 개발도상국의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보다는 가정에서 사망하므로, 정확한 사인을 알아내기가 매우 어렵다. 설사 병원에서 숨을 거두더라도 사인을 밝히는 건 여전히 까다로운데, 그 이유는 상당수의 환자들(특히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 질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의사가 발행한 사망진단서 중 1/3은 부검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한다. 2014년 인도에서 발표된 연구결과에 의하면, 소아의 사망진단서 중 절반에서 중대한 오류가 발견됐다고 한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세계보건기구(WHO)와 워싱턴 대학교 산하 건강계측평가연구소(IHME)는 2010년 전세계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한 사람들이 얼마인지를 각각 집계한 바 있다. 그 결과 WHO는 655,000명, IHME는 124만 명이라는 수치를 발표했다. 세계적으로 공신력을 인정받는 두 기관의 수치가 두 배나 차이가 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AIDS, 결핵, 기타 질병의 경우에도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큰 차이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자금과 인프라가 부족해서 부검을 널리 실시할 수 없으므로, 확실한 사인을 밝혀내기가 어렵다. (아프리카의 경우 병리학자가 한 명도 없는 나라도 여럿 있다.) 설상가상으로, 많은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시신을 절개한다’는 개념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불신한다. “개발도상국의 의사들은 완전부검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실정이다”라고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학원의 레지나 라비노비치 박사(소아 열대질환 전문가)는 말한다. (라비노비치 박사는 한때 시애틀 소재 빌&멜린다게이cm 재단에서 감염질환유닛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사인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상당수가 구두조사(verbal autopsies)에 의존하는데, 그중에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고인의 죽음과 관련된 설문지를 작성하게 하는 방법이 포함된다. 그러나 구두조사는 사망 후 수개월이 지난 후에 실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므로, 그 결과를 신뢰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가족들은 종종 특정 증상을 아예 무시하거나 심지어 초자연적인 설명(예: 저주를 받아 사망했다)을 하기도 한다. 최악의 상황은 전염병의 증상(예: 발열, 설사, 기침 등)이 애매한 경우인데, 이런 경우에는 질문 하나만으로 사인을 밝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소재 국제보건연구센터의 키케 바사트(소아과 의사)에 의하면, 많은 의사들은 구두조사를 “쓰레기(crap method)”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 의료계의 바람은 “MIA가 저렴한 비용으로 완전부검만큼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참고로, 완전부검에 소요되는 비용은 건당 약 500달러인데, 바사트 팀이 테스트중인 MIA의 비용은 현재 500달러지만, 프로토콜을 단순화하면 200달러까지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빌&게이츠재단은 바사트 팀에게 향후 3년간 23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바사트는 모잠비크에서 260건의 케이스를 4가지 코호트(신생아, 어린이, 성인, 임신부)로 나눠, 완전부검과 MIA의 결과를 비교검토할 계획이다. 한편 브라질에서 수행되는 자매연구에서는 추가로 60건의 케이스를 분석할 예정이다.
바사트의 MIA에서는 병원체를 채취하여 배양하는 방법까지도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전통적 부검방식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방법이다. 게다가 바사트의 MIA는 신속하여, 냉장고가 없는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난 수 개월간의 실습을 거쳐, 바사트 팀은 불과 30분 만에 MIA를 완료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 간 때문에 낭패를 겪은 후, 카스틸로는 시신의 폐로 옮겨간다. (폐를 검사하는 주삿바늘은 길고 두꺼워, 바늘공포증(trypanophobia)이 있는 사람에게 악몽을 꾸게 할 수 있다.) 그 사이에 한 학생이 T자 모양의 바늘을 이용하여 시신의 엉덩이에서 골수를 채취한다. 지금껏 채취한 것 중 가장 깨끗한 조직이 나오자, 학생은 카스틸로에게 칭찬을 듣는다. 다음으로 시신의 뇌에 접근하기 위해, 그들은 T자형 바늘로 코 뒤의 뼈를 뚫는다.
비장에서 시작하여 신장에 이르기까지 조직샘플이 하나둘씩 채취되는 동안, 테크니션 한 명이 집게(forceps)를 이용하여 작업을 도와주고 있다. 어떤 조직샘플은 작업 과정에서 - 마치 데킬라 속에 빠진 벌레처럼 - 누런색 체액 속에 풍덩 빠지기도 하는데, 이때 공기가 들어 있는 폐조직은 둥둥 떠다니는 경향이 있으며, 치밀한 뇌조직은 가라앉는 경우가 많다. 작업실에서는 파리가 빙글빙글 맴돌고 있지만, 냄새는 거의 나지 않는다.
갸날픈 몸매에 서글서글한 눈매의 테크니션은 모잠비크 현지인으로, 9년 전 MIA 연구가 시작되기 전에 열아홉 살의 나이로 바사트의 팀에 합류했다. 그는 연구 초기에 완전부검에 투입되어, 벌거벗은 시신들이 해부되는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건 너무 이상했어요”라고 그는 술회했다. 그는 충격 때문에 몇 주 동안 잠을 못 이루었고, 한동안 동물의 간(肝)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선진국 국민들도 같은 사람이므로, 그들 중 상당수는 우리와 비슷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때로 의사들은 의학연구를 위해 시신을 부검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대체로 인정한다. 하지만 많은 개발도상국에는 이 같은 아직 전통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라고 바사트 팀에 소속되어 있는 카티아 뭉구암베 박사(의료인류학)는 말한다. 많은 개발도상국 국민들은 시신 해부를 고인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며, 올바른 부검의 역할이 뭔지 모른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의사가 시신의 장기를 밀매하거나, 장기를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일지 모른다고 두려워한다.
물론 MIA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중에는 보건근로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바사트의 팀에서 일하는 모잠비크의 병리학자들에 의하면, 그들의 동료들은 거의 하나같이 ‘작은 조직샘플이 사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사실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카스틸로도 바르셀로나에서 일하던 시절 MIA 이야기를 처음 듣고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고 의심했다고 한다. 한편 모잠비크의 의사와 보건근로자들 중 상당수는 MIA를 “시신을 검사하여 의사의 진단착오를 적발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여겨 기피하고 있다고 한다.
MIA가 문화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바사트 팀은 모잠비크, 케냐, 가봉, 말리, 파키스탄에서 별도의 인류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그들은 특히 사람들이 MIA를 거부하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 해당 국가의 장례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예컨대 뭉구암베 박사에 의하면, 가봉에서는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청소년들의 몸을 바늘로 찌르는 것이 금기시되고 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와 같은 무슬림 국가들의 경우, 부검에 대한 터부가 특히 강하다”라고 에밀리 걸리 박사(역학)는 말한다. (걸리 박사는 방글라데시 소재 국제 설사질환연구센터에서 별도로 MIA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무슬림들의 경우, 사람이 죽으면 그날 해가 지기 전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으므로, 부검을 하게 되면 매장이 지연될 수 있다. 또한 무슬림들은 사람이 죽은 후에 시신을 닦는데, 이때 의사들이 시신에 손을 대는 것은 금지된다. 일부 교파에서는 시신이 통증을 느낀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걸리 박사에 의하면, “이상과 같은 터부에도 불구하고, MIA의 최소침습적 성격을 잘 설명하면, 많은 무슬림 지도자들이 MIA를 지지한다”고 한다. 또한 사망자의 가족들에게 MIA를 참관하게 하는 것도 불신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한다. 한편 바사트 팀은 모잠비크의 마을 지도자들과 만나 그들의 우려사항을 경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월 가졌던 모임에서는, 70세의 할머니 한 명이 바사트 팀을 환영하며 악수를 청하는 등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모임이 진행됐다고 한다.
MIA의 옹호자들은 ‘MIA를 보급하는 데 있어서 사회과학적 연구가 임상연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인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민감한 작업이어서, 여러 단계 중 하나만 생략해도 모든 것을 그르칠 수 있다. 반대로 주민들의 공감을 얻기만 하면,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도 있다”라고 바사트는 말했다.
▶ 아직 최종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바사트의 연구는 가능성이 충분해 보인다. 첫째로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5개국의 환자 가족들 중에서 약 80%가 MIA를 허용했다고 한다. (참고로, 걸리 박사의 연구에서는 15개 가정 중 5개 가정이 MIA를 허용했다고 한다.) 둘째로 임상적 측면에서 보면, MIA는 약 95%의 시신에서 사망원인을 밝혀냈는데, 이는 완전부검에 못지않은 성적이다.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바사트 팀은 채취하는 조직샘플의 가짓수를 줄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데, 이 경우 꼭 필요한 조직은 간, 폐, 뇌라고 한다. 한편 바사트 팀은 병원체 배양을 생략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데, 이 경우 사망원인을 밝혀내는 비율은 80%로 떨어지지만, 그래도 구두조사보다는 훨씬 양호한 수준이다.
그러나 전세계의 보건전문가들이 모두 MIA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개념상으로 볼 때, MIA가 몇 가지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확성에 대한 증거가 아직 부족하며, 모든 질병에 적용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설사 MIA가 의료기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하더라도,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가정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60-70%)는 점을 감안할 때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라고 호주 멟버르 대학교의 앨런 로페즈 교수(글로벌 보건통계 전문가)는 말한다.
가정에서 사망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바사트는 (의사가 아닌) 테크니션들을 양성하여 농촌 지역에 MIA를 보급할 계획이다. 또한 구형 앰뷸런스에 MIA 장비와 자동세척기를 설치하여 ‘이동식 MIA 클리닉’으로 개조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과학자와 보건당국자들은 MIA를 전세계에 보급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빌&멜린다게이츠 재단은 오는 4월 SEED(Sentinel Epidemiology and Etiology Data)라는 20년짜리 장기(長期)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게이츠 재단은 향후 3년간 자체 재원에서 7,500만 달러를 지원하고, 다른 재원을 통해 7,500만 달러를 추가로 지원한다고 한다.
“궁극적으로, SEED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25개 거점을 운영할 것이며, 그중 일부는 2018년에 문을 열 계획이다. MIA가 SEED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SEED의 사령탑을 맡은 스콧 도웰(소아과의사)은 말했다. SEED는 모든 지역의 사망자 중 약 20%에게 MIA를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일단은 어린이 사망자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도웰에 의하면, 성인 사망자들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한다. 그렇게 된다면, 과학자들은 사상 최초로 전세계인들의 사망원인에 대한 데이터를 갖게 될 것이다.
▶ 안토니오의 사인을 밝히기 위한 샘플을 채취하는 데 걸린 시간은 총 70분으로, 평균보다 많이 늦은 편이다. 그러나 안토니오의 사인을 규명하는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 사인 규명은 바르셀로나에 있는 멤버들의 몫이다. 그러나 MIA 결과와 비교하려면 완전부검도 실시해야 하므로, 카스틸로를 비롯한 MIA 팀은 완전부검 장면을 참관하기 위해 옆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먼저 내장을 꺼낼 차례다. 건장한 남성 한 명이 들어와, 안토니오의 목덜미에 받쳐 놓은 블록을 제거한 다음, 메스로 상반신을 절개한다. 농양에서는 엄청난 양의 고름이 나오지만,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다. 신속한 동작으로 복부에서 내장을 꺼내 안토니오의 다리 사이에 놓는다.
다음으로 병리학자 한 명이 들어와 모든 장기들을 샅샅이 살펴본다. 림프절, 신장, 뇌에서 종양이 발견된다. 수막염(meningitis)도 발견된다. 이 시점에서 카스틸로가 호출을 받고 부리나케 부검실로 달려온다. 흉부의 커다란 농양이 주요 관심사인데, 그것은 안토니오의 우측 폐를 잠식하고, 간을 - 위로 밀어올린 것이 아니라 - 아래로 누르고 있다. 카스틸로가 간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바사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오늘날 선진국에서 농양이 이렇게 진행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은 1950년대에나 볼 수 있었던 사례입니다.”
완전부검이 마무리되자, 안토니오의 사망원인에 대한 토론이 시작된다. 에이즈, 암, 수막염이 용의선상에 오른다. 로마제국의 몰락원인 만큼이나 다양한 원인들이 제기된다. 바사트는 림프절 종양을 유심히 살펴보고는, 종양이 흉측하게 팽창하여 전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런 상태에서 감염증(농양)이 발생했는데, 안토니오는 이미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기 때문에, 퍼져나가는 감염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많은 병리학자들이 MIA의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것도 이해가 된다. 바사트 팀은 간조직을 아예 채취하지도 못했고, 신장과 뇌의 종양을 발견하지 못했을 공산이 크니 말이다. 그러나 바사트의 생각은 이렇다. “바르셀로나의 멤버들은 (모잠비크의 멤버들이 간으로 오인한) ‘흰색 조직’이 림프절종양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또한 그들은 감염증이 널리 퍼졌다는 증거도 찾아낼 것이 거의 확실시 된다. 그렇다면, 안토니오가 갖고 있었던 전반적인 문제는 다 밝혀진 셈이므로, MIA를 이용하여 사인을 규명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MIA의 장점은 시신을 - 몇 군데 바늘에 찔린 자국은 있지만 - 훼손하지 않기 때문에 유족들에게 ‘인간다운 상태의 시신’을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작업은 끝났다. 장기를 적출했던 젊은이가 다시 들어와 부검 작업을 마무리한다. 내장을 집어넣고 흉골을 원위치 시킨 다음, 절개 부위를 말끔히 봉합한다. 인도적인 측면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시신의 가슴에 새겨진 선명한 실 자국만큼은 어쩔 수 없다. 많은 이들이 부검을 반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리라. 그러나 안토니오의 시신은 과학자들에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인간의 사인을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농양의 고름을 모두 제거하자, 퉁퉁 부었던 안토니오의 상반신은 생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발랄한 여느 10대 소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 출처: 27 MARCH 2015 SCIENCE • VOL 347 ISSUE 6229 (http://news.sciencemag.org/plants-animals/2015/03/cause-deat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