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병동 외 1편
김연종
말라비틀어진 의식에 물을 뿌린다 진한 농도의 진통제가 수액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비된 척추가 움찔거린다 슬픔과 고통이 잠시 위치를 바꾼다
시들어가는 뿌리가 다시 고개를 든다
면회시간에 맞추어 굳게 잠긴 기도가 문을 연다 허파꽈리는 심지를 불태우며 그렁그렁 소리를 낸다 산소마스크는 마지막 기포까지 우려내고 있다
완화병동에 백색바람이 분다
심장 박동기의 모니터가 깜박거린다 대기실 화면이 거칠게 숨을 몰아쉰다 살려달라는 비명은 들리지도 않는데 코드블루가 반복적으로 떠오른다
주치의는 활짝 열린 동공을 다시 노크한다
서쪽 하늘에 막장구름이 몰려든다 각자 자신만의 불행을 찾아 서로의 마우스를 클릭한다 산그림자를 잉태한 노파가 일몰처럼 펄럭인다
의식의 머리맡에 간병인이 사다리를 놓고 있다
오진
대장장이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칼들은 제멋대로 용도를 변경했다 페이퍼나이프로 손목을 긋고 과도로 연필을 깎듯 도루코 면도날은 비상구를 찾지 못했다 집도의는 환부에 수술용 메스를 남겨둔 채 담금질을 마쳤다
뜨거운 입김으로 그려놓은 고통이 부활했다 수술부위가 뒤바뀐 환자는 장애등급이 상향 조정되었다 퇴화한 눈으로도 거대한 유리벽을 통과할 수 있다는 외눈박이의 논리는 선글라스에 박제되었다
이미 죽은 시계를 차고
죽은 나무로 만든 의자에 앉는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볼 수 없는 건
자기 얼굴과 머리통의 치욕뿐이다
안락한 손거울을 들고 커터 칼을 꺼내 든다
김연종
2004년 <문학과 경계> 등단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 <극락강역>
산문집 < 닥터 K를 위한 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