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의 바람을 타고 사회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곧 정신적인 혼란을 야기하기에, 사람들은 기술은 물론 철학, 인문학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대정신을 찾고자 한다.
그중 하나가 예술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시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세상에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4차산업혁명 시대, 예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머물고 어떤 질문을 던질까.
18일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인재캠퍼스 3층 대강의실에서 진행된 ‘2019 창의인재 동반사업 오픈 특강’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가 있었다. 이날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미술관 관장은 ‘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 강연을 통해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잇는 다학제간 융합의 가치를 고찰했다.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미술관 관장은 ‘미디어 아트란 무엇인가’ 강연을 통해 예술과 기술 그리고 사회를 잇는 다학제간 융합의 가치를 고찰했다. ⓒ 김청한 / Sciencetimes
풍요 속 외로움, 로봇이 채워줄 수 있을까
노 관장은 4차산업혁명 시대, 기술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지금껏 사람들은 인공지능 기술이나 로봇 등을 이야기하면서, 모두가 경제나 노동생산성 등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정작 ‘기술을 통해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잘 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노 관장이 그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을 시작한 것은 우연한 만남 때문이었다. 2012년 ‘렝가’라는 개를 맞이하면서 그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 것.
“제 옆을 1미터 이상 떨어지지 않는 렝가와 같이 지내면서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고, 시를 짓고, 함께 춤을 추는 등 평소 안 하던 행동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이게 바로 감정적인 힐링(emotional healing)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노 관장으로 하여금 주위를 둘러보게 만들었다. 그는 반려동물 관련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며, “물질적인 풍요 속,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기술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노 관장은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 영화 ‘HER’를 언급하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과연 ‘물질적인 실체가 없는 존재와 그렇게 절절한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경험에 의하면, 물질적인 실체는 무척 중요하거든요. 실제 렝가처럼 목욕을 시키고, 산책을 같이 하는 등 항상 곁에 있으면서 나와 교감하는 존재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그러다 노 관장이 문득 떠올린 생각이 “혹시 로봇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였다. 2014년 아트센터나비 미술관에서 진행한 ‘Nabi Hackathon H.E.ART BOT(Handcraft Electronic Art Bot)’은 그 가능성을 모색한 최초의 시도였다. 노 관장은 이에 대해 “우리가 기쁠 때는 같이 기뻐해 주고, 힘들 때는 위로해 주는 등 로봇과 사람의 교감을 시도해보았다”고 설명했다.
로봇이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얼마나 가능성 있는 얘기일까. 혼술족(혼자 술을 먹는 사람)을 위해 같이 술자리를 가져주는 로봇의 모습은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 ⓒ 김청한 / Sciencetimes
그중 하나가 할머니의 모습을 형상화한 ‘그랜봇’이다. “할머니”라고 부르면 “오냐, 똥강아지”라는 대답을 해주는 등 정감 어린 대화를 통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진짜 사람처럼 “욕해주세요”라고 하면 욕설까지 시원하게 해주는 등 실제 할머니와 같은 느낌을 받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시도의 결과는 어땠을까. 노 관장은 “작품을 보는 사람보다 만드는 사람들이 더 만족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기획을 좀 더 이어가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2015년 진행된 로봇 파티(ROBOT PARTY)전에서는 보다 다양하고 참신한 로봇 작품 35개가 등장했다.
이 로봇들이 일관되게 우리에게 전하는 가치는 소통의 중요성이다. 혼술족(혼자 술을 먹는 사람)을 위해 같이 술자리를 가져주는 로봇, 음악을 들으면 감정을 표현하며 같이 공유하는 로봇, “나 외로워”라고 말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잖아”라고 위로해 주는 푸근한 곰인형 로봇 등은 소통을 통해 우리에게 충분한 위로를 준다. 앉으려고 하면 도망가면서 장난을 치는 의자 로봇같이 즐거움을 나누기도 한다.
인공지능과 인간성의 상관관계 고찰
이러한 결론을 바탕으로 노 관장은 “기술을 인간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최근 비약적으로 발전 중인 인공지능에 주목했다.
“감정을 소통하기 위해서는 로봇이 말을 알아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2016년에는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Why Future Still Needs us: AI and Humanity)’전을 통해 인공지능과 인간성의 상관관계를 고찰해 보기도 했죠.”
해당 전시회에서는 인공지능 학습을 통해 점차 에어하키 실력을 늘려가는 다관절 로봇 팔, 동화를 학습하여 아이들에게 이를 가르쳐 주는 ‘로보판다’ 등 이전의 전시보다 진일보한 기술을 선보였다.
인공지능을 통해 동화를 학습, 이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로보판다’. 인간과 로봇의 소통을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 김청한 / Sciencetimes
사회 문제, 데이터로 해결할 수 있을까
기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각종 사회 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노 관장은 ‘데이터가 정서적 유대(emotional connectedness)를 강화시킬 수 있을까?’, ‘데이터가 정치/사회/문화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전 세계 데이터 전문가, 미디어 아티스트들에게 던지며,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해 봤다.
그 결과가 2017년 진행된 ‘네오토피아 글로벌 해카톤’이다. 각국의 데이터 전문가와 예술가들은 빅데이터의 반대 개념인 스몰 데이터를 강조하기도 하고, 개인 데이터가 유출될 때마다 디바이스에서 냄새를 나게 하는 등 기발한 발상을 통해 데이터가 어떻게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면서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직관적으로 알렸다.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4차산업혁명시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일종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것이 미디어 아트의 역할이다. ⓒ Pixabay
미디어 아트의 진정한 의미
노 관장은 이어 강연의 메인 주제인 ‘미디어아트’에 대한 총괄적인 설명을 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는 “미디어 아트라는 것의 정의는 사실 개인마다 모두 다르게 내릴 수 있다”라며 “게임, 회화 등 모든 것이 미디어 아트가 될 수 있으며, 그 정의 역시 계속 변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미디어 아트인가’가 아닌, ‘미디어 아트가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다. 특히 미디어 아트가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노 관장은 마지막으로 “우리는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갈수록 절실해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며 “미디어 아트는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통해 ‘4차산업혁명시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대한 일종의 리터러시(literacy, 관련 지식과 정보를 획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를 부여해 주는 것”이라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