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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자의 축복
성경본문: 잠언 11: 1-11
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
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의리는 죽음을 면케 하느니라
5.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악한 자는 그 악을 인하여 넘어지리라
6. 정직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구원을 얻으려니와 사특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고 악인은 와서 그를 대신하느니라
9. 사특한 자는 입으로 그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원을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을 인하여 무너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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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대인 여성이 백화점에서 옷을 한 벌 샀습니다. 집에 와서 포장을 풀었는데 다이아몬드 반지가 옷과 같이 있었습니다. 점원이 끼고 있던 것이 포장할 때 빠져 나온 것인지 손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히 비싼 반지였습니다.
유대인 여성은 이 반지를 들고 랍비에게 찾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랍비는 물론 돌려주어야 한다고 하면서 돌려줄 때 두 가지를 해야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돌려주면서 "나는 여호와를 믿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 반지를 돌려드립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고 또 하나는 돌려줄 때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은 아들에게 "이렇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하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며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여호와를 믿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 반지를 돌려드립니다"
라고 말하라고 했을까요?
"여호와를 믿는 유대인은 이와 같이 정직합니다"하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반지를 돌려 받은 백화점 점원은 고마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 같으면 틀림없이 내가 가졌을 텐데 당신은 이렇게 정직하게 돌려주는 것을 보니 내가 믿는 알라 신보다 당신이 믿는 여호와가 더 위대한가 봅니다"
여러분, 혹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만나면 "나는 교회에 나가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합니다"라고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교인들은 정직하구나!" 하는 것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성품을 살리기 위해 힘써야 하는데 하나님의 중요한 성품 가운데 하나가 정직입니다.
모세는 신명기 32장에서 최후의 유언을 합니다.
신명기 32장 4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고 요약해서 말하고 있는데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다, 그는 진실하다, 거짓이 없다, 공의로우시다, 바르다, 이런 표현들을 압축하면 "정직" 이렇게 됩니다.
모세만큼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아니 직접, 그리고 자주, 오랫동안 만난 체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 모세는 이와 같이 하나님은 정직한 분이라는 것을 여러 가지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은 정직한 분이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편 19편 8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인 성경에 거짓이 있다면 이 성경이 이렇게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수 없을 것이고 언제나 베스트 셀러일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 가지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첫째는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 정직해야 하고,
둘째는 이웃에 대해서 정직해야 하고
셋째는 하나님께 대해서 정직해야합니다.
첫째,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야합니다.
자신에 대해서 정직한 것,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잠언서 16장 12절에는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정직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가 김유정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회를 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분이 말씀할 때 자주 사용한 "부담되네"라는 말은 그 뒤 한 동안 교회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김유정 목사님이 하신 말씀들 가운데 이 대목을 저는 지금도 감명 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 목사님은 잘 알려진 대로 범죄세계에 깊이 빠져 있다가 체포되어 중형을 언도 받고 복역하던 중에 교도소에서 전도를 받아 새 사람이 된 분입니다. 이 분은 출옥한 다음에 소명을 받고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데 제일 먼저 만나는 어려운 고개가 성서원어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입니다.
시험 칠 때, 헬라어 시험 시간이 되었습니다. 김유정 신학생은 그 때 출소자들과 재건대 생활을 하면서 공부하느라고 평소에 헬라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지를 붙들고 쩔쩔맵니다. 사정을 잘 아는 감독교수가 보다 못해 "여러분, 나 15분 동안 어디 다녀오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갔다고 합니다.
그 사이에 책을 보든지 다른 학생 답안지를 보든지 어떻게 해결하라는 것이지요.
김유정 신학생은 처음에는 "살았다!" 싶었는데 마음속에서 "과연 어떻게 해야 할 것이나?" 하는 질문이 생기더랍니다. 한참 씨름하다가 백지를 내고 나갔답니다. 그리고 교수를 찾아가
"저 다음 학기에 헬라어 다시 공부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에게 대해서 정직하고, 동료 학생들에게 대해서 정직하고 교수에 대해서도 정직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도 정직한 모습을 보인 것인데 이 모든 정직은 우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데서 시작된 것입니다.
미국 밴더필드 대학에 매디슨 세릿이라는 수학교수가 있는데 예수를 잘 믿는 경건한 분이었습니다. 이 분은 시험 때 학생들에게 문제지를 나눠주면서 이런 말을 꼭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수학 시험을 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있지만 오늘 수학시험만 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직이라는 시험도 함께 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수학시험을 잘 치면 좋은 점수가 약속됩니다. 여러분이 정직이라는 시험을 잘 치면 여러분의
삶에서 진정한 성공이 약속됩니다. 여러분은 이 정직이라는 시험에 실패하고서도 훌륭한 일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 교수의 말이 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들 가운데 골프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공을 살린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심판이 없다는 것입니다. 야구 같은 경기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을 타자가 안타로 만들지 못하면 살아 있는 공을 죽이는 것이고 축구도 센터링이 잘 된 공을 골인으로 연결시키지 못하면 살아있는 공을 죽이는 것이 되는데 골프는 정지되어 있는 공을 살려 경기를 진행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또 하나, 골프는 경기들 가운데 심판이 없는 유일한 경기입니다. 공식 시합에서는 그렇게 못하겠지만 평상시에는 공이 치기 어려운 모래밭이나 구덩이에 빠지면 슬쩍 손으로 옮겨놓고 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골프는 먼저 자기에게 정직해야 하는 경기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골프장에서 일하는 캐디들은 골프장이야말로 그 사람의 인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혹시 여러분, '저 유 목사가 골프를 좋아하나 보다' 생각하기 쉬운데 정반대입니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 자주 나오는 보기, 버디, 이런 말의 뜻을 저는 지금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는 성도들 가운데 골프 치는 분이 많은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목사가 골프 치는 것은 심하게 반대합니다. 혹시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고 편견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해 봅니다만 이 생각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선교기관에서 선교헌금을 요청하는데 그 기관의 직원들이 골프 치는 것을 알면서도 저희 교회에서 그 기관에 선교헌금을 보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골프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는 성도들이 애써 헌금한 돈을 가지고 직원들이 골프 치는 기관에 헌금하는 것, 하나님의 돈을 지혜롭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골프에 대한 인식은 그렇지만 골프가 심판이 없는 경기라는 것,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직해야 하는 경기라는 점은 참 좋게 생각되고 강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자기의 몸에 대해서도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체력의 한계를 인정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몸은 정직해" 이런 말을 자주 하지요. 무리를 하시는 것, 자기의 몸에 대해서 정직한 것 아닙니다.
휴가 기간이 주어지는 여름은 자기 몸에 대해서도 정직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때입니다.
"정직을 잃은 자는 더 잃을 것이 없다"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정직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직하면 가장 소중한 것을 아직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판도라의 상자 밑바닥에는 소망 하나가 남아 있었는데 자기 자신에게 정직한 것은 가장 소중한 마지막 하나를 간직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전도서 7장 29절은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우리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꾀를 부리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실 때 본래 성품인 정직함에 의지해서 결정할 수 있어야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정직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이웃에 대해 정직해야 합니다.
88 서울 올림픽 때의 일입니다. 한국과 스웨덴의 남자 탁구 복식 경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12: 9로 한국 선수들이 이기고 있는데 한국 선수의 서브가 탁구대를 살짝 스치고 떨어졌습니다. 심판은 이것을 잘 보지 못하고 아웃이라고 판정하고 스웨덴 선수에게 점수를 주어 스코어 12: 10을 선언했습니다. 그러자 스웨덴 선수들이 심판에게 "아닙니다. 터치입니다. 한국팀이 득점한 것입니다" 말했습니다. 스코어는 13: 9로 정정되었고 한국팀이 승리했습니다.
스웨덴 선수들은 경기에서는 졌습니다. 그러나 정직에서는 이겼습니다. 그 때 탁구에서 어느 팀이 이겼는지, 누가 금메달을 땄는지 지금 거의 기억되지 않지만 스웨덴 선수들의 이 일, 상대방에 대해서 정직하고 심판에 대해서 정직하고, 관중들에 대해 정직하고 중계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정직했던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이렇게 설교 예화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정직의 교훈은 금메달보다 오래 기억되고 향기롭습니다.
미국의 잘 알려진 기독교교육기관인 탬플 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을 지낸 러셀 콘웰 박사가 백만장자라고 알려진 6백 명을 조사했습니다. '그들이 백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들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 번 한 말은 꼭 지키고, 빚을 갚으며, 빌린 책을 돌려주고 솔직하였다"
이웃에 대해 정직한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의 경영철학은 대단히 간단했습니다. "정직이 최고의 상술이다", 그는 이 경영원칙을 가지고 크게 성공하여 백화점 6백 개를 운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1862년, 키스턴 철공소를 창립했습니다. 카네기는 "최고의 것을 정직하게 만든다"는 것을 경영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정부에서 키스턴 철공소에 "어느 강에 놓을 교량을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 주시오"라고 주문했습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주문이었습니다. 카네기는 면밀하게 검토한 끝에 이런 답을 보냈습니다. "우리 철공소에서는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하더라도 주문한 대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정부에서는 "당신이야말로 이 교량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의 주문은 좀 무리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발주를 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카네기의 키스턴 철공소에서 만든 교량은 믿을 만 하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나갔다고 합니다.
"한국은 인신매매 국가이다" "한국공무원들의 부패지수가 높다" 최근에 이런 부끄러운 조사결과들이 국제사회에서 발표되는 가운데 이런 통계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잡지인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어느 나라 사람이 가장 정직한가?" 알기 위해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세계의 중요 도시에 주인 연락처와 함께 50달러가 든 지갑 1100여 개를 일부러 흘리고 그 회수율을 조사했다고 합니다. 1위는 노르웨이와 덴마크, 회수율 100%, 싱가포르는 회수율 90%, 한국은 일본, 호주와 함께 회수율 70%로 4위, 미국은 67%, 영국과 프랑스는 60%, 꼴찌는 멕시코, 회수율 21%이랍니다.
이 회수율(回收率)을 양심지수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한국의 양심지수가 미국이나 영국보다 앞선다니 일단 반갑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입장에서는 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1위를 한 노르웨이와 덴마크는 신앙형태는 차이가 있지만 기독교율이 한국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회수율 90%인 싱가포르는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우리와 공동 4위를 한 일본은 기독교 인구의 비율이 1%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한국의 양심지수를 높여 놓아야 한국교회가 좀 큰소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는 말씀,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속이는 저울을 없애고 모두 공평한 추를 사용하는 사회를 이룩하여야 합니다.
요즘 구조조정, 작은 정부 만들기, 이런 것에 힘쓰고 있는데 속이는 저울들이 없어지고 모두 공평한 추
를 사용하는 사회가 된다면 정부 기구가 많이 축소되어 거기에 들어가는 예산을 다른 좋은 곳에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우선 공정거래위원회가 필요 없어지겠지요. 소비자보호원도 불필요한 기구가 될 것입니다. 경찰이나 검찰도 일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경제정의 실천시민연합 같은 시민단체들도 필요 없게 될 것이고 민간 소비자보호기구들도 다른 좋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끝 절인 11절에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라는 말씀도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큰 과제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이 땅의 20% 안팎인 기독교인들이 정직한 사람들이 될 때 이 나라는 축복 받는 나라, 진흥하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성읍은 또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악한 자의 입이 되는 나라는 망합니다.
천주교가 90년대에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천주교인들은 자동차에 "내 탓이오"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지요. 지금도 빛이 바랜 이 스티커가 붙어 있는 차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내 탓이오" 운동은 사회의 큰 호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천주교는 이번 9월부터는 "똑바로" 운동을 벌인다고 합니다. 9월부터 "똑바로"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차는 천주교인의 차로 보시면 됩니다. 천주교에서는 "똑바로"의 뜻이 세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곧다" "바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정직하다"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이 "똑바로" 운동이 90년대 "내 탓이오" 운동 이상으로 사회의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는 천주교가 정부에 대해 바른 말을 많이 했습니다. 독재에 대해 반항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천주교로 많이 갔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적으로 깨끗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강합니다. 천주교인들이 정직하기 운동을 벌이고 "천주교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다, 똑바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식이 퍼지면 천주교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정직하다"는 인식이 퍼지도록 하는 것이 간접전도의 하나가 됩니다. 여러분, 이웃에 대해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께 대해 정직해야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정직이라는 말들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정직이라는 말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성경은 시편과 잠언서입니다.
시편이 정직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시를 쓰려면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하지 않습니까? "생각함에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잠언에 정직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잠언은 실제적인 지혜를 가르치는 성경인데 정직이 최선의 지혜입니다.
그런데 뜻밖에 열왕기상하, 역대상하에 정직이라는 말이 또 집중적으로 나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열왕기서와 역대서는 왕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왕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끝에 가서 그 왕들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 이 두 성경의 기록 형식입니다.
열왕기서와 역대시에 나오는 정직이라는 말들을 찾아보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 하나님은 왕들을 평가할 때 '그가 얼마나 정직했나?' 하는 것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으셨구나!" 하는 것입니다.
다윗에 대한 평가입니다. 열왕기상 15장 5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다윗, 많을 일을 했지요. 그 가운데 제일 잘 한 일은 하나님께 정직한 것입니다.
유다 왕 아사에 대한 평가입니다. 열왕기상 15장 11절,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예후에 대한 평가입니다. "여호와께서 예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나 보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되 잘 행하여 내 마음에 있는 대로 아합 집에 다 행하였은즉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를 이어 사대를 지내리라 하시니라"
정직한 왕들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요아스나 아마사나 요담이나 여호사밧이나 여러 왕들에 대해서는 "그는 이러이러한 점은 부족했지만 정직한 점은 인정된다"는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 정직하지 못했던 왕들에게 대해서는 가혹한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유다 왕 아하스에 대해서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고",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보실 때도 "아무개가 내 앞에서 얼마나 정직한가?" 하는 것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칭찬 받고 싶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응답 받기 원합니까?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잠언서 15장 8절은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싶습니까?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잠언서 3장 32절은 "대저 패역한 자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정직한 자에게는 그와 교통하심이 있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짓은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면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인으로서의 나의 모습,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 나의 가장 정직한 모습입니다.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 24)라고 탄식한 것은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9장 1절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라고 자기의 정직성을 변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정직할 것을 권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전도입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3절에는 "정직한 자의 성실", 6절에는 "정직한 자의 공의" 11절에는 "정직한 자의 공의"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직을 바탕으로 성실하고 공의로운 사람들은 축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이웃에게 정직하고, 하나님께 정직하고 정직을 바탕으로 성실하고 공의로운 성도들이 되어 축복 받으시기를 진리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