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유통회-
묘법연화경.일일법문:그만두자! 사리불아...
그만두자! 사리불아... 모름지기 다시 말할 것이 아니니라.2-8
지사리불 불수부설
止舍利弗 不須復說
1-이 글은 부처님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사리불 불수부설(止舍利弗 不須復說)”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2-지사리불(止舍利弗)이라 말씀하신 것은 소승의 제자를 가리키고, 불수부설(不須復說)은 대승의 제자를 가리키니, 모두 영산제자를 두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3-또 지사리불(止舍利弗)은 소승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고, 불수부설(不須復說)은 대승의 경계로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불수부설(不須復說)이라 말씀하신 것이다.
4-즉 방편의 가르침을 받은 영산제자(靈山弟子)의 입장에서 무량한 겁을 걸쳐 부처님에게 교화를 받았으나, 그 가르침이 모두 방편임을 부처님이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5-수행의 관점에서 풀이하면 “지사리불(止舍利弗)”은 소승의 관법(觀法)이고, “불수부설(不須復說)”은 대승의 관법(觀法)이다.
6-즉 앞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불실성취(佛悉成就)”는 여래의 관법이니, 부처님이 소승과 대승의 관법이 모두 방편의 관법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7-지사리불(止舍利弗)이라 말씀하시니 지관(止觀)은 소승의 성문관법(聲聞觀法)이고, 불수부설(不須復說)이라 말씀하시니 불관(不觀)은 대승의 보살관법(菩薩觀法)이고, 불실성취(佛悉成就)라 말씀하시니 실관(悉觀)은 일승여래(一乘如來)의 관법이다.
8-소승의 성문은 삼계의 견사(見思)를 모두 번뇌라 보기 때문에 지관(止觀)에 안주해 무명(無明)을 끊는다. 따라서 지사리불(止舍利弗)이라 말씀하신 것이고, 대승의 보살은 견사(見思)가 바로 보리(菩提)라 보기 때문에 불관(不觀) 즉 관(觀)하지 않은 관(觀)에 안주해 무명을 끊는다. 따라서 불수부설(不須復說)이라 말씀하신 것이고, 일승의 여래는 견사(見思)가 없으면 부처님도 없다는 관(觀)에 안주해 무명을 끊는다. 따라서 불실성취(佛悉成就)라 말씀하신 것이다.
9-영산제자(靈山弟子)는 지관(止觀)과 불관(不觀)을 닦아 불실성취(佛悉成就)에 이르지만, 우리들... 경전제자(經典弟子)인 여래근기는 곧바로 불실성취관(佛悉成就觀)을 닦는 중에 지관(止觀)과 불관(不觀)을 방편으로 이해를 한다. 이는 모두 경전제자에 입각하여 관법(觀法)을 풀이한 것이다.
10-지사리불(止舍利弗)은! “성문의 제자들이여, 너희들이 닦은 모든 소승(小乘)의 관법(觀法)은 진실(眞實)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불수부설(不須復說)은! “보살의 제자들이여, 너희들이 닦은 모든 대승(大乘)의 관법(觀法)은 진실(眞實)이 아니다.”라고 부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이는 모두 영산제자에 입각하여 관법(觀法)을 풀이한 것이다.
11-정종보살(正宗菩薩)의 직위를 받은 천태보살의 마하지관(摩訶止觀)은 영산제자(靈山弟子)의 입장에서 관법(觀法)을 풀이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 우리들.... 경전제자(經典弟子)의 입장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12-“마하(摩訶)”는 불수부설(不須復說)이니 보살관법(菩薩觀法)이고, “지관(止觀)”은 지사리불(止舍利弗)이니 성문관법(聲聞觀法)이다. 따라서 마하지관(摩訶止觀)은 기본적으로 성문과 보살의 위치에서 닦는 관법이기 때문에 지금 현재 우리들.. 여래근기의 위치에서 맞지 않는 관법이다.
13-마하지관(摩訶止觀)은 성문과 보살이 불도(佛道)에 들어가는 관법(觀法)이기 때문에, 우리들 여래근기의 입장에서는 매우 하열한 관법에 속한다. 부처님이 법화경에서 이르시길, “법화경의 경전에 공양을 드리는 일은 삼세(三世)와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에 공양을 드리는 공덕이 된다.”하심에 있어, 영산제자는 이 가르침을 들었지만 도무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천태보살이 영산제자들을 가엾게 여겨 마하지관(摩訶止觀)에서, 지사리불(止舍利弗)의 소승관법(小乘觀法)과 불수부설(不須復說)의 대승관법(大乘觀法)을 말씀하신 것이다.
14-우리들 여래근기인 경전제자는 곧바로 일승관법(一乘觀法)인 불실성취(佛悉成就)의 실관(實觀)을 가지고 닦기 때문에, 지관(止觀)과 불관(不觀)을 방편관(方便觀)으로 삼을 뿐이다.
15-우리들 경전제자인 여래근기가 닦는 관법에 있어, 진실관법(眞實觀法) 즉 불실성취(佛悉成就)의 실관(悉觀)에 사관(四觀)이 있으니 이를 사실관법(四悉觀法)이라 한다. 첫째 공양관법(供養觀法). 둘째 공경관법(恭敬觀法). 셋째 존중관법(尊重觀法). 넷째 찬탄관법(讚歎觀法). 이다.
16-첫째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십여시(十如是)와 무루실상(無漏實相)의 십여시(十如是)를 둘로 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십여시(十如是)라 하니, 일체중생(一切衆生)과 일체사성(一切四聖)을 차별하지 않고 공양(供養)하는 일을 가리켜 공양관법(供養觀法)이라 한다.
17-둘째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십여시(十如是)와 무루실상(無漏實相)의 십여시(十如是)를 둘로 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십여시(十如是)라 하니, 일체중생(一切衆生)과 일체사성(一切四聖)을 차별하지 않고 공경(恭敬)하는 일을 가리켜 공경관법(恭敬觀法)이라 한다.
18-셋째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십여시(十如是)와 무루실상(無漏實相)의 십여시(十如是)를 둘로 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십여시(十如是)이라 하니, 일체중생(一切衆生)과 일체사성(一切四聖)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尊重)하는 일을 가리켜 존중관법(尊重觀法)이라 한다.
19-넷째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십여시(十如是)와 무루실상(無漏實相)의 십여시(十如是)를 둘로 보지 않는 것을 가리켜 중도실상(中道實相)의 십여시(十如是)이라 하니, 일체중생(一切衆生)과 일체사성(一切四聖)을 차별하지 않고 찬탄(讚歎)하는 일을 가리켜 찬탄관법(讚歎觀法)이라 한다.
20-종지용출품에서 지용보살들이 한꺼번에 “사바세계 기사굴산에 도착하더니 두 분의 세존을 향하여 머리와 얼굴을 숙여 불족(佛足)에 예배를 드리고, 또 모든 보리수 아래에 이르러 사자좌(師子座) 위에 계신 화신불(化身佛)에게 역시 예배를 드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서 합장해 공경(恭敬)을 하고, 모든 보살이 가지가지의 찬탄하는 예법으로 찬탄(讚歎)을 하고서 한쪽에 머물러 두 분 세존을 우러러 뵈었다.”(到已 向二世尊 頭面禮足 及至諸寶樹下 師子座上佛所 亦皆作禮 右繞三匝 合掌恭敬 以諸菩薩 種種讚法 而以讚歎 住在一面 欣樂瞻仰 於二世尊)하시었다.
21-“도이 향이세존 두면예족 급지제보수하 사자좌상불소 역개작불(到已 向二世尊 頭面禮足 及至諸寶樹下 師子座上佛所 亦皆作禮)”은 공양(供養)을 가리키고, “우요삼잡 합장공경(右繞三匝 合掌恭敬)”은 공경(恭敬)을 가리키고, “이제보살 종종찬법 이이찬탄(以諸菩薩 種種讚法 而以讚歎)”은 찬탄(讚歎)을 가리키고, “주재일면 흔락첨앙 어이세존(住在一面 欣樂瞻仰 於二世尊)”은 존중(尊重)을 가리킨다.
22-지사리불(止舍利弗)과 불수부설(不須復說)을 합쳐 우리들 경전도량에서 법화경을 읽고 외우는 여래근기를 가리킨다. 부처님이 <경전제자들이여! 소승은 근기인 성문은 지혜가 하열(下劣)해도 곧바로 진실을 말하면 이해를 하기 때문에 내가 “지사리불(止舍利弗)”이라 한 것이다. 하지만 대승의 근기인 보살은 과거에 중간 중간 일승의 진실을 말하였으나 믿지 않아 지금 다시 “불수부설(不須復說)”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경전회상에 있는 너희들은 “지사리불(止舍利弗)과 불수부설(不須復說)”을 잘 이해하기 때문에 여래근기의 제자라 하는 것이다.”>말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偈頌-
공양관법(供養觀法)을 닦으면
마음에 번뇌(煩惱)가 없고,
공경관법(恭敬觀法)을 닦으면
몸 밖에 원수(怨讐)가 없고,
존중관법(尊重觀法)을 닦으면
수행(修行)의 계위(階位)가 높아지고
찬탄관법(讚歎觀法)을 닦으면
여래(如來)의 신통(神通)을 얻는다.
-寶雲法師 復說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
첫댓글 웃는 여유로움으로 시작하는.... 날...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