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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아기께 경배하세 말씀/ 마태복음 2:1-12 요절/ 마태복음 2:11 | 2024. 12. 22 | |
성 탄 제 3 강 |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메리 크리스마스! 하나님의 아들이 한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어린이들은 일년 내내 자기 생일을 기다립니다. 왜 그토록 기다립니까? 그 날이 바로 하나님께서 엄마의 몸을 통해 나를 세상으로 보내신 날이요, 축하받고 선물 받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의 구원자이시며 왕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새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 한 아기로 우리 곁으로 오셨으니 이보다 더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습니까?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알고 별을 따라서 유대 땅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함으로 참 기쁨과 만족을 얻었습니다. 우리도 오늘 아기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요 왕으로 만나고 그 분께 경배드림으로 모든 슬픔과 고통과 상처를 나음 받고 행복 바이러스가 넘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 다스리냐에 따라서 백성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헤롯 왕은 권력욕이 강한 왕이었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있는 두 살 아래 아이들을 학살했습니다. 이런 독재자의 지배를 받는 백성들은 늘 불안과 두려움과 고통 가운데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슬픔과 원망 소리가 가득한 유대의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고대하던 구원자 그리스도가 오셨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들에서 양을 치는 비천한 목자들과 경건한 몇 사람 외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자 마태는 예수님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분명하게 출생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그리스도는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했기 때문에 나사렛 사람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유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지 못했지만 놀랍게도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이 알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동방은 옛 바벨론 제국이 있었던 페르시아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사는 지혜로운 사람들로서 천문학, 점성술, 수학, 의학, 역사에 능통한 학자들이며 성직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 탄생을 알려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었는데 잠시 한 눈 판 사이에 그 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궁궐로 가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유대인으로 이 땅에 오실 만왕의 왕, 인류의 구원자를 가리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학자들이었기에 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습니다. 특히 민수기 24장 17절에 나오는 메시아 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진리를 간절히 찾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메시아 탄생을 알리는 그 별을 보내어 주셨습니다. 그들은 어느 날 유난히 밝게 빛나는 메시아 별을 발견하고, 어린아이처럼 깡총 깡총 뛰며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짐을 싸서 머나 먼 여행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진리의 왕 그리스도를 만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출발할 때부터 그리스도에게 드릴 보배합도 준비했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여행길은 참으로 힘이 들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1년 이상 별을 따라 마침내 유대 예루살렘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가 있었고 개척정신과 희생정신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많은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한 것은 그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오는 동기는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은 병을 낫기 위해서 옵니다. 어떤 사람은 지혜를 얻기 위해서 옵니다. 영어를 배우려고, 탁구 치려고 오기도 합니다. 여자 친구를 얻고자 오는 남자들도 있습니다. 친구 따라 오기도 합니다. 간혹 동방박사들처럼 진리를 찾기 위해서 오는 이들도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2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나이 들기 전에, 내 인생에 무서운 날이 닥치기 전에, 어린 시절이나 청년 시절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분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께 경배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고 직접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큰 벽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 벽을 허물고 길을 만들어주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이시며, 동시에 온 인류의 구원자요 경배의 왕이십니다.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은 소동하였습니다. 그들은 속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헤롯이 그리스도가 태어난 지역을 물어본 것을 보면 그는 유대인의 왕을 그리스도로 이해했습니다. 헤롯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왕권을 빼앗는 정치적인 왕으로 여겼기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백성들은 새로운 왕과 헤롯 왕이 부딪히면서 불어 닥칠 후폭풍을 생각하고 불안과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들은 메시아 왕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헤롯 왕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비상소집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성경을 잘 알고 있는 종교지도자들은 즉시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미가 선지자의 말에 의하면 베들레헴은 유대 고을 중에서 결코 작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 왕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입니다. 그 분은 목자 왕이십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목자라고 부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자 왕 하나님은 나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시고,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도 함께 하시며,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게 하십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불의한 통치자 때문에 슬픔과 고통과 상처를 많이 당합니다. 큰 기대 속에서 자신들의 손으로 지도자를 뽑지만 오히려 그들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불안과 두려움과 염려로 눌리고 절망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국민을 귀하게 여기고 겸손과 사랑과 정의로 섬기기보다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억압하고 이용하고 처단하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서민들과 소상공인들과 노동자들의 절실한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알아도 해결해 줄 수도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는 목자처럼 다스려줄 왕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 왕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양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신 선한 목자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참 양식과 쉼을 주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겸손과 사랑과 평화로 우리를 다스림으로 참 행복과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까? 세상 왕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목자 왕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가 목자 왕 예수님을 마음 첫 자리에 모시고 그 다스림을 받음으로 시끄럽고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도 참 평화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가만히 불러서 별이 언제 동방에서 나타났는지 자세하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박사들을 보내면서 아기를 찾으면 자기도 경배하게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진짜 의도는 그리스도로 태어난 아기를 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정적의 싹을 없애버리고자 했습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가고 있을 때, 동방에서 보았던 그 별이 문득 앞서서 그들을 인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별이 앞서 박사들을 인도하는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앞서 인도하는 성령을 생각나게 합니다. 오늘날 성령은 우리를 예수님께 인도하는 별의 역할을 합니다. 별은 아기가 있는 곳으로 정확하게 박사들을 인도하였습니다.
별을 본 박사들의 기쁨이 어느 정도였습니까? 그들은 아기를 가리키는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최고로 기뻐하였습니다. 그 기쁨은 하늘의 기쁨이요, 마음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입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 국민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그토록 고대했던 유대인의 왕을 만나게 되었을 때 어린아이처럼 춤을 추며 기뻐하였습니다. 박사들은 새로운 지식을 알아갈 때 기뻤을 겁니다. 사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을 때 기뻤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아들 딸 낳았을 때 그 기쁨이 말할 수 없이 컸을 겁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어떤 기쁨과도 비교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이런 기쁨이 솟아났을까요? 경배대상을 찾은 데서 오는 기쁨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참된 예배의 대상을 찾은 데서 온 것입니다. 사람은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참된 예배의 대상을 찾을 때 참 기쁨을 얻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참된 예배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높은 점수를 받을 때 학생들은 기뻐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갈 때 기뻐합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갈 때 그리고 승진할 때 기뻐합니다. 좋은 집으로 이사할 때 기뻐합니다. 처음 비행기를 탔을 때 기뻐합니다. 생일 날 축하받고 선물 받을 때 기뻐합니다. 세례 받고 목동 선서를 하고 목자 선서를 할 때 기뻐합니다. 황사무엘 목자님은 일대일 양인 최다윗 목자가 결혼할 때 기쁨이 넘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기쁨은 참된 예배의 대상을 만난데서 오는 기쁨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랑에 목말랐습니다. 어떤 남자도 그녀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 대화하는 가운데 그 분을 그리스도로 믿고 참 기쁨과 만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9)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는 박사들의 모습에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의 깊이가 엄청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정한 기쁨, 세상이 뺏어갈 수 없는 깊은 기쁨을 알지 못하고 피상적인 기쁨을 맛보는데서 그칩니다. 세상의 기쁨은 잠시 잠간이고 다시 목마르게 합니다. 저자 마태가 동방박사들의 기쁨을 최상급으로 표현한 것은 그가 이런 기쁨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따르게 된 후 그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해서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만큼, 또한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 큰 잔치를 베풀 만큼 그의 기쁨은 참으로 컸습니다. 동방박사들의 기쁨, 사마리아 여인의 기쁨, 마태의 기쁨은 이 땅에서 경험하는 모든 슬픔의 감정을 압도하는 큰 기쁨입니다. 그 기쁨은 죽음으로 인한 슬픔의 감정도 압도하는 기쁨입니다.
우리는 기쁨 얻기 위해 얼마나 애를 많이 씁니까? 게그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영화도 보고 만화도 봅니다. 야구장에도 가고 여행도 갑니다. 게임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아이스크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떱니다. 그런데도 기쁨은 잠간이고 스트레스 받는 일은 많고 우울증을 앓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와 우울증에서 벗어나고자 어떤 사람들은 마약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왜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기쁨을 얻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에 빠지는 것입니까? 그것은 참된 경배의 대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특별한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자 왕 예수님을 만나고 경배할 때 누구나 최고의 기쁨을 누랄 수 있습니다.
박사들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께 어떻게 경배하였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그들은 아기가 있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은 좋은 집이 아니었고 보통 시골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였습니다. 마음이 깨끗한 그들은 아기가 그들이 그토록 찾던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보았습니다. 연약하고 무력한 아기지만,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대로 그 아기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강의 왕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아기께 엎드려 절하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렸습니다.
나이 많고 부와 권세와 지식을 가진 박사들이 아기께 엎드려서 절하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아기께 경배하는 박사들의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배자의 모습입니다. 이때 박사들의 기쁨은 절정에 달하였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구원자요 목자 왕을 향한 감사와 감격 때문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을 겁니다. 참된 예배는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서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엎드리고 복종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들은 동방에서 가져온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 박사들은 최고의 보물을 준비하여 드렸습니다. 헤롯 왕에게 드린 것이 아니라 아기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박사들이 드린 예물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황금은 왕과 관련이 있고, 유황은 제사장과 관련이 있고, 몰약은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시며,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시는 제사장이시며,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구주이십니다.
동방박사들은 예배자의 좋은 본이 됩니다. 예배는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죄사함의 은혜를 받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채워지고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동방박사와 같이 예수님께 경배하고자 하는 순수한 동기로 예배에 참여하는 좋은 예배자들이 우리 가운데 많이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 아기 예수님은 온 인류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왕이십니다. 우리를 목자처럼 다스려 주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경배하고 있습니까? 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경배함으로 기쁨과 빛과 희망이 충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