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방의 공부의 범위를 외극 작가까지 확대해 보겠습니다.
저는 시인이 아니라서, 제가 좋아하는 작가는 소설가입니다.
틈틈이 소설가를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플로벨의 보봐리 부인이 인기가 있더라 싶어서 ---
*에밀 졸라 1
이왕 소설을 공부하려면 에밀 졸라(1840년~1902년)도 뻬먹을 수 없습니다.
(*나는 에밀 졸라를 엄청 좋아함으로 조금 상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에밀 졸라는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현대 소설에 기폭제 역할을 한 작가이다. 프랑스 소설의 황금 시대인 19세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작가이다. 또한 당대의 프랑스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이자 지식인이다.
졸라는 1840년에 파리의 생조프 街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프랑수아 졸라는 베네치아 출신의 이태리 인으로 토목 기사이다. 3세 때 아버지는 액상프로방스 지방에 운하공사를 맡아서 이주했다.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운하 공사가 중단되면서 졸라네 집은 채무에 시달린다. 어머니는 당국과 소송을 벌이는 와중에 소년기를 보낸다. 부르봉 중등학교를 거쳐 파리의 생 루이 중등학교를 다녔다.
극심한 생활고에서도 교육열이 높았던 어머니에 의해 엑상프로방스의 명문 '부르봉 중학교'에 입학하여 에밀 졸라는 장-바티스탱 바유, 그리고 누구보다도 1886년까지 그의 절친으로 남은 폴 세잔과 친분을 쌓았다. 세잔은 졸라에게 시각 예술, 그중에서도 특히 회화를 소개해주었다.
부르봉 중등 학교 시절에 유명한 화가 세잔느를 만나서 절친이 된다.(이 이야기는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세잔느로부터 그림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는 문학에 빠져 있었다. 6학년 때 이미 십자군에 관한 소설을 쓴 일이 있다. 죽마고우이던 폴 세잔과 장-바티스탱 바유는 그 소설의 첫 독자였다. 졸라는 두 친구에게 훗날 자기는 유명한 작가가 될 것이라고 교환편지에 여러 차례 쓰기도 하였다.
1858년에 어머니와 엑상프로방스를 떠나 파리에 왔다. 졸라는 1859년 바칼로레아(에콜 드 폴리테크니크) 이과 시험에 두 번이나 떨어졌다. 실패가 어머니를 실망시켰다고 느껴 절망했다. 졸라는 또한 학위 없이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22세 때 아세트 서점에 취직하였다. 3년 간 많은 책을 읽고, 습작을 하면서 보낸다. 이때, 과학적, 실증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하여 사실주의 문학에 눈을 뜬다. 그리고 소설을 쓴다.
한편으로 액상프로방스 출신들을 주로하여 친구를 사귀었다. 화가 마네, 시인 말라메르 등등.
특히 어린 시절 친구였던 폴 세잔은 졸라와 각별한 사이였다. 십여 년 간 졸라와 세잔은 한 집 건너편에서 살면서 많은 편지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경제적으로 도와주었다. 허나 시간이 흘러가자, 특히 세잔이 졸라의 소설 ‘작품’에서 실패한 화가, 클로드 랑티에라는 등장 인물이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여기고 둘의 우정에는 금이 갔다. 세잔은 1866년 졸라와의 마지막 편지에서 그와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썼다.
(졸라와 세잔의 관계는 뒤에 한 꼭지를 할애하여 소개하겠습니다.)
졸라의 작품은 제2제국 시기 프랑스 사회를 묘사한 20권의 소설 대작인(수세대에 걸친 루공-마카르 가문의 역정을 보여주는 소설) 루공-마카르 총서》가 유명하다.(세잔느와 틀어지게 한 소설 ‘작품’도 루공 마카르 총서에 실려 있다.) 소설의 대상이 된 각각의 인물을 통해 그 시대상황을 표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