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몸 안에서도 제일 깊은 회오리바람 소리가 나는 지점을 짚어내어 번갈아 귀를 대 보다 출렁, 운명선으로 스며들 듯……. 신갈에서 여주분기점으로 감곡 IC로 다릿재고개 나들목으로 외곽 순환로에서 39번 지방도로로 잔금 진 계곡 길로 핸들을 꺾을 때마다 감정선 부근이 출렁, 먼저 휘어진다.
스며드는 길의 묘미는 절묘한 타이밍에 있다. 큰 길, 큰 금, 큰 이정표들을 미련 없이 제때 버려야 떠도는 우연이 필연이 된다. 난분분한 선들이 제 가닥을 잡고 팽팽히 날아오른다.
또 새 분기점이다. 너의 가장 빽빽한 소용돌이 속으로 출렁, 스며들어야 할 포인트다.
떨리는 유혹이다.
—《시안》2011년 겨울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클라우드 요법 ㅡ안차애
금요일 밤이 지루하다면 이미 당신은 아프거나 늙었다는 의미 값싸고 풍성한 구름이불을 덮어봐 거품 솜틀 안에서라면 시계바늘 쯤이야 거꾸로도 돌릴 걸 요요현상이 되풀이된다면 권태가 시작되었다는 뜻 구름 빵 놀이로 미리 다이어트 식단을 만들어두면 한주일치 감량은 문제없을 거야. 수요일의 구름 속은 위험해 네 타이핑에 가속도가 더해진다면 기가바이트의 방들은 좌회전 방향으로 부풀어 오를 거야
추락과 누수가 예고 없다는 게 구름의 장점이지만 폴더의 방들은 색색의 섹션으로 나누어 주어야 해 목요일의 명함을 문패로 달아줘도 괜찮아 주말엔 이미테이션과 하이퍼링크를 조합하여 미래를 컨설팅해 보면 어때? 구름 결혼시키기 놀이라고 키득거리면 재미날 거야 구름의 정치색과 배경음악을 합체한다면? 구름에 수염과 가발을 덧붙인다면? 알록달록 스펀지 밥 같은 꿈들을 가불하다 보면 구름의 용량은 쭉쭉 빵빵 늘어날 거야 그래도 사방이 꽉꽉 막힌 벽 속이라면 구름의 변비약을 복용해 막힌 속이 시원하게 뚫려 주룩주룩 쏟아져 내릴 걸 불면증과 우울증 사이의, 생의 참혹과 허무 사이의 세포벽들이 우당탕탕 무너져 내려 세상이 허방허방 둥둥, 구름은 변신 중이어서 나날이 새록새록 정신없이 어여쁠 걸…
—《미네르바》2012년 가을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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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구급상자 ㅡ안차애
낯선 방에서 외로움 병 깊이 앓는 것 두려워 혼자 길 떠나기 두려우시다구요? 만능 문학 구급상자와 함께라면 어떠세요. 어린 날 꿈이었던 곽에 든 과자 선물세트 같은 것 말이예요. 우선 색 색깔 달콤새콤한 드롭스처럼 발랄엽기적인 K시인과 H시인의 시집을 두어 권 넣어주세요. 먼 아득한 신작로 길에 지칠 때, 비좁은 열차 칸에서 입안 텁텁할 때 산뜻한 단 맛을 선사할 거예요 진한 맛의 비스킷이나 크래커처럼 사랑과 궤변으로 맛깔나게 풀어낸 Y와 M의 소설 한 두 권씩도 꼭 넣어주세요. 한 끼분 대화나 수다용은 될 거예요. 늦은 밤 낯선 곳에서의 갑작스런 존재의 허기는 예측 불허의 재난처럼 깊고 우울하니까요 초콜릿이나 양갱 땅콩캐러멜의 진한 맛 같은 말라르메, 바슐라르, 요슈타인 가이드는 어떤가요? 오랜 여행 피로에서 오는 저혈당증 등에 특히 유효할 거예요. 생기 발랄 비타민도 되었다가 비상 에너지 바도 되었다 달콤한 우수의 츄잉 껌도 되는 문학 구급상자 한 세트…… 밤마다 스웨덴 제 투명 나침반만 만지고 있는 당신께 퀵 서비스로 바로 보내드리지요.
—다음카페 《시와시와》 게시판 ................................ 한국문학에 관심 있는 주한 외교관들이 주요멤버인 ‘서울문학회’란 단체가 있다. 7년 전 주한 스웨덴 대사가 만든 모임으로 국내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국문학을 보다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현 회장인 다니엘손 대사는 인터뷰에서 “한국 문학이야말로 세계가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보물”이라며, 문학은 싸이의 음악처럼 대중적 인기를 끌 수는 없고, 그게 문학의 본질이기도 하지만 번역만 제대로 이뤄지면 한국문학은 세계에 널리 알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 고마운 말씀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들 자신이 우리 문학을 얼마나 이해하고 아끼느냐 하는 점이 더 중요하다. 요즘 사람에게 ‘은하수’를 본 일이 있느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그게 뭔지 모르거나 본 일이 없다거나 그림에서나 보았다고 답한다. 담배갑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오늘날 문학의 처지가 그럴지 모르겠다. ‘어린 날 꿈이었던 곽에 든 과자 선물세트 같은 것’이라면 다행이고, ‘달콤새콤한 드롭스’면 차라리 희망적이다. 문학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구급상자’의 기능을 한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꼭 ‘예측불허의 재난처럼’ 다급할 경우가 아니더라도, ‘아득한 신작로 길에 지칠 때, 비좁은 열차 칸에서 입안 텁텁할 때’ ‘츄잉껌도 되는 문학구급상자’라면 하나씩 상비해도 나쁘지 않겠다. 참고로 거창한 문학회는 아니지만 사람과 문학을 연결하며 ‘시와 함께 사람과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시와시와>라는 자일리톨 같은 ‘문학구급상자’도 새로 출시되었음을 알린다. '과자 종합세트'는 몰라도 은하수 한줄기 쯤은 보여줄 것이다. 신청을 하면 당신께도 ‘퀵 서비스’로 바로 보내드린다고 한다.ㅡ권순진 (시인) ㅡㅡㅡㅡㅡㅡㄷ
물어 뜯기듯 사납게 잠이 든다 예령도 없이 앉아서 혹은 서서도 빠지는 잠 책을 보다가 술을 마시다 키스를 하다가도 빠져드는 잠, 별까지의 왕복거리가 멀어져서다 멀어지는 너와의 거리에 가위 눌린 탓이다
이제 내가 익힌 보폭으로는 네게 가 닿을 수 없다 밤사이 더 멀어만 지는 별, 닿지 못할 종종걸음이 낯선 아침을 토해놓는다 난폭한 바람과 버스들을 풀어 놓는다 너의 공전주기에 맞춰졌던 심장의 박동주기가 자꾸 스텝을 놓쳐 부정맥이 심각하다
별들의 공전주기는 길어만 지고 너와의 만유인력 거리는 깜빡이며 점멸하는 사이 뭉텅뭉텅 물어뜯기는 잠 숭덩숭덩 썰려 나가는 하루 혼절한 꿈들이 하얗게 증발한다
치명적 그늘
이용백 화백의 그림 ‘엔젤 솔저’를 본다 그림 속의 꽃들은 유난히 생기 있게 반짝인다 그 꽃들이 시들지 않는 이유는 치명적 그늘 때문이다 꽃 밑이거나 꽃 사이의 여백에 묵직한 무기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통꽃이거나 겹꽃이거나 자잘한 톱니모양 꽃이거나 혼자 피었거나 와글와글 무리지어 피었거나 이미 툭 꺾였거나 모든 꽃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총구가 있다 때로 외연이 내포를 꽃받침처럼 받쳐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꺾인 꽃과 내려앉는 꽃 사이, 시들거나 마르는 꽃 사이 발작적인 난분분과 붉은 웃음소리 사이의 음험한 그늘에 검은 무기가 숨겨져 있다 때로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이 한 잎에 세 살기도 하는 모양이다 점점이 박힌 반전이 있어 꽃빛은 요요하고 향내는 깊다 짐승처럼 뜨거운 숨소리를 내는 검은 입들 돌아서기엔 너무 늦어서 다행이다 삶이 일회적이어서 너무 섹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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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이 불안하다
계단에서 굴러 왼팔이 골절된 적이 있다 책상에 부딪혀 허벅지는 시퍼렇게 멍들어 있고 평생 반 짝짝이로 나는 왼쪽 검지 손톱을 가지고 있다
늘 왼편이 위험하다 오래 젖어 있거나 갈라져 있고 부어오르거나 움푹 팼다 왼편의 젖가슴이 왼편의 심장이 왼편의 사랑이 상습적으로 흔들리거나 금이 가 있다
왼쪽으로만 눈이 돌아간 광어에겐 왼편이 제가 짚고 일어설 바닥이다 왼편의 멍자국과 흉터, 수시로 금이 가는 뼈들은 오랜 대속이다 부단히 넘어지거나 쏠리는 좌편향 자세로 한 생의 환난과 모멸을 건너간다
색깔에 색깔을 더하고 의미에 의미를 포개다 보면 마침내 아득한 무채색이라는 걸 안다고 해도
시간에 시간을 포개는 건 우리의 오랜 후렴 기억에 기억을 덧칠하는 건 우리의 지독한 착시
도덕경 260 글자 낱낱이 앵글로 잡았다가 다시 포개어 한 컷으로 잡은 김아타의 사진에선 아른아른한 솜사탕 한 개 분량의 색즉시공이 피어오른다 잘린 줄도 모른 채 잘려나간 시간들만 공즉시색으로 흘러내린다 살처분하여 묻어버린 기억의 비늘들이 뭉근한 비린내로 번지고 있다
'너는 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유언인 줄도 몰랐던 엄마의 오랜 전언이 외전(外傳)으로 고개 끄덕이며 포개지고 있다 만 컷의 말씀이 한 마디에 중첩된 엄마의 생활경 한 소절 시간의 경계를 넘는다
사랑에 사랑을 더하고 눈물에 눈물을 포개다 보면 덧칠할 수도 없는 멜로드라마의 뻔한 구조라 해도
사랑에 사랑을 보태는 건 우리들의 상처적 진화 눈물에 눈물을 덧붙이는 건 우리들의 진부한 역설
—《문학청춘》2014년 여름호 ------------- 차서(次序) ㅡ안차애
어떻게 봄 다음에 겨울이 오니 어떻게 사랑 다음에 스펀지밥 같은 허기가 오니 어떻게 당신 다음에 무덤 같은 아침만 오니
잎이 나고야 꽃이 피고 꽃이 피고야 열매를 맺는 것이 순리 때때로 지나가는 비나 눈, 이슬이나 서리가 우수 곡우 백로가 되고 스침과 만남, 포갬과 스밈이 되는 이치라 깨닫는다
반드시 이 순서가 저 순서를 불러오지는 않으므로 노래의 후렴부분만 좋아졌다
수시로 저 기억이 이 기억을 불러오지 않고 오늘이 어제보다 먼저 창가에 와 닿기도 한다. 잎이 피는데 새는 푸른 피를 흘리며 떠나고 꽃이 지는데 가지사이 샛가지가 파랗게 뻗치기도 한다
내가 슬픔을 버린 게 먼저인지 슬픔이 나를 유기한 게 먼저인지 요약본을 만들 수 없는 페이지가 늘어간다
어떻게 겨울 다음 가을이 오니 어떻게 이별 다음 젖은 키스가 오니 어떻게 허방 다음 새 주둥이 닮은 찻잎 한가운데니
몇 생전의 결락(缺落)을 오래 앓는다.
—《시산맥》2014년 가을호 ------------- 시의 제목인 차서(次序)란 단어가 흔히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가 아니지만, 병기한 한자를 보면 차례로 순서를 정하는 말이라고 짐작은 된다. 사전적인 뜻은 둘 이상의 것을 각각 선후(先後)로 구분하여 하나씩 벌여 나가는 순서라고 풀이되어 있다. 자연의 순리가 그렇다. 그러나 인간사는 순리대로, 순서대로만 오지 않는 게 다반사이다. 이제 막 사랑의 꽃이 피어나서 꿈같은 봄날이 되었는데, 절정의 여름도, 열매 맺음의 가을도 누려보지 못했는데, 어떻게 봄 다음에 바로 삭풍의 겨울이 느닷없이 올 수 있단 말인가. 이제 막 성스러운 사랑이 끝났는데, 어떻게 사랑 다음에 스펀지밥 같은 생리적 허기가 게걸스럽게 찾아온단 말인가. 이제 막 당신과 헤어졌는데, 당신의 따뜻한 체온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당신 다음에 무덤 같은 아침만 저승사자처럼 찾아온단 말인가. 우수 곡우 백로가 되고, 상강 동지가 되는 것이, 스침과 만남, 포갬과 스밈이 되는 것이 이치라 깨닫는데, 어찌 우리가 하는 순정한 일조차도 성결한 의례에 따라서, 이 순서가 저 순서를 불러오지 않고, 노랫말의 본문의 의미가 뒤죽박죽되어 노래의 후렴 부분만 좋아졌다고 화자는 자탄을 한다. 지순하다 믿었던 사랑이 끝이 났는데, 내 몸처럼 소중하던 당신이 떠나갔는데, 어찌 성스러운 슬픔의 품에 오래 안겨 있지 못하고 저리도 쉽사리 유기되었단 말인가. 화자는 허망하게 한탄한다. 어떻게 가슴 시린 겨울 다음에 바로 마음 평정한 듯 가을에 들 수 있니. 어떻게 마른 입술의 이별 다음 바로 젖은 키스를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니. 어떻게 절망의 허방에 빠진 듯 하다가 다음에 바로 새 주둥이 닮은 찻잎 한가운데에 사뿐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앉아 있을 수 있니. 몇 생전의 태생적 원초적 결락(缺落)을 화자는 오래 앓으며 탄식한다. 시인은 전통 서정시의 화법으로 조용하지만 예리하게, 에둘러서 말하지만 설득력 있게, 우리의 경망스러움, 진솔하지 못함, 허망함을 조곤조곤 들쳐 보이며 자탄케 하고 자성케 하는 시적 묘법을 보이고 있다.
———— 김세영 / 2007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으로『물구나무서다』등이 있다.
쌈 ㅡ안차애
쌈을 싸서 난감한 유월의 오후 두 시를 밀어 넣는다
상추쌈 치커리 쌈 호박잎 쌈 짙은 엽록소의 맛들은 그늘을 어둠을 밀어내는 기대만큼 쌉쌀하고 아삭하고 심드렁하다 고요하거나 캄캄한 것들을 싸 넣기에 적당한 폐곡선을 가졌다
중독의 전조는 늘 밀리면서 온다 식은 밥을 싼 상추쌈 몇 번을 점심으로 밀어 넣으며 하염없이 땀을 흘리던 고향마을 과수댁이 있었다 푸른 쌈을 입안으로 밀어 넣으면 이마의 푸른 정맥 부근에서 막무가내의 수액처럼 쏟아지던 땀방울들, 초록 쌈이 땀방울을 밀어냈는지 외로움이 질린 핏줄을 밀어 올리는지, 초록 이파리같이 무성하거나 무상한 삶이 무서워졌다
초록은 슬픔을 밀어 넣기 맞춤한 질량 암묵의 마음과 밀어대는 식욕이 누르기 좋은 기압차를 가진 것처럼, 내놓고 어두워지는 슬픔도 아니면서 풀독 같은 쓰라림이 오래 나를 다녀갔다 유월의 오후가 몰약처럼 진한 초록을 밀어내는 까닭은 푸른 되새김이 어금니를 무럭무럭 밀어 올리는 것과 같다
쌈을 싸서 오랜 혓바닥을 감아 넘긴다 일기예보보다 지루하게 밀고 밀리는 기압골 퍼런 말 한 덩어리가 저기압으로 길게 걸려있다
—2014 올해의 좋은 시, 《다층》2014년 겨울호 ------------- 사랑의 방식
안차애
닳아서 쓸리는 것은 한쪽으로만 기울어지는 경사 때문이다 왜 늘 홀림은 쏠림으로 나타날까 갸우뚱한 열시 오십 분의 얼굴 표정을 하고
좌편향이 취향이라면 경추 5번 6번의 협착증은 현상이다 다리를 외로 꼰 채 왼손으로 턱을 괴고 앉는 것 그래서 먼 별 같은 생각만 하는 것이 오랜 편향이라면 직립의 하방경직성 피로증후군은 현상이다
구두 뒤축이 한쪽으로만 닳는 것은 불구의 현상이다 시간이 여기를 지그시 눌러 사랑하는 압착의 방식은 납작납작한 박수근의 그림처럼 봉제선의 한쪽 결만 도드라진다 뼈와 뼈 사이는 한쪽이 접히면 맞은편이 부풀리는 아코디언의 자세로 통증을 깊이 울린다 천칭저울이 평형을 이룬 적은 없다 내가 기우는 사이 네가 울었거나 네가 기울어진 한편으로 내 상처가 꽈리처럼 부풀었다
매혹이 끌림을 쓸고 가는 기우뚱한 사랑의 방식은 사시의 눈알을 뽑아 한쪽 벽에 걸어두고 오래 사랑한 그 때문이었다.
계간 『문학과 창작』 2015년 여름호 발표
사막에서 잠들다
—앙리 루소, 잠자는 집시(1897)
안차애
집시 여인이 모래언덕에 누워 잠든 사이
손에 쥔 지팡이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옆에 둔 만돌린이 칭얼대지 않도록
그녀가 머리맡에 세워둔 물병이 넘어지지 않도록
자장자장 아주 자장
사자는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순하게 갈기를 눕힌다.
만월은 푸른 악절의 쉼표 부분만 연주 중이고
시간은 밤의 건반을 소리 없이 누른다.
따뜻한 공기방울들이 코발트블루에 싸여
잠은 푸르게 익고
넌 나를 만져준 유일한 이야
잠이 짚어준 밤의 이마가 희붐하다.
모래처럼 허물어진 것들이
꿈속에선 수프처럼 다시 끓어오르고
바람 부는 높이, 하늘엔
무도회 가면을 쓴 당신처럼
웃는 달.
—《시인수첩》 201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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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차애 / 1960년 부산 출생. 2002년〈부산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불꽃나무 한 그루』『치명적 그늘』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