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적이 따로 있나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장영
이달 상하수도 사용료 청구서를 받았다. 사용량이 이달에는 50톤, 지난달엔 41톤, 그 전달엔 32톤이었다. 그간 월평균 15~16톤가량 쓰던 것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처음엔 ‘많이 사용해서 그랬겠지!’ 그렇게 짐작하고 말았다. 그런데 매달 두 배, 세 배로 늘어나니 분명 물이 새는(누수:漏水) 현상이겠다. ‘눈뜨고 도둑맞는 꼴’이다.
전주시상수도 맑은물공급사업소의 누수민원실(281-6942~5)에 ‘누수민원’이라 해서 알아보았다. 수도계량기 안쪽인 옥내는 시의 소관이 아니고, 건물주의 책임이라 했다. 개인이 운영하는 수도수리공사에 부탁해 수리하라는 안내뿐이었다.
그래서 주방을 비롯해 여러 수도 물을 쓰는 꼭지와 근처를 모두 샅샅이 살펴보아도 새는 곳을 찾지 못했다. ‘누수탐지기’가 있다는데! 할 수 없이 여러 누수탐지업체에 전화를 걸어 알아보았다. 물어본 곳곳마다 누수탐지비용이 약속이나 하듯 거의 일정액인 거액을 요구했다. 서민으로서 누수로 증가된 요금에 누수탐지비용이 거금 30만 원이라니 적지 않는 금액에 놀았다. 이를 두고 보이지 않은 도적이라 해야 할까?
광복직후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을 때가 있었다. 평야부의 들녘 논이라면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산골의 다랑이 논이다. 모내기를 하려면 논갈이를 해 놓고 물을 잡으면서 논두렁에 누수방지로 흙 붙이기가 큰일이었다. 언덕의 논두렁 가에 흙을 잘 이개서 붙여야만 논물이 새지 않기 때문이다. 산골 다랑이논일수록 일거리가 많았고 잘 해야만 했다. 참으로 모내기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모내기를 할 때 귀한 금비(金肥)를 했으니 끝난 뒤에도 논물이 새지는 않는가, 늘 아침저녁으로 살펴보아야 했다. 들쥐, 두더지, 두꺼비, 개구리, 뱀들이 논두렁에 구멍을 내기 때문이다.
더욱 농사철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논물이 쉽게 빠져 마르거나 언덕이 무너져 농사를 망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아침 일찍이 돌아보니 많은 비에 어느새 구멍이 뚫려 언덕이 무너져 버려 고생을 했다. 농사 손실은 물론 언덕을 다시 쌓으면서 많은 인부에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마을 한쪽 골짜기에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이는 일제 때 마을 몇몇 유지들이 마을 특별자금을 타내기 위해 임시로 만든 저수지라는 말을 들었다. 돈만 타고 수년간 마을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었다. 관리소홀로 제방에 어느새 작은 구멍이 뚫려 오랜 세월 새는 물 때문에 결국 그 제방이 무너져버렸다. 적은 수량에 작은 골짜기라 큰 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누수(漏水)라 하면 샐 루(漏), 물 수(水), 물이 샘. 또는 새어 나오는 물을 뜻한다. 흔히 누(루)자가 따른 낱말이 많다. 우리에게 그리 반갑잖은 낱말들이다. 특히 누전(漏電)은 생명의 위협에 화재와 금전적 피해를 주니 누수에 못지않은 누(漏)자 붙은 강도 같은 도적이다.
그 밖의 누액(漏液),누옥(漏屋),누혈(漏血).누습(漏濕),누설(漏泄),누락(漏落),누고(漏告),누호(漏戶),누적(漏籍),…등등, 낱말의 뜻을 되새겨보자! 누구나 좋은 느낌은 들지 않으나 삶에는 참고가 될 것 같다. 모두 인간사에 직 간접적으로 덕보다 손해를 끼친 경우가 더 많다.
이처럼 살다보면 전혀 모르게 순간적으로 일이 생긴다. 신체적, 정신적인 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이것쯤하고 방치하다 작은 일이나 병을 키워 목숨을 잃거나 경제적 손실을 보게 되는 때가 허다하다.
그 뿐이 아니라 우리 인생 주변에는 무관심으로 대인관계는 물론 정신적 재정적인 숨은 도적들이 도사리고 있어 많은 손실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물에 보다 세심한 관찰과 마음 쓰임이 필요하겠다. ‘말은 쉬워도 하기는 어렵다’가 문제다. 그래야 예기치 못한 잠재적 도적(누자 붙은 도적)들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이것도 하나의 교훈이랄까?(2016. 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