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
세밑에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생각납니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올해도 우물쭈물하다가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이맘때면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오래된 가요가 송년의 쓸쓸한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인생이란 원래 미완성인 채로 끝나는 것이라고요. 구약성경의 첫 다섯 권인 ‘모세오경’은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아들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을 약속하시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것을 가르치십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 갔던 아브라함의 후손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그 언약이 성취되는 첫 단계로 보입니다.
그런데 모세오경의 마지막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상태에서 끝나버립니다. 이들을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가나안을 바라보며 느보산에서 죽습니다. 그리고 후계자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정착하는 이야기는, 그다음 여호수아서에서 마무리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여호수아서까지 포함을 시켜 ‘모세육경’으로 만들면 좋았을 것 같은데, 왜 모세오경은 신명기에서 미완성인 채로 끝날까요?
제 생각에는 ‘인생은 미완성’이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간 것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죠. 이들이 거기서 지지고 볶고 살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시작이었으니까요. 우리 인생도 이런 것 같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이 끝이 아니라 구원의 시작인 것처럼요. 우리는 평생 교회 다니지만 언제나 철이 들지, 사실 잘 모릅니다. 아마도 죽는 순간, 우리가 그렇게 기다렸던 ‘성화(聖化)’가 이루어질까요. 우리는 세상 살면서 무엇이든지 완성을 꿈꾸지만 사실 완성이란 이 땅에서는 원래 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애초부터 인생이란 완성을 꿈꾸고 완성을 향해 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도록 섭리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는 노래 가사가 의미가 있습니다.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만 편지지만 그래도 곱게 써야 하고, 사랑은 미완성 부르다 만 노래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불러야 하고, 인생은 미완성 새기다 만 조각이지만 그래도 곱게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나는 미완성이지만 우리 주께서 완성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요! 올해도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수고하고 애썼지만 미완성으로 끝나는 모든 것들을 우리 주께서 다 완성시켜 주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24년 12월 29일 주일 주보에서)
첫댓글
연약하고 부족한 양들을 "성화되는 그날"까지
귀하신 말씀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목사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