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지 말아요, 그 뚜껑
조우연
뚜껑은
맨 마지막 말 같다
특히 바다라든지 이별에 관해 말할 때 뚜껑을 잘 닫아야 비로소 수평선에 노을도 눈부시고 안녕이 단단해진다
나무는 어둠의 뚜껑인 것을 어느 여름밤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던 날 알았다
할아버지가 그리우면 산사나무 뚜껑을 열고 지난하게 뻗은 그의 뿌리들을 훑어보곤 한다
어떤 감정의 마지막은 잘 닫히지도 않고
그믐이 지나고 날마다 조금씩 뚜껑이 열리고 주먹 하나쯤 우습게 들어갈 구멍이 머리 위에 생기면 누가 흔들기만 해도 다 쏟아질 것만 같던 것들, 예를 들어 생일, 저녁, 그리움, 바닷가 모래언덕, 불안, 자전거를 잡아주던 손, 소란, 식탁의 꽃병과 숨넘어가는 웃음소리들이 들썩인다
붉게 활짝 열린 슈퍼문(moon)으로 쏟아지는 감정들
꼬박 보름이 걸리고서야 다시 뚜껑이 닫힌다
뚜껑이란 말을 하면서 콜라병을 따본 적이 있다 그때 문득 열린 생각,
아버지가 갑자기 펑 하고 열렸을 때, 늘 침침하고 묵묵하던 아버지의 방안이 펑 하고 열렸을 때, 뚜껑이 죽을힘을 다해 닫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 맨홀 구멍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도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짐작은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뒤에야 쏟아지는 것들
뚜껑을 닫는데 보름보다 더 걸리기도 하고
주저하다 뚜껑을 잃어버리기도 하는데 그편이 나을 수도 있다
뚜껑은 맨 마지막 말 같아서
낙오되거나 새어나가는 기분이 없도록
남은 콜라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닫아야 한다
―《엽서詩》, 2023. 10월(이백열네 번째 엽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