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념사진은 69년경 내가 ‘농협’에 근무했던 청년시절의 제일 오래된 사진으로, 고향친구들과 어울려 진해해군헌병대에 근무한 조대권을 찾아가 찍힌 사진이다. 좌로부터 조문호, 조대권, 남영국, 윤상고, 이석중인데, 용케도 아직까지 모두 살아 남았다.
사진이 예술 하느라 기록을 우습게보지만, 개인적으로 그날을 기념한 기록보다 더 소중한 사진은 없을 것이다. 만드는 허구의 사진이 어찌 진실한 사진을 따를 수 있겠는가?
누구를 막론하고 가족의 일대기를 찍은 사진첩이 집에 한 두 권은 있을 것이다. 그 속에는 백일잔치사진에서부터 결혼과 회갑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고 보면 누가 찍었는지도 모를 작자 미상의 사진들이 사진첩에 쌓여가는데, 잘 찍고 못 찍고를 떠나 그 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체만으로 사진의 가치는 충분한 것이다.
한국사진사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제일 먼저 기록한 사진가는 전몽각 선생의 ‘윤미네 집’을 꼽을 수 있다, 딸 윤미가 태어나서부터 시집갈 때 까지를 기록한 것인데, 사진의 대상은 가까운 주변에서 찾아라는 오랜 가르침의 대표적 사례다.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자식이 어릴 때는 많이 찍지만 장성해 감에 따라 찍기를 포기하거나 소홀 하는 경우가 많다.
누가 찍던 간에 가족의 기록은 하나 둘 모여 훌륭한 가족사가 되는데, 나는 불행하게도 전쟁을 방불케 한 가정불화나 화재 등으로 사진첩을 모두 태워 개인의 역사를 잃어버렸다. 물론 20여 년 동안 정영신 동지가 찍은 모습이 그의 사진파일에 남아 있지만 오랜 옛 추억을 불러들이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일하게 책갈피나 서류 봉투에서 한 장 한 장 찾아 낸 사진이 20여장 있는데, 누가 찍었는지도 모르는 조그만 사진이지만 나에게 이보다 더 소중한 사진은 없다. 하나같이 추억이 새록새록한 그리운 장면으로, 이렇게 공개하다 보면 사진을 찍은 기록자는 물론 기억나지 않는 함께 찍힌 분의 이름까지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의 가치는 뭐라 해도 기록성에 있다. 사진판에 유독 사꾸라가 많은 것은 사진을 흑사리 쭉지로 보고 접근한 사진작가들이 많아서다.
글 / 조문호
78년 내가 운영한 부산 남포동 ‘한마당’주점에서 가진 정병순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찍힌사진이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앉은 자가 나고, 다섯 번째가 정병순이다. 한 평생 음악에 미처 살던 정병순은 14년 전 '부산일보'에 광안리에서 음악카페를 운영한다는 기사는 보얐는데, 그 이후의 근황은 오리무중이다. 이 장소에서 최민식 선생을 만나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다.
80년도 인사동 포장마차에서 찍은 기념사진이다. 좌로부터 고헌, 신희순, 유성준, 오종창, 조문호
81-2년 무렵 사진 같은데, ‘진우회’회원들이 바닷가에 놀러 간 기념사진이다. 오른쪽 첫 번째 있는 나는 아이스케키 통 같은 카메라 가방을 맨 전형적인 촌놈 스타일이다. 두 번째 정용선은 강남에 패션사진 스튜디오로 떼돈을 벌어, 이제 사진은 접고 시골 내려가 목각 작업에 빠져산다. 세 번째 유성준은 서부역 부근의 건물을 소유한 알부자지만 사진집은커녕 개인전 한 번 열지 않았는데, 서울 구석구석을 기록한 그 많은 사진의 앞 날이 걱정스럽다. 네 번째 민정진은 ‘한국일보’ 뒷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했는데, 지금은 소식이 끊겨버렸다. 지금쯤 손자들 재롱보며 잘 살고 있겠지...
85년 동아미술제 시상식에서 찍힌 사진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동아일보 김성열 사장으로 부터 상을 받는 얼어붙은 모습이 포착되었는데, 사진은 누가 찍어 주었을까?
86년도 무렵 ‘한국사협’ 회보 편집장으로 일할 때인데. 당시 사협이사장이었던 문선호선생 별장 앞에서 찍힌 사진이다. 오른쪽 첫번째가 김용복총무, 백현기 사무국장, 정운봉 부이사장,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직원들 어깨에 손을 걸친 이가 문선호이사장이다. 넥타이까지 걸치고 똥 폼 잡은 내 모습 또한 가관이다.
87년도 대학로 '여백갤러리'에서 열었던 ‘87민주항쟁’ 전시 보러 온 친구들과 찍힌 기념사진이다. 좌로부터 조문호. 화가 황성근, 한국일보 사진기자 김종구, 소설가 배평모
88년도 이명동선생의 출판기념회에서 찍힌 기념사진이다. 오른쪽부터 김녕만, 육명심, 최인진, 한정식, 이명동, 김기찬, 심상만, 이완교, 조문호다. 그 사이 이명동선생을 비롯한 다섯 분이나 돌아가셨다.
89년 무렵 인천 바닷가에서 찍힌 기념사진이다. 오른쪽부터 배평모, 조문호, 그 옆에 계신 분이 지금은 돌아가신 박이엽선생의 생전 모습이다. 좌측 꼬마가 지금은 장성한 배평모 아들 지훈이다.
90년도 ‘진우회’ 회원들이 소래포구로 촬영하러 가서 찍힌 식사 장면이다. 좌로부터 정동석, 윤재성, 송혜랑, 유성준, 선우인영인데, 지금은 장가가서 딸까지 낳은 아들 햇님이가 나 대신 앉아 있네.
95년 대학로 ‘코닥포토살롱’에서 전시한 ‘불교상징’전 개막식 사진이다. 좌로부터 하상일, 한사람 건너뛰어 김영수, 조문호, 이혜순, 지금은 돌아가신 홍순태선생과 임응식선생
97년도 '삼성카메라'에 계약직으로 일할 때의 기념사진인데, 그림 그리다 사진으로 전향한 문순우씨가 ‘삼성포토갤러리’를 찾아 와 찍혔다. 그 당시 그가 운영한 삼청동 작업실 겸 카페에 자주 놀러 갔었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소식이 끊겨 버렸다.
94년 인사동 초입에 ‘민사협’ 사무실 문을 열며 고사 지내는 사진이다. 당시 이사장을 맡은 홍순태선생과 중앙대 교수였던 임영균, 그리고 사무국장을 맡은 조문호만 나왔고, 실질적으로 끌어 간 김영수가 보이지 않는다.
먼저 사진과 같이 찍힌 사진으로 인물만 바뀌었다. 대구 양성철교수가 돼지머리에 지폐를 꽂고 있다.
96년 무렵 대학로 '아르코'에서 개최한 '민사협' 기획전을 찾은 회원들이다. 좌로부터 이갑철, 조문호, 김영수, 정인숙, 주명덕선생
‘두메산골사람들’을 찍었던 정선 만지산 집으로 한정식선생과 신옥씨가 방문했었다. 삼겹살을 굽기 위해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선 장면이 찍혔다.
2008년 마산의 한 카페에서 찍은 기념사진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가깝게 지낸 친구 정남규와 김의권이 함께해 더욱 애착이 간다. 마산에 사는 화가 이강용(오른쪽 첫 번째)의 모습도 보인다.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 곽명우씨가 찍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언제 누구 전시였는지도 모르겠고, 서 있는 두 분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앉아 있는 좌측 첫 번째부터 이완교, 주명덕, 육명심, 둘째 줄 좌로부터 한정식, 박영숙, 송영숙, 정범태, 이형록, 조문호, 뒤쪽에 강운구, 구본창, 황규태 선생이 서 계신다.
언제 찍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명동선생을 위한 오찬모임 후 찍힌 기념사진 같다. 좌로부터 육명심, 이완교, 조문호, 정영신, 차용부, 한정식선생
옛 '진우회' 회원이었던 고영준씨 아들 결혼식에 참석한 사진인들을 만나 인사동 거리에서 찍혔다. 좌로부터 유성준, 이혜순, 정용선, 김종신, 목길순,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한 사람 건너뛰어 하상일, 배창완, 조문호
첫댓글 과거를 회상할수 있는 사진은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되어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