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유래 1. 개인과 국가의 영광, 노벨상 노벨상은 최초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부문으로 나누어져 있다. 경제학상은 후에 추가되었다. 노벨상을 만들겠다는 노벨의 유언이 실현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노벨이 살아 있을 때 스톡홀름의 한 은행에 보관시켰던 유언장이 공개되자 스웨덴의 언론이 먼저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스웨덴의 각 신문들은 스웨덴의 재산을 온 세계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극히 비애국적인 일이라는 격렬한 비난의 기사를 실었다. 이 노벨상이 처음부터 국제적인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었고 세계 모든 학계의 관심과 신임을 얻기까지는 5-6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2. 노벨상의 내용 노벨상은 물리학, 화학, 생리 및 의학, 문학, 평화 등 5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1969년부터는 경제학상이 추가되었는데 노벨상 기금과는 별도의 것으로 스웨덴 국립은행의 기념사업으로 시작된 것이며, 스웨덴 과학아카데미가 전형을 맡고 있다. 전형에 있어서는 매년 약 2000건에 이르는 추천 의뢰가 이제까지의 노벨상 수상자, 전세계의 학자, 그 밖의 관계자에게 극비리에 보내지고 최종 전형은 비밀회의에서 신중한 검토와 조사로 이루어진다. 물리학상, 화학상은 스웨덴 과학아카데미, 생리 및 의학상은 스톡홀름의 카롤린의학연구소, 문학상은 스웨덴, 프랑스, 에스파냐의 아카데미, 평화상은 노르웨이국회가 선출한 5인위원회가 전형을 담당한다. 과학분야는 연구내용이 분화되어 최근에는 한 부문에 2, 3명의 수상자가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결정된 수상자에게는 수상식 약 1개월 전에 전보로 통지된다. 해에 따라서는 수상자가 없는 부문도 있는데, 이제까지 해당자가 가장 많이 나오지 않은 것은 평화상이다.
3. 수상식 수상식은 수도 스톡홀름의 콘서트홀에서 매년 12월 10일 오후 4시 30분 노벨이 작고한 날과 같은 시각에 거행되며,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수여장과 메달이 증정된다. 다만 평화상만은 같은 날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거행된다. 수여장의 디자인은 수상자 각자마다 다른데, 메달의 표면은 동일하여, 13캐럿의 금으로 노벨의 프로필이 부각되어 있다. 상금은 식의 다음날에 노벨재단에서 수여된다. 금액은 해에 따라 다른데, 1986년 1부문에 200만크로나(30만달러)였으며, 동일부문에서 복수 수상일 경우에는 분할된다. 이것은 세계에서도 고액의 상금이며, 수상자는 그후 6개월 이내에 수상 업적에 대한 강연을 할 의무가 있고, 강연 내용의 저작권은 노벨상기금이사회에 귀속된다. 노벨상 일가로 일컬어지는 퀴리집안에서는 퀴리 부부가 물리학상(1903), 퀴리부인이 화학상(1911), 딸 조리오 퀴리 부부가 화학상(1935)을 수상하였다. 부자가 동시에 수상한 것은 15년 물리학상의 헨리 브랙과 로렌스 브랙인데 팀을 짜서 연구한 결과였으며, 수여장의 디자인도 이들만은 같았다. 상이 수여된 업적도 반드시 그 사람을 대표하는 업적이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아인슈타인은 21년에 물리학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광전효과(光電效果) 연구에 대한 것이었고, 16년 전에 발표한 상대성이론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26년의 생리 및 의학상을 받은 피비게르처럼 수상 대상이었던 <기생충 발암설>이 뒤에 잘못이었음이 판명된 예도 있다. 근년에 와서는 평화상이나 문학상뿐만 아니라 자연과학부분에서도 정치적 문제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 부문에 3명까지 가능하며 공동연구자는 연장자가 수상하고 수학, 기상학, 천문학은 제외라는 규약과 함께 노벨상의 존재형태에 대한 재검토를 촉구하는 소리도 일어나고 있다. 1901년 이후 노벨상 역사에서 소련의 파스테르나크(1958, 문학상), 프랑스의 사르트르(1964, 문학상), 베트남의 레독토(1973, 평화상) 등 3사람이 수상을 사양한 일도 있다.
4. 노벨 본명은 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으며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은 1833년 스웨덴의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 트로스케에서 태어났다. 외가 쪽의 조상으로는 림프관에 대한 논문(1653경)으로 유명한 스웨덴 자연학자 올로프 루드벡이 있다. 건축가이며 발명가인 아버지 임마누엘 노벨의 셋째 아들이었던 노벨은 아주 가난했던 시절과 부유함을 만끽했던 시절을 번갈아 경험하며 자라났다. 풍족한 생활을 하던 노벨의 가정을 어느 날 아버지가 경영하는 공장에 화재가 일아나면서 기울기 시작했다. 결국 파산한 아버지는 노벨이 4세 되던 해에 가족을 남겨두고 러시아로 떠났다. 스웨덴에 남은 노벨의 형제들을 어머니 품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었다. 노벨이 9세가 되던 해에 노벨의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다시 공장을 일으키고 가족들을 러시아로 데려가 노벨에게 스웨덴의 고급 가정교사를 초빙하여 집에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노벨이 17세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미국과 프랑스에서 2년 동안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였다. 노벨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에서 형들과 함께 일하면서 새로운 제품과 기술 개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가 23세 되던 1856년, 러시아 군대에 전쟁 물자를 공급하던 아버지는 러시아가 크리미아 전쟁에서 패하자 또다시 파산하고 말았다. 노벨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러시아에 남겨두고 다시 스웨덴으로 떠났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노벨은 연구를 지속하여 1857년 가스계량기를, 1859년에는 액체계량기와 가압계 및 압력계의 조립에 관한 특허를 땄다. 1862년 마침내 노벨은 위험을 크게 줄인 첫 폭발물을 발명하는 데 성공했다. 니트로글리세린에 흑색 화학을 채운 작은 병을 넣고 거기에 도화선을 연결하는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도화선에 불을 붙이면 먼저 흑색 화약이 폭발하며 그 충격으로 둘레의 니트로글리세린을 폭발시키는 원리였다. 기폭장치인 뇌관이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광산이나 토목공사에서는 노벨이 만든 폭약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노벨은 1865년 스톡홀름 교외에 새 공장을 세우고 더 많은 화약을 판매하게 되었다. 성능이 훨씬 개선된 그의 화약은 건설공사의 증가와 함께 유럽 전역으로 팔려 나갔다. 이 때 부터 노벨은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세린은 작은 충격에도 폭발하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사고가 발생했다. 잇따라 일어난 사고로 노벨도 동생을 잃는 등 많은 희생자가 발생해 국제적 물의를 빚었다. 다시 연구를 시작한 노벨은 어느 날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섞는 방법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발명된 것이 매우 안전한 폭발물 다이너마이트였다. 1967년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특허 신청하고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노벨은 유럽에서 최고 갑부가 되었다. 그러나 노벨은 이 같은 성공에도 만족하지 않고 끊인 없는 연구를 계속했다. 1876년에는 보다 폭발력이 큰 다이너마이트 고무를 발명하였고 1887년에는 보다 폭발력이 큰 다이너마이트 고무를 발명하였고 1887년에는 200번 이상 실험을 한 끝에 연기 안 나는 화약을 발명하였다. 노벨이 1896년 2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그는 모두 355 종류의 발명 특허를 따냈던 것이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는 광산뿐만 아니라 군대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최초의 목적과는 다르게 군사목적으로도 사용된 다이너마이트는 현재 수류탄의 원조였다. 가볍고 휴대가 간편하며 살상력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벨은 정신적인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그는 평화주의자로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하길 바랬지만 결국에는 전쟁을 더욱 격렬하게 만들었다. 인도주의자이고 이상주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파괴적인 다이너마이트의 발명 때문에 생전의 그의 평가는 결코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한 그의 정신적인 고통에 기인하여 평생을 발명에 바친 노벨은 그의 엄청남 재산을 스웨덴 왕립아카데미에 기증하였다. 그는 이 돈으로 세계 인류복지를 위해 가장 공헌한 사람이나 과학 발전에 공이 큰 사람에게 상을 주라고 유언장을 남겼다. 그리하여 1901년부터 스웨덴 왕립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노벨상을 수여하게 되었다.
5. 니트로글리세린(Nitroglycerin) 분자식 C3H5(N3O)3. 삼질산글리세롤의 관용명. 니트로화합물은 아니지만 예부터 니트로글리세린의 이름으로 통하고 있다. 98% 질산, 98% 진한 황산, 23∼30% 발연황산을 혼합하여 만든 혼합산(질산 50:황산 50) 4∼5에 다이너마이트글리세롤(글리세롤 98.5% 이상, 비중 1.262 이상) 1의 비율로 안개모양으로 뿜어 넣고, 반응온도 10∼15℃에서 다음과 같이 에스테르화한다. 생성된 니트로글리세린은 산 위에 뜨므로 이것을 분리하여 물, 탄산나트륨수용액, 온수(40℃ 이하)로써 산·알칼리 성분을 씻어버리고 플란넬, 면포 등으로 여과한다. 이때 수분을 제거하기 위해 식염층을 통하게 할 때도 있다. 비중 1.6인 무색 또는 연한 황색 액체로서 결정은 불안정형과 안정형의 2형이 있는데, 녹는점은 각각 2.2℃,13.2℃이며, 생성열 84.6kcal/mol, 폭발열 1500kcal/㎏이다. 미량의 산 성분 존재에 의해 자연분해하는 경향이 있고, 열, 충격 등으로 쉽게 폭발한다. 특히 기포를 함유한 액체는 충격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하다. 7%의 니트로셀룰로오스(질소량 12% 전후)를 가해서 반죽하면, 젤라틴모양이 되는데 충격에 대해서 액체상태인 것보다 훨씬 둔감하므로 취급하기 쉽다. 이것은 솔다이너마이트라는 것으로서 다이너마이트류의 기본으로 되어 있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유독하여 피부에서 흡수되어 두통을 일으킨다.
6. 다이너마이트(Dynamite) 니트로글리세린을 함유한 폭약의 총칭. 다이너마이트라는 말은 <힘> <운동>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다이나미스(dinamis)>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다이너마이트에는 혼합다이너마이트와 니트로겔계(系)다이너마이트가 있는데 미국에서는 전자를, 유럽에서는 후자를 사용한다. 1846년 이탈리아의 소브레로에 의해서 니트로글리세린이 합성되었는데, 그 폭발위력이 그 때까지 사용되던 흑색화약에 비해서 매우 강하다는 것이 알려졌다. 64년 노벨은 불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간단하게 폭발하지 않는 니트로글리세린의 결점을 보완하여 확실하게 폭발시키는 방법으로서 뇌관(雷管)을 발명하였다. 니트로글리세린은 약간의 충격에도 폭발하는 매우 위험한 것으로, 이것을 규조토(硅藻土)에 흡수시켜 보다 안전한 규조토다이너마이트를 66년에 발명하였다. 규조토다이너마이트는 안전하기는 하지만 폭발위력이 니트로글리세린의 70% 정도로서 약하다는 문제점이 남아 있었다. 75년 노벨은 니트로글리세린과 질소량이 12%대인 니트로셀룰로오스를 혼합시키면 고무 또는 젤라틴모양의 덩어리가 되고, 이것이 규조토다이너마이트 보다 강력한 폭발력을 가진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것에 젤라틴다이너마이트(니트로겔)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럽에서는 이 니트로겔을 기본재료로 한 다이너마이트가 발전하였고, 니트로겔에 질산암모늄, 질산나트륨, 목분(木粉)·전분, 니트로화합물 등의 혼화제(混和劑)를 첨가한 다이너마이트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사용하지 않고, 니트로글리세린을 직접 혼화제와 섞은 혼합다이너마이트가 사용되고 있다. 스트레이트다이너마이트는 혼화제로서 질산나트륨과 목분 기타를 사용한 것이고, 암모니아다이너마이트는 그 밖에 질산암모늄을 사용한 것이다. 혼화제를 사용함으로써 다이너마이트의 제조비용을 낮추고 가소성(可塑性)을 증가시켜 취급을 용이하게 하고 폭발위력을 조절하여 열약화(劣弱化)를 억제하는 등의 이점을 얻을 수 있었다. 니트로겔 함량이 6∼20%인 것은 가루상태여서 가루다이너마이트라고 하며 20% 이상인 것은 아교 상태이기 때문에 교질(膠質)다이너마이트라고한다. 교질다이너마이트는 니트로겔을 혼화제와 한데 섞어 이겨서 봉상(棒狀)이 되게 하여 종이로 포장해서 만든다. 가루다이너마이트는 니트로겔을 혼화제와 혼합하여, 미리 만들어 놓은 종이통에 화약을 채워 넣고 입구를 막아서 만든다. 다이너마이트의 장점은 폭발위력이 크다는 점과, 폭발 때문에 생기는 가스가 깨끗하다는 점, 그리고 옆의 폭약꾸러미와 약간의 간격이 있어도 전폭(傳爆)시키는 순폭성(殉爆性)이 좋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까지 공업폭약의 왕좌를 지켜왔으나, 몇 가지 결점도 있다.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니트로셀룰로오스와 같은 질산에스테르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성에 문제가 있어 안정도시험이 법규로 의무화되어 있다. 또, 저장 중에 폭속(爆速)이 작아지는 열약화현상(劣弱化現象)이나, 어느 정도 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 사압현상(死壓現象)이 있다. 또한 니트로글리세린이 동결(凍結)되어서 위험한 상태가 되는 일도 있었으나, 현재는 니트로글리콜이 들어 있어 그런 염려는 없어졌다. 그러나 니트로글리콜이나니트로글리세린에는 독성이 있으며 니트로글리세린이 배어나올 위험이 있으므로 최근에는 질산암모늄 유제폭약(油劑爆藥)이나 함수(含水)폭약이 다이너마이트를 대체해 가고 있다. |앞으로 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