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란 천할 때에 고생을 같이 하던 아내,
또는 일찍 장가들어 여러 해 같이 살아온 아내란 뜻으로 쓰인다.
즉 처녀로 시집온 아내면 다 조강지처로 통할 수 있다. 조(糟)는 지게미, 강(糠)은 쌀겨다.
지게미와 쌀겨로 끼니를 이어가며 가난한 살림을 해 온 아내가 ‘조강지처(糟糠之妻)’인 것이다.
이 말은 후한 송홍(宋弘)에게서 나온 말이다.
후한 광무황제(光武皇帝)의 누이인 호양(湖陽)공주가 과부가 되었다.
광무제는 공주를 마땅한 사람에게 다시 시집을 보낼 생각으로 그녀의 의향을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녀는, “송홍 같은 사람이라면 남편으로 우러러보고 살 수 있겠지만,
그 밖에는 별로” 하고 송홍이 아니면 시집가지 않을 뜻을 밝혔다.
송홍은 후중하고 정직하기로 당시 알려진 사람으로,
광무제가 즉위하던 이듬해인 건무(建武) 2년에는 대사공(大司空)이란 대신의 지위에 있었다.
“누님의 의사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한 번 힘써 보지요”하고 약속을 한 광무는,
송홍이 마침 공무로 편전에 들어오자, 공주를 병풍 뒤에 숨겨두고 송홍과의 대화를 듣게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광무는 송홍에게 별다른 뜻이 없는 것처럼 이렇게 물었다.
“속담에 말하기를 ‘지위가 높아지면 친구를 바꾸고,
집이 부해지면 아내를 바꾼다’고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일인지?”
그러자 송홍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신은 ‘가난하고 천했을 때의 친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糟糠之妻)는 집에서 내보내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듣자 광무는 조용히 공주를 돌아보며,
“일이 틀린 것 같습니다”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부마도위가 되면, 공주가 정실부인으로 들어앉게 되므로 원 부인은 물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광무는 자기 누님을 시집보내기 위해 송홍의 의사를 무시하고 그의 본부인을 내치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사람이 아내를 내치고 자기를 맞아 줄 것으로 기대했다면,
공주의 욕심이 너무 자기 위주였던 것 같다.
광무가 그녀를 병풍 뒤에 숨게 한 것도 그녀의 그런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는 《후한서》송홍 전에 나와 있다.
-《고사성어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