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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17일(추수감사주일)
시편 71:1~13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소서!
하늘사랑교회 주일오전예배
본문 접맥 적 주제 설교형식
김규태 목사
*설교 주제: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설교 목적: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what’s problem?
밀레(Jean Francois Miller, 1814-1875)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그림에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이 그림은 프랑스의 국보와도 같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한 젊은 농부 내외가 일을 마치고 추수한 감자 바구니를 놓고 석양 속에서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보기만 해도 마음에 평안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그림은 너무나도 슬프고 불행한 그림이었습니다. 젊은 부부의 발 치에 놓인 감자 바구니는 원래는 아기의 관이었다고 합니다. 이 부부는 자기의 죽은 아기를 땅에 묻기 직전에 마지막 기도를 드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본래는 무섭고 암울한 그림인데, 우리는 이 그림을 평안하고 충만한 그림으로 봅니다. 그림의 내용이나 톤 전체를 바꾼 것이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 관을 감자 바구니로 바꾸었더니 이렇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된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비슷합니다. 우리 인생이 복잡해 보여도 시선 하나만 바꾸면 간단하게 풀릴 수 있습니다. 신앙은 곧 시선 싸움입니다. 단기적인 시선에서는 손해지만 장기적인 시선으로는 얼마든지 승리와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출처: 안호성, 「풀림」(규장, 2020);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2년 4월호), 145쪽에서 재인용.
우리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억울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축복 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낙심할 상황에 놓일 때, 믿음의 시선을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에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혹 여러분은 누구를 바라보고 계십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71편은 고난을 겪고 있는 한 노인의 기도입니다. 노년의 때는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노쇠를 경험하고, 정신적으로도 쇠락을 경험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이들이 하나둘씩 자기 곁을 떠나고, 이제 머지않아 자신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인생에 대해 허무한 마음을 갖기 쉬울 때입니다.
더구나 노년의 때에는 다른 사람에게 수치를 당하는 경험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일생 올곧고 정직하게 산 사람이 억울하게 비난을 받는다면,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시인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경외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적자들은 시인을 넘어뜨리기 위해 거짓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다.”
“이제 하나님은 너를 떠나셨고, 너의 기도에 더는 응답하지 않는다.”
이러한 비난이 시인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시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이들은 교회 밖 사람들이 아니라, 교회 안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에 속한 이들은 시인이 당하는 고난을 보면서 격려하고 위로하기보다는 그것을 “이상한 징조같이” 여겼습니다(7절).
여기서 “이상한 징조같이” 여겼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신앙 공동체는 시인이 당하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습니다. 시인이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심판하고 계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 공동체의 오해는 시인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남겼을 것입니다.
춘천에서 만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정원섭 씨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1973년, 강간살해사건 범인으로 지목되었습니다. 당시 파출소장의 아홉 살 난 딸이 논둑에서 성폭행을 당한 후에 살해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그 일의 가해자로 지목된 것입니다. 그는 경찰의 가혹 행위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거짓 자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분은 무기수로 복역하다가 모범수로 20년 감형을 받았습니다. 이후 15년 7개월 8일을 복역하고, 1987년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성탄절 특사로 가석방되었다. 그 후로 그는 20년 동안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벌였습니다. 결국, 2008년 11월 28일, 36년 만에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28억 원의 국가 보상금을 받았지만, 잃은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사이 아내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치매로 병원에 있어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의 충격으로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자식 4남매도 주위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고향에서 살지도 못하고 뿔뿔이 흩어져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출처: 김병태, 「하나님의 퍼즐」(브니엘, 2014);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4년 8월호), 205쪽에서 재인용.
만일 여러분이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면 얼마나 낙심하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이러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21살 꽃다운 나이의 큰아들을 잃은 목사님이 계십니다. 더구나 이 아들은 교회 캠프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해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캠프에 참여했던 청년들이 아들의 죽음에 부담이 느껴졌는지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목사 아들이 교회 캠프에 가서 죽느냐?”라며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에 목사님의 마음은 더 무너졌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한마디를 하면 열 마디가 돌아왔습니다. 만일 여러분 같으면 이러한 고난의 때를 어떻게 이겨나갈 수 있겠습니까?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출처: 윤호용, 「알레스카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토기장이, 2023); 「생명의 삶」(두란노, 2024년 11월호), 33쪽에서 재인용.
what?
그런데 어두운 교회당일수록 기도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우리가 누구를 신뢰하고 있는지를 드러내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냈던 이어령 박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이 어렸을 적에 자기 집 처마 밑에 제비가 살았다고 합니다. 따뜻한 봄날 제비가 날아와서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고, 벌레 먹이를 주며 살다가 가을이면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늘을 나는 새들은 엽총을 쏘아서라도 잡아서 먹었는데, 제비에게는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참새도 잡아서 구워 먹었는데 왜 제비는 손에 잡히는 위치에 있어도, 그물 총으로 잡을 수 있는데도 잡지 않았을까요? 제비는 인간을 믿고 자기를 맡기기 때문입니다. 제비는 인간에게 자신을 통째로 맡깁니다.
제비는 대체 어떤 담력을 가졌기에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웁니까? 어떤 새가 그렇게 합니까? 인간을 믿을 때가 가능합니다. 야생 동물도 다리를 다쳐 인간에게 다가오면 잡지 않고 치료해 줍니다. 믿을 때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로 제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시 84:3~4)
시편 기자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집에 집을 짓고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바쁜 와중에도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마치 제비가 처마 밑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제비가 처마 밑에 보금자리를 짓고 사는 것은 곧 집주인이 ‘내가 너를 책임져 준다’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제비 새끼가 둥지에서 떨어지면 집주인은 어떻게 합니까? 다친 부위를 치료한 후 다시 둥지에 올려 줍니다.
-출처: 최병락, 「신의 성품」(두란노, 2024);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4년 10월호), 207쪽에서 재인용.
시인은 어렸을 때부터 주를 신뢰했습니다. 그는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고, 자기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시인은 늙을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고,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요청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인의 신앙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일생 하나님을 의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도 하나님을 신뢰했고, 노년이 된 지금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자기 영혼을 대적하는 자들이 오히려 수치와 멸망을 당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
성도가 두려워해야 할 일은 원수의 공격과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해받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도는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일을 가장 두려워해야 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오.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5절).”
우리가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이 우리의 소망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비록 내가 늙을 때라도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내 힘이 쇠약할 때도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how?
춘천에서 만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정원섭 씨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습니다. 다행히 그가 모범수로서 감형을 받아 15년을 복역하고 출소했지만, 이분의 마음속에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변화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 안에 있을 때 김재준 목사를 만나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감옥 안에서 통신신학을 통해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를 살린 말씀이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억울한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달랐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진실을 알아주고 갚아 주실 분은 하나님뿐이다. 나는 감사한다. 이 억울한 일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어찌 예수님을 만나 목사가 될 수 있었겠는가?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감사할 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왜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왜 속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가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억울한 고난 속에서도 감춰진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되었습니다.
-출처: 김병태, 「하나님의 퍼즐」(브니엘, 2014); 「생명의 삶 플러스」(두란노, 2024년 8월호), 205쪽에서 재인용.
여러분은 교회 캠프에서 사로고 큰아들을 잃은 목사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도 견디기 힘들었지만, 아들의 죽음에 대한 부담감으로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는 성도를 보며 이 목사님은 더 큰 좌절감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더구나 “어떻게 목사 아들이 죽어?”라며 수군거리는 세상 사람들의 소리를 견디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침묵의 해를 선포하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이 분은 사람의 동정이 아닌 주님의 은혜만 구하고, 주님과 독대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고 합니다.
길고 긴 고통 속에서, 이 목사님은 비로소 “왜?”라는 질문이 원망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겨 주신 아들 하나에 감사했고, 데려가신 아들 하나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눈물과 탄식의 시간을 보내며 이 분은 마침내 감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단 위에서 아들 잃은 자기의 슬픔과 고통의 무게를 고백하고, 그것이 부활의 기쁨과 감격스러운 승리로 전환되었음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성도들의 상한 마음이 치유되는 기적을 맛보게 해 주셨습니다.
-출처: 윤호용, 「알레스카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다」(토기장이, 2023); 「생명의 삶」(두란노, 2024년 11월호), 33쪽에서 재인용.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어른이 된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환경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과연 우리에게 고난이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대적이 우리 눈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내가 간절히 원하는 그 일이 나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까? 만약 이러한 일들 때문에 우리가 감사한다면, 우리의 감사는 조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께 감사와 찬양을 돌려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비록 늙어 내 힘이 쇠약할 때에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정 어린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