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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니온에서(2월 9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14:1-7(신약 212)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듭니다.
무심코 들은 비난의 말 한마디가 잠 못 이루게 하고
정 담아 들려주는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기쁘게 합니다.
부주의한 말 한 마디가 파괴의 씨가 되어 절망에 기름을 붓고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소망의 뿌리가 되어 열정에 불씨를 당깁니다.
진실한 말 한 마디가 불신의 어둠을 거두어 가고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상한 마음 아물게 하며
전하지 못한 말 한 마디가 평생 후회하는 삶을 만들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는 마음에서 태어나 마음에서 씨를 뿌리고 생활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들고 말 한 마디에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러나 긴 인생이 짧은 말 한마디의 철조망에 갇혀서는 아니 됩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선교 사역을 하던 바울과 바나바는 핍박과 박해로 인해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서 이고니온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이고니온은 헬라인에 의하여 도시국가로 변형되었는데 비옥한 고원지대에 형성된 도시입니다. 이곳은 당시 루가오니아의 수도였으며 로마로부터 자유로운 도시였으나 하드리안 황제에 의해 식민지화되었습니다.
현재의 터키의 중요한 상업도시로 '코냐'(Konya)라 불리어지는 도시입니다. 이곳에도 역시 비시디아 안디옥처럼 유대인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회당을 중심으로 하여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이곳에서도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회당을 중심으로 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이고니온 선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통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1. 이고니온으로 옮겨갔습니다.
바울 일행은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핍박을 받으며 쫓겨나서 이고니온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위해서 일하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의 사역은 계속해서 반대를 받고 박해를 당하고 시련을 겪어야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 믿으면 복 받는다고 생각하고 예수님 믿고 복 받으세요. 라고 전도하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가 예수님 믿으면 모든 것이 형통한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형통하고 복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핍박을 받고 계속해서 쫓겨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일까요?
복음이 확산 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탄의 방해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바울 사도뿐만 아니라 베드로 사도도 그의 사역을 통해서 수없이 많은 사탄의 방해를 경험했습니다. 따라서 사도들은 사탄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심지어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서 6장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합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크면 클수록 사탄의 방해는 언제나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려고 할 때 항상 형통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여러 가지 공격과 방해가 있습니다.
성도들의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질병에 걸리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들이 오는 것은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의 현장에 나타난 사탄의 방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가정에 문제가 생기고 질병에 걸리고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을 방해하기 위한 사탄의 계략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탄의 방해가 클수록 하나님의 성령도 강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사탄의 방해를 받으면서도 믿음을 굳건하게 지키면 성령님께서 더 강한 능력으로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물리치게 하십니다.
우리는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그런 사탄의 방해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사탄의 방해를 물리치고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사업체나 직장에서 어려움이 있다면 사탄은 지금 우리들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탄은 핍박하지도 않고 어려움을 겪게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 같다고 판단될 때 사탄은 반드시 방해합니다.
지금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있다면 이 어려움은 하나님이 주실 큰 복을 받을 때가 되었다는 증거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기도로 사탄의 모든 방해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믿음이 되고 마침내 우리의 삶에 임할 큰 축복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놀랍게 쓰임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핍박은 하나님의 기회입니다. 사탄이 핍박을 하고 복음을 반대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키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 때에 핍박과 박해와 시련을 겪는다 해도 그것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중단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시련과 핍박을 복음의 기회로 삼으시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기회로 삼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사역에서 핍박과 박해를 통해서 다른 지역으로 복음이 계속해서 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박해를 받으므로 복음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박해를 받지만 복음은 더 빠른 속도로 더 넓게 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적으로 하나님께서 빨리 더 많은 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핍박을 사용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시련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더 빨리 더 많이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시련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급하게 역사하시기 위함인 줄로 믿습니다.
어려움이 온다는 것은 새로운 하나님의 역사를 위한 준비 단계입니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는 증거입니다. 짙은 어둠과 같이 어려움이 나를 뒤덮고 있는 것은 곧 하나님의 역사의 때가 다가온다는 징조인 것을 믿고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핍박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을 통해서 많은 핍박과 시련을 겪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낙심하고 좌절하지 않고 다른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핍박도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핍박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어려움이 있고 왜 우리 가정에만 이런 어려움을 주십니까? 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핍박과 시련과 어려움도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고 모든 것을 이길 수 있습니다.
시련도 어려움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야고보서 5장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욥이 시련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처음에 받은 복의 배가 되는 복을 주셨습니다. 어려움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어려움을 통해서 더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을 기대하는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이고니온에서의 사역
바울 사도는 선교지에서 안식일에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고니온에서도 회당에서 사역이 시작됐습니다. 1절을 보면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바울과 바나바는 다른 곳에서처럼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였고 그 결과 일부의 유대인들과 헬라의 수다한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성도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은 회당을 선교의 중요한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회당 중심의 선교사역을 시작하는 것은 바울의 사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다른 사도의 선교 사역에 대한 기록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 등과 같은 사도들이 이방지역에서 어떻게 사역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에서의 베드로와 요한의 사역과 고넬료 가정에서의 사역 등을 볼 때 베드로의 이방 선교는 바울의 회당 중심의 사역과 같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서 모든 사람에게 다 같은 방법 즉 획일적인 방법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들을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어떤 방법이든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우리 각자의 받은 달란트에 따라서 쓰임 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회당을 중심으로 사역을 시작한 바울의 사역에 점점 더 강하게 가해지는 박해를 보게 됩니다.
2절을 보면 “그러나 순종하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
5절을 보면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바울의 선교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흩어진 유대인들은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이고 조직적으로 바울의 사역을 방해하고 박해를 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가해지는 박해 속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를 포기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곳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곳에는 박해가 늘 따라다니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아무런 시련과 어려움도 없이 항상 형통하게 복될 것을 기대하지만 사탄은 우리가 형통하고 복되게 살아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일이 잘 되고 형통할 때 더 영적으로 강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결코 믿음과 신앙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 선교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편안하게 신앙생활하고 있지만 오늘날도 선교를 위해서 순교를 각오한 선교사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선교사님들의 선교가 중단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해야 합니다.
3. 표적과 기사로 증거했습니다.
이렇게 핍박과 박해가 조직적으로 가해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선교를 계속하게 하셨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3절을 보면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바울의 사역에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처럼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서도 같은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을 보면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사역이 핍박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사역 위에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미문에 앉아 있던 나면서부터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을 치유하신 사건으로 인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 서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공회에서 풀려난 뒤에 예루살렘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을 보면
행 4:29-30
4:29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4: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초대교회는 핍박과 시련의 상황에서도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을 드러내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바울의 사역에서 그런 역사가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중에서도 시련과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직접 임재하시고 역사하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오늘도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나타남으로 담대히 선포 했습니다. 3절을 다시 보면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시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은 그들이 담대하게 주님을 힘입어 말씀을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과 바나바는 핍박을 당하는 상황이고 무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할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선포할 때 두려움이 있고 염려가 있습니다. 선포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과 염려가 있습니다. 실제로 담대하게 선포했지만 성취되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선포하는 것을 주저하게 되고 적당히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과 바나바는 주저하거나 염려한 것이 아니라 담대하게 선포했고 그렇게 담대하게 선포하는 가운데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했다는 것은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할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순수하게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통해서 나타난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말씀을 증거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주시는 것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증거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표적과 기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 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곳에서 계속되는 박해로 인해서 떠나서 다음 선교지로 가게 됩니다. 4-7절까지를 보면
14:4 “그 시내의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따르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따르는 자도 있는지라”
14:5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리들이 두 사도를 모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14:6 “그들이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14:7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
핍박과 박해가 있다고 선교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지역으로 선교의 지평이 넓혀지는 것입니다. 우리 찬송가 373장 2절을 가사를 보면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시련의 풍랑은 쉬지 못하고 힘든 과정이지만 오히려 더 빨리 더 많은 곳으로 복음이 넓게 퍼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큰 풍랑과 같은 시련은 하나님의 역사를 더 빨리 이루시기 위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큰 시련과 풍랑 속에서 더 크고 놀라운 주님의 임재와 주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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