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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 //www.youtube.com/watch?v=gdDyxWrIhPs
미라보 다리 이름의 탄생은
프랑스혁명 당시
유창한 말솜씨와 박식함으로
평민의 대표가 되었던 귀족
'미라보 백작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Honoré Gabriel Riqueti,
Comte de Mirabea)'의
이름을 딴 다리이다.
그래서일까, 미라보 다리에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4개의 청동상들이 있다.
각각 '파리의 시 La ville de Paris',
'상업 commerce',
'항해 La navigation',
'풍요로움 L'abondance'의
의미를 갖고 있어
파리 시민의 자유와 평등의
기원이 담긴 다리임을 알 수 있다.
또 파리 시의 공식 마크와
미라보 시비도 있다.
오늘 시는 누구나 한 번쯤 흥얼거리곤 하는 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이다. 어릴 적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면, 나는 도대체 저 아름다운 시를 누가 쓴 것일까 궁금했다. 이 시가 유명해서 곧 이 시를 쓴 사람이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라는 것을 알았지만 나에게 프랑스어 이름은 귀에 익숙지 않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 말라르메, 베를렌느, 랭보 등 이름은 내가 읽은 많은 문학책에 등장해서 익숙하지만, 나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를 이 시의 작가로만 기억한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 ~1918)
프랑스 시인, 평론가. 로마에서 출생, 파리에서 사망. 『Alcools』(1913), 『Calligrammes』(1918) 등의 시집으로 알려졌고, 20세기 초 전위 미술 이론가로도 큰 역할을 하였다. 피카소의 친구이고, 『큐비즘 화가, 미학적 사유(Les peintres Cubistes, Meditations Esthetiques)』(1913)라는 저서가 있다. 1917년 희곡 『티레지아의 유방(Mamelles de Tiresias)』에서 쉬르레알리슴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후일 앙드레 브르통 등이 이 용어를 채택한 것은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미술 대사전, 인명 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기욤 아폴리네르(번역: 민희식 교수)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강이 흐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이
아 추억해야만 하는가 그 사랑을
기쁨은 언제나 고통 후에 왔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만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서 얼굴을 마주 보자
우리들의 팔의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얼마나 인생은 느리고
또 희망은 얼마나 강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가버린 시간도
옛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 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이 시는 아폴리네르(Apollinaire) 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시이며, 화가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과의 이별 후 실연의 아픔을 쓴 시이다. 친구 피카소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의 사랑과 결별 후,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실연을 노래한 시가 탄생한 것이다. 나는 독일 작가 괴테(Goethe)가 사랑하고 이별할 때마다 명작이 탄생했다고 배웠다. 사실, 괴테(Goethe)의 사랑과 이별은 대체로 작가가 여성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흐르는 강물처럼 ~ 날이 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 가버린 시간도 / 옛사랑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처럼 한번 가버린 사랑은 다시 오지 않는다고 노래하며, 현명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시인의 성숙한 모습이 나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지금은 사랑을 추억해야만 하는 고통을 느끼지만, 시인은 그 고통을 감내하면 기쁨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기쁨은 언제나 고통 후에 왔다' 그리고 밤이 오고, '세월은 흐르고 나만 남는다'. 사랑과 이별은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의 창작의 주요 소재가 된다. 사랑과 이별은 인간에게 다양한 감정을 겪게 하고, 이별을 경험한 인간은 내면이 성숙해지고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생긴다.
감성이 풍부한 사춘기에 이 시를 알게 되면, 누구나 이 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와 어울리며 내가 좋아하는 멋진 음악 '파리의 하늘 아래'를 들어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pPrkXSytxJA
미라보 다리 아래서 센 강은 흐르고...
시인과 화가의 사랑을 생각하다
파리 미라보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
파리가 사랑스러운 서른세 가지 이유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도시를 관통하며 유유히 흐르는 저 센강을 말할 수 있겠다.
황혼 녘 센 강가에 앉아 노트르담 종소리를 듣던 그 순간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들 중에 하나였으니까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파리의 센 강에는 서른여섯 개의 다리가 있다.
1578년에 지어진 가장 오래된 퐁뇌프부터
1900년대 파리 만국 박람회 때 세워진 알렉산드로 3세 다리,
루브르와 오르세를 연결해 주는 긴요하고 매력적인 퐁 데 자르(예술의 다리)까지...
다리마다 저마다의 색깔과 숱한 이야기들이 켜켜이 새겨 있으리라.
내가 사랑한 파리의 다리들
사실 내게는 그 수치적인 기록들보다 오래된 낭만적인 이야기들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영화 ‘퐁뇌프의 연인들’에서 두 남녀가 온전히 하나가 되어 즐기던 퐁 뇌프에서의 불꽃놀이 장면,
내 인생 최애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에서 비 오는 날 밤 알렉산드로 3세 다리 위에 가브리엘과 길의 조우 장면,
세상 수많은 연인들이 주렁주렁 사랑의 흔적을 매달아 놓았던 예술의 다리로 말이다.
그렇게 기억에 낭만을 하나 더 얹고 싶어 진다.
동쪽과 서쪽의 간극을 이어주듯, 평행선을 그으며 전혀 맞닿을 수 없을 거 같은 남과 여를 이어주는 그 매개체로...
지금은 흔적이 없어진 예술의 다리 위의 자물쇠들,
그리고 해질녘의 세느강가
그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다리는 단연 '미라보 다리'다.
파리 시내 서쪽 끄트머리 외딴 곳에 있고 수많은 연인들의 마음에 작대기를 그어주는 그 다리...
19세기 파리에서 활동했던 기욤 아폴리네르의 명시 '미라보 다리'로 인해
이 낡은 다리가 파리의 여느 그것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나는 여유있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시간을 허비하며 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한 말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이 시간!
빛바랜 올리브 그린색의 미라보 다리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걷노라면 올리브 그린색의 다리가 군데군데 바래고 녹이 슬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미라보 다리에서 에펠탑을 관망하는 그 순간만큼은 적어도 시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난다.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이 한눈에 보이는 스폿 |
1900년, 프랑스 파리의 만국박람회장(벨 에포크, Belle Époque) |
1907년,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27세의 기욤 아폴리네르는 파블로 피카소의 소개로 마리 로랑생을 처음 만났다.
마리 로랑생은 여성이 활동하기 어려웠던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유럽사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 시대에 숱한 예술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뛰어난 화가이다. 그녀는 시인의 여자 친구가 되어 연인으로, 예술적 동지로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그녀의 파스텔톤의 자화상을 봤을 때 색감이 주는 황홀감에 눈을 뗄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마리 로랑생 그림 앞에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19세기 파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핫한 도시였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불나방처럼 파리로 파리로 몰려들었다.
그때 젊고 유망한 예술가들은 몽마르트르에 둥지를 틀고 서로 친밀한 교류를 하며 예술의 꽃을 피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항상 이 ‘벨 에포크’ 시대를 동경해 왔다.
그래서인지 젊고 아름다운 화가와 유능한 시인의 만남이 내게도 영감을 준다.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고 지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사며 기욤과 마리는 열정적인 사랑을 했다.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들(Apollinaire et ses amis), oil on canvas, Paris
사랑이라는 감정은 원체 소나기 같아서 그 감정이 찰나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그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사랑도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으로 결국 종지부를 찍는다.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 도난 사건에 연루된 이유로 마리는 이 시인에게 결별선언을 하게 된 것이다.
기욤 아폴리네르가 시를 쓸 무렵엔 미라보 다리 인근에 살았기에 매일같이 이 다리를 지나쳐 갔을 것이다.
시, '미라보 다리'는 사랑하는 연인이었던 화가 마리 로랑생과 이별 후 쓴 시로 유명하다.
모나리자
1911년 모나리자의 도난은
아르헨티나의 사기꾼 발피에르노의 사주를 받은 이탈리아인 빈첸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그는 그 전년에 도난을 막기 위해 그림 주위에 설치한 유리벽을 시공한 작업부이기도 했다.
프랑스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시인 아폴리네르와 그의 친구인 화가 피카소가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고.
웃기게도 아폴리네르가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당하자 피카소를 덩달아 지목했다.
이게 친구냐고 한탄할 수도 있겠지만 피카소 역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절친한 친구였던 아폴리네르를 "나는 그런 사람 모른다"고 잡아뗐으니 참으로 유유상종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며칠만에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젊은 마리 로랑생
기욤 아폴리네르
오늘은 왠지 미라보 다리 아래가 생각나는 하루다.
사랑도 기억도 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때론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필요하다.
시인의 말처럼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지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겨날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것도 괜찮다. 이른 봄 새벽 다리 위에 핀 아지랑이처럼, 희미하지만 확실한 마음의 소리를 듣는 날엔 마음의 키가 한 뼘 더 자라난 기분이 든다.
미라보 다리 아래서...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간다
내 마음속 깊이 기억하리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보자
우리의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의 나른한 물결이
흘러가는 동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사랑은 지나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이처럼 인생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프랑스 시인
두 사람이 미라보 다리에서 만난 까닭은
이번 편지는 파리에서 띄웁니다. 저는 지금 프랑스 최대 문학 행사인 ‘시인들의 봄(Printemps des Poètes, 3월 11~27일)’ 축제에 와 있습니다. 지난 월요일부터 벌써 5일째군요. 한국시인협회와 프랑스시인협회의 상호협력 협약 체결, ‘시와 함께하는 한국-프랑스 우정의 밤’, 현대시 강연, 시낭송축제 등을 파리와 마르세유에서 7박 9일간 이어가는 중입니다. 이 축제엔 한국 시인 2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
시인의 눈길이 머물렀던 바로 그 자리
어제는 짬을 내 미라보 다리를 찾았지요. 20년 전 파리에서 1년간 생활할 때 자주 걷던 곳입니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센 강의 물무늬가 은어 떼처럼 싱그럽군요. 수면에 비친 하늘은 비취색. 그 유명한 이름에 비하면 너무 평범해서 실망스러운 미라보 다리!
이 다리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곳도 아닙니다. 그냥 무표정하게 서 있는 철제 구조물일 뿐이죠. 하지만 한 시인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 가슴에 영원한 울림을 주는 명작의 무대입니다.
미라보 다리의 몸체는 연녹색이지요. 섬세한 문양의 금속 난간과 아치가 풀잎을 닮았습니다. 우아한 필기체의 문자 디자인이 다리 전체를 감싸고 있네요. 2개의 기둥에는 상류와 하류 쪽에 각각 하나씩 모두 4개의 여신상이 조각돼 있습니다.
에펠탑에서 센 강 하류 쪽으로 세 번째 놓여 있는 이 다리는 자유의 여신상과 마주 보고 있지요. 1895년에 완공됐으니 이탈리아 로마 태생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가 열아홉 나이로 파리에 입성하기 4년 전에 생겼습니다. 다리의 서쪽 끝에는 작은 명판과 ‘미라보 다리’를 새긴 시비가 붙어 있죠.
파리 시의 공식 마크
다리의 서쪽 끝에는 작은 명판에
'미라보 다리'를 새긴 시비가 붙어 있다.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앉은 청동 시비 앞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오래도록 생각합니다. 척박한 이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인가. 시간의 물굽이를 오르내리며 이렇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다리의 의미는 또 어떤 것인가.
다리는 강의 이쪽 언덕과 저쪽 언덕을 연결하는 물리적 교량이며, 현실과 꿈을 이어주는 정신의 가교이기도 하죠. 많은 사람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목. 다리는 사랑과 이별의 접점이며 희망과 좌절의 변곡점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피안의 세계가 거기에 있지요. 이곳은 소멸과 부활의 명암이 교차하는 길이자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영혼의 통로입니다.
그 옛날 아폴리네르도 이곳에서 한동안 걸음을 멈추고 사색에 잠겼겠죠? 그의 눈길이 머물렀던 자리, 그가 서서 바라보던 강물, 그가 시를 썼던 장소를 순례하는 발길이 성스럽습니다.
미라보 다리 동쪽에 여행자들이 자주 들르는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이름은 ‘레갈리아(Légalia)’. 100여 년간 한자리에서 미라보 다리와 시인의 팬들을 지켜본 일종의 주막이라고 할까요.
20년 전에 자주 들렀던 곳입니다. 당시 중년의 카페 주인은 아폴리네르를 너무 좋아한다며 그의 시를 줄줄 외웠지요. 손님이 많아서 한가할 틈이 없어 보이는데도 짬만 나면 그 얘기였습니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그의 친구도 다리 건너편에서 일부러 건너와 자벨 역이나 앙드레 시트로엥 역에서 전철을 탄다면서 끼어들었죠. 다리를 건너는 동안 강의 양안처럼 생활의 양면을 돌아보게 된다는 설명까지 곁들였습니다. 이곳 주변은 지금도 변한 게 별로 없습니다.
‘모나리자 도난 사건’ 때문에 실연당해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 건너 센 강 서쪽(파리 16구)의 그로 거리에서 한 시절을 보냈지요. 연인 마리 로랑생(1883~1956)의 집이 그 부근에 있었습니다. 마리 로랑생은 파스텔톤의 맑은 수채화를 많이 그린 화가로, 둘은 전위적인 화가와 시인들이 모여들던 몽마르트르의 낡은 목조건물 바토-라부아르(Bateau-Lavoir)에서 피카소의 소개로 만났죠. 1907년이었으니 아폴리네르가 27세, 로랑생이 24세 때였습니다.
사생아라는 공통점을 지닌 두 사람은 금방 사랑에 빠졌고 문학과 예술의 동반자로 서로의 삶에 큰 영향을 주었지요. 아폴리네르는 시칠리아인 퇴역 장교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어머니의 비밀 연애 끝에 태어났고, 로랑생은 귀족 출신 아버지와 하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앙리 루소,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
스위스 바젤미술관
피카소가 앙리 루소를 발굴(?)한다.
20대의 피카소가
단골 골동품 가게에서
헐값에 팔고 있는 앙리 루소의 그림
'한 여인의 초상'을 구입하고
이 그림에 너무 감동하여
앙리 루소를 초대해
파티를 열어 주었단다.
이때 앙리 루이는 60대.
20대의 피카소는
이미 당시 유럽의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스타였고,
첫 그림 구매 이후
앙리 루소의 그림을 많이 수집하였단다.
이들은 앙리 루소의 그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로 잘 어울렸죠. 루소의 그림에는 ‘시의 여신’인 로랑생이 아폴리네르에게 영감을 주는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엉뚱한 사건이 닥치지요. 1911년 유럽을 떠들썩하게 한 ‘모나리자’ 도난 사건입니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에서 누가 이 작품을 빼돌렸는데 범인이 이탈리아 남자라는 소문이 나돌았죠.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인이란 이유로 용의선상에 올라 1주일간 구금됐다가 친구들의 탄원으로 겨우 풀려났습니다. 이 어이없는 사건으로 연인 사이에 틈이 생기고 말았지요.
아폴리네르는 생미셸 광장의 옥탑방에 있는 친구 샤갈을 찾아가 신세 한탄을 하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해 뜰 무렵 집에 가려고 미라보 다리를 건넜습니다. 햇살을 받은 센 강의 물결은 눈부신데 도둑으로 오인받고 애인한테 버림까지 받은 자신이 한탄스럽기만 했죠. 이렇게 가슴 아픈 이별의 회한을 담아 쓴 시가 ‘미라보 다리’입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한 세기가 지났군요. 그날 이후 ‘흘러간 시간도/ 옛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말없이 흐르고만 있습니다. 그 명작의 무대에서 맛보는 봄날의 여유. 미라보 다리 너머 멀어져가는 연인들의 뒷모습이 참 어여쁘군요. 저만치 자유의 여신상 이마에 내려앉는 햇살도 갓난아기 발뒤꿈치처럼 발갛습니다.
고두현 시인 / 한국경제
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른다
기억해야 하랴
기쁨은 항상 슬픔 뒤에 오던 것을
해는 저물어 종이 울린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 하자
팔을 낀 다리 밑으로
영원한 눈길을 한 물결은
지쳐 흐르는데
해는 저물어 종이 울린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세월은 간다
저 흐르는 물처럼 사랑은 간다
인생은 이리도 더디고 희망은 이리도 벅찬데
해는 저물어 종이 울린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지나간 세월도 가버린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해는 저물어 종이 울린다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미라보 다리' - 명시 감상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1880~1918)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그리고 우리들의 사랑도 흐르네
내 마음에 아로 새기는 것
기쁨은 짐짓 고생 끝에 이어 온다는 것
밤도 오고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네
우리들의 팔뚝인 이 다리 아래로
싫증이 난 듯 지친 무궁한 세월의
흐름이 흘러 가는데
우리들 손과 손을 마주 잡고
마주대고 머물리, 얼굴과 얼굴을
밤도 오고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네
마치 흘러가는 이 물결과도 같이
우리의 사랑도 흘러가네,
사랑도 흘러가네
아, 어찌도 생명은 이같이 유유한 것이냐
밤도 오고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 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네
해가 가고 달이 지나고, 흘러가는 세월도
지나간 사랑들도, 돌아오지 않지만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네
밤도 오고 종도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네.
파리 미라보 다리 아래서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아폴리네르(G. Apollinaire, 1880~1918)
(송재영 옮김)
‘미라보 다리(Pont Mirabeau)’는 1896년 경 세워진 아치형 다리. 아름다운 다리에서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다 헤어지는 복을 누렸으니 아폴리네르는 행복한 시인. 그의 뮤즈였던 화가 마리 로랑생은 세느강의 이쪽에 살고 그는 강의 저쪽에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둘은 헤어졌고 홀로 미라보 다리를 찾은 시인은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 보며 추억에 잠긴다. 강물이 흐르듯 삶은 지나가고 사랑도 지나간다.
시의 후반부에 나오는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를 읽으며 시인이 이 시를 쓴 연대가 궁금해졌다. 중년을 훌쩍 넘긴 내게 삶은 느리지 않고 희망도 강렬하지 않다. 서른두 살에 ‘미라보 다리’를 쓰고 4 년 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당한 아폴리네르는 1918년 스페인 독감에 감염되어 3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번역시 원문)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허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손과 손을 붙들고 마주 대하자
우리들의 팔 밑으로
미끄러운 물결의
영원한 눈길이 지나갈 때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흐르는 물결같이 사랑은 지나간다
사랑은 지나간다
삶이 느리듯이
희망이 강렬하듯이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어 오라 종은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1880~1918)
(송재영 옮김)
Le Pont Mirabeau(시 원문)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Et nos amours
Faut-il qu’il m’en souvienne
La joie venait toujours après la p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es mains dans les mains restons face à face
Tandis que sous
Le pont de nos bras passe
Des éternels regards l’onde si lass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L’amour s’en va comme cette eau courante
L’amour s’en va
Comme la vie est lente
Et comme l’Espérance est violent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Passent les jours et passent les semaines
Ni temps passé
Ni les amours reviennent
Sous le pont Mirabeau coule la Seine
Vienne la nuit sonne l’heure
Les jours s’en vont je demeure
-Apollinaire, Alcools (1912)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panama님이 미라보 다리의 시를 올려주셔서 파리여행을 떠올렸는데
청산님이 더 자세하게 올려 주셔서 파리의 세느 강변을 거닐며
이 곳 저 곳 바람새 발자취를 더듬고 있습니다.ㅎㅎ
가을을 예고하는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주신 샹송이 빗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밤을 수놓고 있답니다.
청산님. 감사합니다.
파리는 대한항공편으로 독일, 영국, 벨기에, 프랑스, 스톡홀름 등으로 출장갈 때 여러 번 들렀지만 대게 2박3일이고,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 120,000 마일리지 공제하여 무료로 집사람과 같이 에펠탑, 루브르, 노트르담, 몽마르트르, 상젤리제, 개선문, 센강 유람선 타기 등 만 했지 무랑루즈도 수리중으로 들어가 보지 못 했습니다.
어느덧 8월도 다 지나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이브 몽땅의 감미로운 샹송, 枯葉을 들으며 또 가을의 단골 詩, 구르몽의 落葉,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까지를, 또 기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의 슬픈 연애시 이야기로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게 해 줘 靑山 동문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재경구구회 서원교 동기가 단톡방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