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복(金仁福)이 소시에 노상에서 한 시골 선비를 만났는데 수정 갓끈을 달고 있었다. 그 갓끈이 너무 짧아서 겨우 턱 밑을 돌아갔다. 인복이 말을 세우고 채찍을 들어 읍하고 말하였다.
"아, 아름답구나, 저 수정 갓끈이여! 천하일품이구려. 나의 가산을 기울여서라도 당신의 갓끈을 갖고 싶소."
그 사람이 묻기를
"당신 집이 어디요?"
"내 집은 숭례문 밖 청파리라오. 내일 아침에 배다리만 찾아오우. 게서 김인복이를 물으면 행길에 누군들 모르겠소."
서로 언약을 하고 헤어졌다.
이튿날 인복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대문으로 들어섰다. 인복이 마루 끝으로 나와 채마밭 머리에 평상을 내놓고 앉게 하였다. 인복이 말을 꺼내었다.
"우리집 논이 동성(東城) 흥인문(興仁門)밖에 있는데 한 말을 뿌리면 곡식 석 섬을 먹는다오. 우리 집에 크기가 실로 낙산(落山) 봉우리만한 소가 두 필이라구. 봄 이삼월 토양이 살풀리고 산골의 얼음이 녹아 시냇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면 두 필 소에 쟁기를 달아 논을 갈고 써레질을 하여서 물을 싣는단 말이지. 한 필지에 보통 15두(斗)를 파종하는 논이 여러 자리라. 팔월이 되어 논에 황금 물결이 일제 초승달 같은 낫을 대어 베어다가 타작을 하고 방아를 찧고 키질을 해서 옥처럼 닦이고 구슬처럼 정한 쌀이 솥에 넣고 불을 때어 밥을 지으면 기름이 자르르 밥술에 흐르고 구수한 맛이 혀끝을 감도는구만.
지금 당신이 앉았는 채마밭은 또 좀 기름지고 걸어야지. 상추가 얼마나 잘 되는지. 삼사월경에 갈아서 거름을 흡족히 주면 이슬을 머금고 비를 맞아 잎이 파초처럼 너푼너푼 자라서 연하고 싱그러운 모양이라니. 그걸 대바구니에 넘치도록 따 담는단 말씀야. 봄볕이 따뜻한 날 양지 바른 곳에 장독을 두고 장을 담그면 영락 달기가 벌꿀이요. 색깔이 말피라. 인천(仁川), 안산(案山) 바다에서 그물로 잡은 밴댕이가 장에 나오면 그 놈을 사다가 석쇠에 구울 제, 기름간장을 바르면 냄새가 코를 진동하것다. 그러면 상추를 물기를 탈탈 털어 손바닥 위에 벌여 놓고 기름이 흐르는 올벼 쌀밥 한 숟갈을 뚝 떠서 달고 고소한 된장을 얹은 위에 노릿노릿 구워진 밴댕이를 올려 혜임령(惠任嶺) 장사꾼 짐 들어올리듯 두 손으로 들어올려, 종루(鐘樓)에 파루(罷漏)친 후에 남대문 열리듯 입을 떡 벌리고 밀어 넣는데…."
이 때에 그 사람도 따라서 입을 벌리다가 짧은 갓끈이 그만 뚝 끊어져 수정알들이 땅으로 굴러 떨어졌다.
"우리 집에 함경도의 세포(細布), 충청·전라도의 종면(綜綿), 평안도의 좋은 명주, 남경(南京)의 팽금(彭錦), 요동(遼東)의 모단(帽緞)이 일곱 간 다락에 채곡채곡 쌓였지만 나는 갓끈을 살 수가 없소."
그 사람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이 절로 헤 벌어져서 군침을 줄줄 흘리며 돌아갔다.
<어우야담>, (유몽인 編,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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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조선 서사문학의 정수중 하나인 <어우야담>에 나오는 이야기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수능 기출 지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중세/고대 설화들을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 이제껏 서양 중세 서사문학만 읽다가 근 10년만에 다시 한국 고대 소설로 돌아오니 너무 새로운게 많네요. 이번학기에 '한국 서사문학사' 레포트도 하나 작성해야하고, 이쪽 관련 전공 수업을 3개나 듣기 때문에, 다시 읽다가 한번 올려봅니다. 정말 한국사람들의 이런 번뜩이는 기질들은 다 어따 팔아먹었나 모르겠군요. -_-; (인터넷 악플 및 리플놀이는 제외)
개인적으론 어우야담보다 청구야담을 훨씬 좋아하는 데, 조만간 시간이 되면 청구야담에서도 한편 올려봅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