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모든 것을 몸소 경험할 수 없기에 책을 통해서 지식을 늘려 나갑니다. 오늘날은 TV가 잘 되어 있어서 요즘 세대는 책을 멀리하고 모든 지식을 비쥬얼화해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는 맹점이 있는데 보는 것에 길들여지고 문자를 통해 뇌에 지식을 전달하지 않는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계속 변질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는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후 4:18).
어떤 사람들은 구원의 요소 중에서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그래서 "거듭남의 체험 있으세요?" 이런 질문을 합니다. 물론 거듭남은 체험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머리속에서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생각과 마음과 입술과 모든 것이 동시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영이 거듭나고 혼이 구원받은 사건입니다. 비록 그 사건이 몸 밖으로 표출되는 외적 사건은 아니지만 사건은 사건입니다.
그래서, 체험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사실에 대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했다는 것을 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보는 것으로 믿으려고 하는 낮은 단계로 퇴행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퇴행하다 보면 결국 믿음이 아닌 "불신"으로 변질됩니다.
저는 뜨거운 체험적 신앙을 가졌다가 회의론자로 돌변한 많은 사람을 알고 그 중에 가족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당시에는 거의 거룩한 선지자같이 하고 다닙니다. 그들은 너무 거룩 거룩을 강조해서 그 곁에 가면 거룩이 만져질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람은 스스로 충분히 의로움을 가장할 수 있는 그런 존재라는 것입니다.
라마중들이나 힌두교 구루들, 중들도 스스로 도를 닦아서 경건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어느 정도 경건을 가장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누군들 못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성경을 붙잡고 종교성을 드러낸다고 해서 주님께서 그들을 그대로 받아주시겠습니까? 회개는 인간이 자기 것들(육신의 것들)을 모두 쓰레기라고 완전히 침을 뱉고 돌아서서 주님이 주시는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만 붙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죄의 구속입니다.
이것을 받게 되면 속사람이 생겨나는데 일단 생겨난 후에는 더이상 육신하고 의논하지 않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속사람에 주시는 것들에 따라 성장이 됩니다. 철학, 과학, 종교, 그런 것들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관심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체험으로 신앙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들은 정말 딱한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 전율 상태가 계속되어야지 무엇이 되는 줄로 압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아이돌 스타들을 따라다니며 노숙생활을 흔히 하듯이 체험으로 잘못 단추끼운 사람들도 기도원과 집회장을 전전하며, 계속해서 이 육신에다가 펌프질을 해 대며 지탱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으로 전혀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헛바람만 들어가서 계속 도돌이표를 찍고 있으면서 "무엇이 된다" 자기 세뇌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게 얼마나 허무한 일이고, 깨닫는다면 가슴을 치고 싶겠습니까? 허송세월인 것입니다. 그런 목사들, 교인들은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지도 않고 자기들에게 복이 되는 구절만 붙잡고 삽니다. 또 두려움을 주입하는 설교에 길들여져 있어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다 거부합니다. 그들은 육신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자유를 주면 금방 타락해 버릴 가짜들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보장은 자기들에게 독이라고 여깁니다. 왜냐하니 자신들이 그걸 믿는다면 분명히 마귀처럼 살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제가 설명한 것이 인간의 종교성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런 종교성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거듭남은 모든 죄들과 함께 부패한 마음에서 나온 종교성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주님은 종교쟁이들을 부르시는 게 아니라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사람을 찾으신다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요한복음 4:24).
첫댓글 아멘 공감가는 내용이라 감사히 읽었습니다. 체험을 지나치게 맹신하면 은사가 전부가 되는 은사주의까지 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