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졸업과 여자친구
김혜경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인가. 가슴에 콕 수건을 달고 초등학교 입학
을 했던 아들이 대학을 졸업한다. 먹이고 가르치는 일을 끝냈으니 후련
할 법도 한데 막상 그렇지만도 않았다 아이의 직장문제, 병역문제, 특히
결혼 문제가 또 다른 걱정거리로 다가온다.
졸업 날 두개의 꽃다발을 준비했다 하나는 아들 것, 하나는 아들의 여자친구 것이
다 5년 전 재수할 때부터 사귄 여자친구가 함께 졸업을 한다.
착하긴 하지만 인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은근히 헤어지길 바랐지만 도무지 헤어질 기
미가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마음 비우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며느리가 될지도 모르는데 남은 여생을 잡음 없이 살려면, 내가 잘 보여야 할
것만 같았다.
예비 며느리 꽃다발을 만들고 선물을 준비하고, 축하편지까지 적어서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신명이 나지만은 않았다.
아들은 맑은 햇살이 내리 쬐는 잔디밭에서 친구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검은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아들을 보자 뿌듯한 마음이 벅차오른다. 말대답 한
번 해 본 적 없는 착한 아들이었고, 동생에게 늘 양보하는 착한 형이었고 어려서 잃
은 아비의 자리를 대신 든든히 지켜준 믿음직한 아이였다. 마음속으로 ‘고맙다’라는
말만 되 내었다.
막 아들을 부르려는데, 어느새 쪼로록 여자 친구가 달려와 아들의 팔짱을 낀다.
헉’
바람은 왜 이리도 부는지, 하늘은 왜 이리도 공연히 맑은지, 아침을 먹지도 않은 뱃
속이 왜 이리도 뒤틀리는지……….
저마다 좋은 자리를 찾아 사진을 찍으려고 부산을 떤다.
통치마에 낡은 모직 코트를 입은 어미들은 펄펄 뛰는 젊음에 섞이지 못하고 뒷전에
서 어슬렁거린다. 나도 그 뒤에 멀거니 서있다.
꽃밭에 벌 나비 희롱하듯 서로 만지고 털고 어르는 두 아이를 바라본다.
참 곱기도 하다 막 물이 오른 보들보들한 버들강아지 같다. 살짝 톡 건드려도 꽃망
울이 터져 나듯이 그 아이들의 웃음이 봄 햇살 사이를 비집고 또로록 또로록 퍼져 올
라온다.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아이들의 사랑과 풋풋한 젊음!
저 아이들과 같은 시절이 내게도 있었으련만 기억속의 스물다섯은 그리 밝지만은 않
다 저 아이들 나이에 결혼을 하였다. 꿈같은 신혼이 아니라 남편을 사이에 두고 시어
머님과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던 때인 것 같다.
서툰 집안일과 식구들의 뒷시중에 하루 종일 시달리다 겨우 남편과 잠자리에 들라치
면 시어머님께서 차를 끓여 신혼방엘 들어오신다.
이런 저런 고된 시집살이 얘기를 풀어 놓으시다가 비척비척 남편과 나 사이를 파고
들어와 어느 곁에 가릉가릉 코를 고신다.
애지중지 기른 아들을 장가보내시고 시어머니 마음속에도 휑한 바람이 들었던 것일
까?
얼싸 안은 두 아이들을 보면서 불현듯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슬금슬금 밀려드는 상실감을 막
을 수가 없다.
장난기 많은 친구 녀석들이 불후의 명작을 남기자며 두 아이를 카메라 앞에 세운다.- 11
서로 머리를 맞대고 허리를 감싸고 낯간지러운 포즈를 취한다.
꽃샘바람이 휙 몰아쳤다.
“잠깐!”
나도 모르겠다. 바람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 아이들 사이에 비집고 섰다.
"찰칵!"
지금 내방엔 아들의 졸업사진이 걸려있다.
두 아이의 놀랜 표정과, 어정쩡 끼어들어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웃고 있는 내 모
습, 심술 난 바람.
매일 밤 남편과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셨던 시어머님을 이제는 이해해 드릴 때가
되었나보다.
졸업사진 옆에 '그것 봐라 하듯 웃으시는 어머님 사진을 한 장 더 걸었다.
2004 20집
첫댓글 매일 밤 남편과 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셨던 시어머님을 이제는 이해해 드릴 때가
되었나보다.
졸업사진 옆에 '그것 봐라 하듯 웃으시는 어머님 사진을 한 장 더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