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로또 2등’ 노가다꾼의 죽음…집엔 새 로또 용지 가득했다
김새별 중앙일보
이번 고독사 현장에선 특이하게 술병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중장년층 고독사 현장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것이 술병과 약봉지다.
과도한 음주로 건강을 해치고, 망가진 몸 때문에 약을 먹는 일이 반복된다. 그런 악순환이 중장년층 고독사 현장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패턴이다.
이번 현장의 고인은 60세 남성. 요즘은 노인이라고 할 수 없는 멀쩡한 나이대다.
방에서 술병이 안 나온 것만큼 인상적이었던 것은 방 한쪽에 잘 간직해 놓은 가족사진이었다. 고인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과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들이 함께 찍었다.
단란해 보였다. 다만 아내로 보이는 인물이 사진 속에 없었다. 사별인지 이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인의 모친이 2014년도에 돌아가셨다니 그 이전 사진일 게다.
10년은 지난 가족사진. 물론 사진 한 장이 당시의 모든 걸 설명해 주진 못하지만 평범한, 평범해서 평온해 보이는 보통 가족의 행복한 한때였다.
그리고 10년쯤 뒤 고인은 무연고 시신처리가 됐다.
현장 청소를 맡긴 집주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다. 유품을 정리하고 집안 특수청소를 맡기려고 경찰 쪽에 물어보니 고인의 가족으로부터 시신포기 및 현장정리 거부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한다.
그 10년 사이 아들과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고인은 최근까지는 건설현장 일을 해 온 모양이었다.
유품 중 가장 많이 나온 것은 로또 용지였다.
이미 당첨일이 지나 아마도 낙첨된 용지들도 많았고, 직접 숫자를 마킹하는 로또 기입용지들까지 뭉텅이로 쌓여 있었다.
그 용지더미들 속에선 농협에서 발급받은 거래내역 확인증이 나왔다.
당첨 총액 5700여만원.
세금을 제외하고 실지급액은 4400여만원이었다.
로또 2등 당첨금을 수령한 것이다.
날짜를 보니 지난해 여름이었다.
고인이 고독사한 집은 보증금 300만원, 월세 30만원짜리였다.
4000만원이 넘는 로또가 되고도 그 집에서 계속 살았다. 집 안엔 뭔가 새로 들여놓은 가구나 가전제품도 눈에 띄지 않았다.
4400만원이면 서민들에겐 꽤 큰 돈인데, 그 돈으로 집도, 물건도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다.
당첨금을 받은 날로부터 매주 수십만원씩의 복권을 다시 산 것이다.
로또뿐 아니라 스포츠토토 복권도 가득했다.
흔히 말하는 일확천금이란 2등짜리로는 어림도 없었던 것이었을까.
고인의 인생에 있어서 4400만원은 삶을 지탱해 줄 가치가 없을 만큼 부족했던 것일까.
박스 한 가득 로또를 쌓아두고 그는 매주 더 큰 행운을 기다렸다.
달리 다른 곳에 돈을 사용한 흔적도 없이 말이다.
2등이 아니라 1등이었다면 고인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수없이 로또를 찍어가며 그가 바라던 삶은 뭐였을까.
고이 간직하고 있던 가족사진은 사실 그때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미련이 아니었을까.
다시 모여 앞으로의 삶을 함께할 기대를 품기엔 2등은 턱도 없었던 것일까.
1등이 아니면 가족은 다시 모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
수억·수십억 당첨금이 없더라도 아버지로서 아들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한다고 연락을 취했더라면.
그랬어도 이렇게 끝까지 버림받았을까.
물론 모든 삶에는 개개인의 사연과 이유가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해보지도 않고 자신의 생각만으로 단정짓고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알아보지도 않고 지레 겁먹고 포기한다.
혼자서 불필요한 곳에 사족을 달아 집착하고 있을 때가 많다.
고인의 사인은 베란다에서 방 안으로 들어오다 발을 헛디뎌 세게 넘어지면서 숨진 것이었다.
혼자 사는 사람이 겪는 가장 허무하고 안타까운 사고 중 하나다. 그러나 그런 죽음이 드물지 않다.
누군가가 함께 있었더라면 응급처치를 받았을 것이고 생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로또 2등 당첨도 살면서 겪어볼 수 없는 아주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는 더 큰 욕심에 눈이 멀어 손에 쥐어진 행운을 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실족’이 아니라 ‘고독’이 그를 죽였다.
스스로를 고립시킨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