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팔백서른 번째
지족의 삶 바다 유목민
우리는 늘 부족不足함에 쫓기고, 그 부족함을 메우려고 애쓰며 삽니다. 때론 그게 필요한지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찾아 헤맵니다.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물건들 가운데 한두 번 쓰고 오랫동안 잊힌 채 버려진 물건들도 있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남들이 사니까 혹은 언젠가 쓸모가 있을 것 같아 구입해 둔 물건도 있을 겁니다. ‘부족’에 대한 불안이 그런 현상을 만든 것이지요. 그것 때문에 우리는 땀을 흘리고 남을 속이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면서 삽니다. 사회의 온갖 범죄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부족하다’라는 말이 아예 없는 부족도 있답니다. 사마-바자우족Sama-Bajau. 이들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여러 섬의 해안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답니다. ‘바다 집시족’, ‘바다 유목민’으로 알려진 바자우족은 국적 없이 전통적으로 해상 가옥을 짓거나 배를 집 삼아 생애 대부분 동안 바다를 이곳저곳 떠돌며 어업과 무역으로 살아간답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 통합된 적이 없답니다. 국적이 없어 학교나 병원에도 갈 수 없고 죽어서야 겨우 땅에 묻힐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부족하다’란 단어가 없답니다. 부족한 게 없을 리 없는데도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순박하고 행복해 보인답니다. 어느 국가에 매이지 않고, 지구촌 주민으로 살아가며 바다가 주는 대로 만족하며 사는 그들에게 불편한 게 없느냐고 묻자 “사실 여기 있으면 별일은 없죠. 이런 게 저희 삶인 거죠.” 국적도 없이 바다의 방랑객처럼 살면서도 ‘별일’ 없답니다. 우리에겐 매우 생소한 삶입니다. ‘부족함이란 개념이 없는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홍진벽산紅塵碧山,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바자우족이야말로 지족知足,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우린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