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 토벌대와 빨치산이 함께 울고 웃었던 산속 공연
전라북도 정읍에서 전라남도 광주로 갈 때 꼭 넘어야 하는 갈재가 있다. 바로 정읍갈재이다. 정읍갈재는 노령산맥에 위치한 산줄기로 내장산과 입암산, 방장산이 있어 예부터 높이에 비해 산세가 깊고 험하기로 유명했다. 갈대가 많다고 하여 ‘노령(蘆嶺)’으로 불리며 장성갈재로도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행정구역상 정읍시에 속해 있어 정읍갈재라 함이 맞다.
정읍은 부친 차일혁 경무관과 인연이 깊다. 부친은 정읍과 인접한 김제에서 태어나셨고, 선조께서는 정읍에 잠들어계시니 고향이나 다름없는 장소이다. 정읍은 전주와 광주의 중간지점으로 호남 서해안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 요충지였다. 6.25 전쟁이 한창인 1951년 4월 초부터 5월 말까지, 정읍은 비록 수복은 되었으나 정읍 인근 지역에는 여전히 빨치산들이 여러 차례 정읍을 공격하여 치안이 불안한 상태였다. 빨치산들은 정읍을 교두보 삼아 빨치산토벌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세를 확장시키고 있었다.
1951년 4월 말, 정읍갈재에서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부친 차일혁 경무관은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고창, 정읍지역의 작전을 지휘하던 중, 때마침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전옥’씨가 단장으로 있는 백조가극단이 전주 공연을 마치고 정읍극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부친은 정읍극장으로 찾아가 분장실에서 백조가극단 전옥 단장을 만났다. “연극이 정말 훌륭합니다. 혹시 우리 대원들을 위해서 위문공연을 해 줄 수 없겠습니까?” “위문공연이요? 좋습니다!” 후방지역을 순회공연 중인 전옥 단장은 치열한 접전지역이었던 정읍 상황을 잘 알지 못 했기에 부친의 즉석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정읍갈재에 가설무대가 설치되고...부대는 순식간에 축제의 분위기로 들뜨기 시작했다. “우리 부대에 전옥이 온대!” “뭐? 눈물의 여왕, 전옥?” “김승호랑 허장강도 오고 있어!” 부대원들은 빨치산과의 격전지인 정읍갈재에 전옥, 김승호, 최남현, 허장강, 황금실, 고복수, 원희옥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악극단 단원들이 탄 트럭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백조악극단 최고의 히트작인 <눈 나리는 밤>의 막이 오르려는 순간, 갑자기 10~15명의 국군 군복을 입은 빨치산 포로들이 포승줄에 묶인 채 무대 맨 앞자리에 앉는 것이 아닌가. 대원들은 박수를 치다 말고 당황해했다. 세상에! 빨치산과 함께 연극을 보다니. 부친은 여기서 더 나아가, “포로들의 포승줄을 풀어라. 그들도 연극을 보러 온 관객이다. 예술 앞에서 아군과 적군은 없다.”
연극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땅! 땅! 땅!’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빨치산이 공격한다! 연극을 멈춰라!” 포로로 붙잡힌 빨치산들이 연극을 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포로들을 구출하기 위해 빨치산들이 극장을 기습한 것이었다. 배우 김승호 씨는 놀라 물 담은 큰 항아리 안으로 몸을 숨겼고, 다른 대원들도 ‘걸음마 나 살려라!’ 무대 밑으로 숨었다.
하지만 부친은 아무렇지 않게 빨치산들의 공격을 막아낸 뒤, 전옥 단장부터 찾았다. “연극을 계속해주십시오. ‘Show must go on'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전쟁터라고 연극을 중간에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부친의 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 전옥 단장은 혼비백산 도망간 단원들을 찾았고, 마지막으로 항아리 안으로 몸을 숨기는 바람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김승호 씨를 겨우 끄집어내 연극을 강행하게 되었다.
공연 직전, 부친은 산 속에서 기습을 준비하던 빨치산들을 향해서 소리치셨다. “비록 우리가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에서 총부리를 겨누고 있지만, 오늘만은 한 사람의 관객으로 돌아가 이 무대를 함께 감상하길 바란다!” 배우들은 겁에 질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중간에 대사를 빠트리고 장면을 건너뛰기도 했지만 극장 안은 뜨거운 박수로 가득 찼고, 빨치산들도 더 이상 공격하지 않고 산 중에서 <눈 나리는 밤>을 함께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빨치산과 빨치산 토벌대가 함께 울고 웃었던 <눈 나리는 밤>. 세계 전쟁 역사상 이런 기적이 또 있었을까. 지금은 통일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조국통일기념비와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원’비가 서 있는 정읍갈재의 시간을 1951년 4월로 되돌려 그날의 기적을 다큐멘터리에 담아보려고 한다. 지금도 살아계신 전옥 씨의 수양딸이자 당시 10대 소녀였던 원희옥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구현된 ‘정읍갈재의 기적’(가제)이 스크린에 상영되어 관객들을 찾아가게 될 그날이 손꼽아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