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경기가 끝나는 시각은 보통 밤 10시, 더 늦으면 11시를 넘길 때도 있다. 홈과 원정을 넘나드는 선수들은 밤새 구단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한다. 안전하게 선수들을 다음 경기 장소까지 실어 나르는 구단 버스 기사는 그만큼 중요하다.
"벌써 30년 가까이 됐죠" 1989년 2월, 서울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청룡 시절부터 구단 버스 1호차를 운전해 온 강영훈 기사는 웃으며 지난날을 돌아봤다. 야수를 태우는 1호차와 투수를 태우는 2호차 중 1호차를 운전하고 있는 그는 과거 운전할 적에는 이렇게 포지션별로 나누어 버스를 타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예전에는 투수와 타자들이 혼합해서 버스를 탔어요. 혹시나 한 차가 사고가 났을 때, 다른 차에 있는 선수들로 경기를 치러야 하니까요, 지금은 전력분석을 하는 데 있어서나 여러모로 편의를 위해 포지션 별로 나눠 타요" 이 일을 한지 오래된 만큼, LG 트윈스를 거쳤던 감독과 선수들도 거의 다 아는 사이다. 단순히 운전을 하는 기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선수단을 다독이는 역할도 한다. 힘내라고 손바닥도 마주치고, 주먹도 맞댄다. 히메네스는 그를 '고조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선수단과 한 팀이라고, 공동체 의식을 가져요. 히메네스는 워낙 장난을 잘 치는데, 한 번은 박치기를 했어요. 그러더니 그 날 홈런을 치더라고요. 그 다음부터는 박치기 안 해주면 해달라고 막 그래요. 안 하면 홈런 없다고(웃음)"
강영훈씨에게 있어서 서울 LG 트윈스는 단순한 '직장' 그 이상이다. 어릴 적부터 누군가 꿈을 물으면 '운전수'라고 대답했던 그는 고액 연봉자인 선수들이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안전한 운행을 하는 구단 버스 기사가 되었다. 선수들 가방을 싣는 사소한 일조차도 주의를 기울이고, 오로지선수들의 안전만을 신경 쓴다. 선수단 뿐 아니라 운전기사 역시도 '프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게 강영훈씨의 지론이다. "제 일에 충실하는 게 중요해요. 선수들과 일체의식을 가지고, 프로답게 책임감을 가지고 일해야죠"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둘 때다. "과거 1990년, 1994년 우승했을 때 정말 기분이 좋았고 이 일을 하는데 보람을 느꼈어요" 반대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버스 운행을 하다가 다른 기사에게 손가락질도 당해봤다고 한다. 한 구장을 쓰는 두산에게 졌을 때는 더욱 분위기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근 9연승을 달리고 있었을 때는 구단 버스 내의 분위기는 어떨까. "아주 좋죠. 이긴 날은 버스 안에도 이야기 소리가 들려요. 진 날은 숨을 못 쉴 정도의 적막이 가득하죠. 그 적막한 열기 때문에 내가 뒷머리가 없어요(웃음)"
밤에 운전을 하는 일도 힘들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한다. "요즘에는 운전하는 일만 하면 되지만, 예전에는 상황이 열악했어요. 그리고 요즘에는 네비게이션이 있지만, 과거에는 지도와 이정표만 보고 다녔어요. 미리 길을 파악해둬야 했으니 힘들었죠"
서울 LG 트윈스에서만 버스를 운전한 '프랜차이즈 기사' 답게, 팀 사랑이 남다른 강영훈씨다. "나는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이 일을 할 거에요. 다른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기도 했지만, 여기 남아달라는 한 마디에 남았죠" 끝으로 팬들과 선수단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팀 성적에 아쉬움을 느끼는 팬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승리를 누구보다 원하는 건 선수들이죠. 성적이 다소 좋지 않더라도, 우리 팀 선수들을 더욱 열심히 응원하고 격려해 줬으면 좋겠어요. 또한 현재 크고 작은 부상을 안고 뛰고 있는 우리 선수들, 더 이상 다치지 않고 운동했으면 하고요. 선수단과 프런트, 팬이 삼위일체가 되어 올해는 좋은 성적 거뒀으면 좋겠어요. 저도 우승 보너스 받아봐야 하지 않겠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