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나서 많이 바뀌어진 생활 패턴 머릿속이 희뿌연 안개속을 헤매는듯 할때도 많지마는 새벽 이시간 쯤 하루중 정신이 제일 초롱초롱 하게 맑은 시간대 같습니다.
그래서 새벽 이시간 즈음이 제일 고요하고 행복한 시간대 라고 생각하지요. 어제 쫌 혼란스런 마음도 차분하게 정리 는 아마 기본이겟지요~~
어쩌다 지금 현실과 맞지않는 로맨스 얘기 사실 저 사연부자라 할수 있지요. 굴곡진 인생을 살다보니 의도치 않아도 저절로 인연이 자연스럽게 시작된거 같아요.
그러니 아마 제가 운선님 처럼 글쓰는 재주가 있엇음 제가 가진 그 사연만으로도 아마 제법 많은 실화 연애소설 작품이 나왓을거 같네요~~
이번에 어쩌다 쓴 사연도 제목이 좀 슬픈 느낌이지마는 사실 졸은일 전국을 같이 누비면서 사진 일만장을 넘도록 담을 정도로 행복한 추억과 영화 처럼 그림 같이 아름다운 날들이 훠얼씬 더 많고,
여기 삶의 얘기 열몇편은 쉽게 우려먹을수 있을 정도로의 얘기거리 소재는 되지요. 근데 좀 제 현실하고 의 과리감이 쪼금은 있더군요..
전 글쓰기보다는 어쩜 그냥 삶의 얘기들 이지요. 그러니 사실 허접해서 그렇지 쓰는건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들 옮 기는 것이라 힘들다?? 이런느낌은 전혀 저랑은 상관 없는일 같습니다.
이런글 사실 거짓말 쪼끔만 더 보태면 하루 10편도 뭐 불가능한건 아닙니다~~
그래도 독불장군 없다고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햇지요. 그래도 사나이 칼을 뽑앗어니 무우라도 썰어야 겟지요.
짤막하게 마무리 하려 합니다.지루 하셔도 이뿌게 봐주셧음 합니다~~
참말로 정이란게 무섭더군요~~ 정들기 는 쉬워도 떼기는 몇배 아니 수십배 이상 힘들다는거 그 사실 아는것도 오래지 않아서 알게 되지요~~
그렇게 난리법석 부리던 여인을 가게 만들엇지마는 사실 제마음은 살얼음판 을 걷듯 불안불안 햇엇지요~~
물론 쉬우리라곤 생각지 않앗지만 체면 몰수 집으로 또 찿아오게 되더군요. 그럴수록 더 자존심 까뭉개고 돌아갈수 밖에 없도록 상황을 유도를 하지요~~
그때 그녀의 떠나는 마지막 모습 가슴이 미어지는듯해 차마 볼수는 없어서 먼 발치에서 봣는데요. 몇번이나 가질않고 울며불며 돌아서고 반복하더니 결국 울면서 돌아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앗고 그 장면이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새겨져 그 때문에 더 오래 고통속을 헤매게 됩니다~~
그리 힘들게 보내놓고서 그래도 인제 한슴. 돌리나 햇는데?? 천만의 만만의 말씀 이더군요~~
어쩜 진짜 고통은 그이후 진짜로 힘든 일이엇다는걸 알게 되네요. 협박성 문자에 가끔 시달리기도 햇구요. 자살 시도도 몇번 햇엇고 숳한 우여 곡잘이 있엇지요.
그이후 정말 진짜 고통이 시작된듯 원래 대부분의 커풀은 콩깍지가 벗겨 지고 애정이 식던지 권태기를 거치던 시들해질때 자연스럽게 헤어 지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어쩜 더 필요로 하면서 내쳐야 하는 상황이어서 인지 정말 사서 하는 고생이라 할수 있더군요.
그이후 수시로 떠오르는 죄책감 미안함 저에 대한 실망감 등등 술한 감정들이 저를 더 힘들게 햇지요.
그래서 그때부터 잊기위한 몸부림 저를 스스로 혹사하기 시작 햇던거 같습니다. 예전 젊을적 비슷한 고통으로 벽돌 짊어 나르는 일을 몇년 자청 햇던 일도 있는데요.
틀리지만 의도는 비슷햇고 잡생각이 아예 끼어들지 못하게 시간만 나면 계단타고 벽돌 나르듯 그 빡센 산행을 자청 햇던거 같습니다.
일주일에 많게는 세번 산행도 있엇고 평균 두어번의 산행을 하면서 그 고통을 잠재웟던거 같습니다.
한번 산행 최소 10키로 이상 많게는 20키로 가까이 할만큼 경험도 없는 초보자 에게 위험한 일이 엿습니다
특히나 더 섬칫햇던건 장비도 제대로 없이 한겨울 혹한때 홀로 겨울 산행 겁도 없이 많이 햇구여.지금생각하면 지금 숨쉬고 이러고 있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 이지요~~
얼추 제 짐작 그런 말도 안되는 시도 그 시간이 대략 한 6개월 정도로 되엇 을때 마음의 고통에서 서서히 벗어나 거볍게 된거 같습니다~~
또 느끼게 된건 옛날 유명한 무당의 예언 여자와의 인연 앞으로도 제법 된다는 섬칫한 그 예언 그게 또 현실이 되더군요~
그러고 보면 사연부자가 되게한것 인연 이란 사람의 영역이 아닌 하늘이 주재 하는거 같구요. 피하려 해도 이어지는 향단이 와의 새로운 인연까지 모두 그게 제의도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운명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그렇게 또 서서히 또 하나의 사연도 묻혀져 가고 또 새로이 시작되면서 세월의 수레바퀴는 무심히 굴러 가더군여~~
이번에 어쩌다 무리수를 두게 되엇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게 아닌 억지로 끌어올린 부분이 있어서 지루하고 어색한 것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쓰는저도 쪼매 피곤하지마는 긴글 보시는 분들에게 민폐같구 송구 스럽기 까지 합니다~~
근데 예정보다 많이 압축된 러브스토리 그 이후 6년의 세월이 흐르고 또 제목 처럼 슬픔이 아닌 해피엔딩???? 으로 마무리를 하게 되지요~~
"그때 그녀의 떠나는 마지막 모습 가슴이 미어지는듯해 차마 볼수는 없어서 먼 발치에서 봣는데요. 몇번이나 가질않고 울며불며 돌아서고 반복하더니 결국 울면서 돌아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앗고 그 장면이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새겨져 그 때문에 더 오래 고통속을 헤매게 됩니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반대로 행동한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결혼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큰형은 아들 하나에 작은형도 자식이 없었죠.
홀로된 어머니는 막내 손자 똥 냄새가 ‘꼬시다’고 할 준비가 만땅코, 월출산 보다 높게 되어 있었겠지요.
집안이 역 피라미드에 놓일 상황에 놓이자 주변에서 슬슬 아이 못 낳은(누가 문제인지 모르면서)마누라에게 화살이 날아오더군요.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구정 때 모두 모인 자리에서 대못을 꽝꽝 박아버렸습니다.
"누가 문제 인지도 모르고...내가 택한 제 짝입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면 나는 영원히 이대로 살겠습니다. 한 번 더 이 문제를 거론한 형제는 더 이상 안만 날 것입니다.”
첫댓글 ㅎㅎㅎㅎ ᆢ
감사합니다
시리즈로, 이어주는 삶의 이야기
잘 보았읍니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추억을 먹고, 살아 가는거 같읍니다
저도 ᆢ
대구에 살았던
청바지를 즐겨입고
눈이 크나큰, 첫사랑이
지금도 또렷하게 ᆢ
특히, 비가 내리는 날이면
비하고,
그녀와의 인연이, 너무 많았기에
뚜렷한 그녀가
마음속으로, 그려 진답니다
가끔은 ᆢ
집사람한테
미안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첫사랑의 그녀가
떠 오르거든요 ᆢ
아름다운 그 시절이
있었고요
좋은 추억으로
죽는 그 날까지
잊혀지지는, 않켔지요 ᆢ
내 마음 한 구석에
영원히 ᆢ
자리를 잡고, 있겠지요 ᆢㅎ
감사합니다
응원하겠읍니다 ᆢ
오늘도 ᆢ
여전하게, 긍정의 마인드로
화이팅입니다
어머나 첫사랑이
대구여인이었다니
혹시? 크크
저는 서울서 대구놀러온 머스마 있었는데
정주지 않아서 기억저편 쪼꼬미로 ㅎ
오늘 등원 안해도 되니
느긋해서리
@정 아 ㅋㅋㅋㅋ ~!
정아님 어서 오시어요
정겹고 그러하옵니다
대구의 그녀는 ᆢ
대학교는 꿈을 안고
서울에서. 다녓을 때 만났던
여인 이었드랬어요ᆢ
대학 1년때 ᆢ
철없이 마냥
내가 더
좋아했던 그녀 였답니다 ᆢ
무용을 전공했던 그녀 ᆢ
눈이 크고 미인형의 얼굴
청바지를 즐겨 입었던 그녀
그래서 ᆢ
지금도 "눈이 큰아이" 노래를
좋아 하거든요
나에게 ᆢ
전해준, 이별의 노란 손수건 ᆢ
내가 그때는
그녀가, 무조건 좋았거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단점도
그녀에게 있었는데
그때는 ᆢ
우찌혀서
그녀의 모든것이
좋았던지요 ᆢ
아름다운 ᆢ
좋은 시절이 아니었을까
이러케 ᆢ
이 연사는 외쳐봅니다 ᆢㅎ
추억이야 넘치도록 많은 부자
이지마는 세월이 흐르니 망각의
동물이라 하나씩 하나씩 희미해
지더군요~~
그러고 보면 기억에 추억에
의존하는거 보다 사진이
훨 중요하지만 그때 당시엔
그렇개 소중한줄 몰랏엇지요.
요새는 날아가고 지워져버린
사진이 아쉬워지더군요.
산사나이님의 그녀도 지금
산사나이님 생각 할수도요.
내일 마지막으로 해피엔딩
으로 끝을 맺게됳 예정인데요.
부족햇겟지마는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인제 제 주변에 남은 진국
인연들에게 집중하며 살아야
할거 같습니다.
그 당시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래도 사랑할수 있었음에 축복이라 생각하시고
좋은생각만 하시며 그녀의 안녕을 바라면 좋을듯 싶네요
그때 참말로 힘이 들엇지요.
정말 그정도로 깊은정이
들은줄도 몰랏엇지요.
이슬에 옷이젖듯이 너무나
깊은정이 엇다는걸 나홀로
고행 하면서 알게 됏습니다
노랫말처럼 정주는거보다
떼는게 최소 몇배는 힘이
드는거 같습니다.
사연도 많고
가슴에 머물다 간 여인도 많고!
제2의 지존옵빠가 금박사였구료! 나무관세음보살, 아멘!
그래서 우스개 소라로
또 엮이기 싫어서 거절
하고 피하는 재주 또한
늘더군요~~
참 한번 꽈배기 처럼 꼬아면
인생또한 그렇게 힘들개
꼬이더군요~~인젠 그럴일도
없고요. 하라해도 못할거
같습니다.
전 펼치기보다
전 접기가 힘들다고 하죠
누구에게나 삶은
소설 몇권이라더니
사랑소설도 몇권은 되겠어요
금박사님이 갱상도남자면서
참 자상한것 같습니다
유효적절하개 비유도 정말
잘 하시는군요. 인생 누구나
그저 그렇게 쉽게 쉽게 사는
사람은 없을거 같습니다.
다들 가슴속 수많은 사연
들을 안고 실아기는거
같습니다.
저도 무식하게 생겻는데요.
내게 그렇게 섬세하고
자상한 면이 있는줄 몰랏지요.
근데 그런 다정 연민 애틋한
마음 동정 여러가지 복합된
성격이 멀키고 설키고 많은
인연들이 만들어 진거 같습니다.
사람의 인연. 그냥. 맺어 지는게 아니지요 그 때 그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산행을 많이 하셨군요 마음 다스리는데는 걷는 산행이 참 좋더군요. 금박사님 가슴에 오랜 묵은지 가슴 사랑 이야기 꺼내셨네요 식사 잘 하시고 체력관리 잘 하셔서 진솔한 글 기대 합니다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그정도로?? 까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땐 많이 어리고 인생을 몰랏던 탓이라 무식하게 부딪쳣던거
같습니다.
좀 제가 이번에 어쩌다 보니
좀 어색한 부분도 있구요.
호응도가 별오라서 얼릉 정리
할까 봅니다.
오늘 새벽에 다 준비햇는데요.
저혼자 만의 게시판이 아니라서
지금 기다리고 있습니다.
얼릉 숙제같은거 뤼리릭
던지고 싶네요.잘보아 주셔서
늘 힘이됩니다.감사합니다.
정이 많은 성격이라서 그동안 인연을 맺었던 분 들이 많으셨던 듯 보입니다.
이제는 완결 편으로 한 분과 끝까지 가시기 를요. ^^~
남여간의 정뿐만 아니라
사회생활 하면서도 남들처럼
평범하거나 적당하지 못하고
많이 유별스럽게 살아온거
같습니다.
항상 정에 묶여서 그 족쇄에
묶여 살아온거 같습니다.
세월이 훌쩍 이만큼 건너 뛰다
보니 이제서야 조율이 되는삶
인거 같습니다.
좀 일찍 알앗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살짝 생기네요.
감사합니다 즐건 한주 시작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그녀의 떠나는 마지막 모습 가슴이
미어지는듯해 차마 볼수는 없어서 먼
발치에서 봣는데요. 몇번이나 가질않고
울며불며 돌아서고 반복하더니 결국
울면서 돌아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 보앗고 그 장면이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새겨져 그 때문에 더 오래
고통속을 헤매게 됩니다~~"
***
이 대목을 읽으면서 반대로
행동한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결혼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었습니다.
큰형은 아들 하나에 작은형도 자식이 없었죠.
홀로된 어머니는 막내 손자 똥 냄새가 ‘꼬시다’고 할
준비가 만땅코, 월출산 보다 높게 되어 있었겠지요.
집안이 역 피라미드에 놓일 상황에 놓이자 주변에서
슬슬 아이 못 낳은(누가 문제인지 모르면서)마누라에게
화살이 날아오더군요.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구정 때
모두 모인 자리에서 대못을 꽝꽝 박아버렸습니다.
"누가 문제 인지도 모르고...내가 택한 제 짝입니다.
이 또한 하늘의 뜻이라면 나는 영원히 이대로 살겠습니다.
한 번 더 이 문제를 거론한 형제는 더 이상 안만 날 것입니다.”
효과는 100% 그 이듬해 우리 공주가 태어남...^^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금박사님 !
오늘밤도 평안함 쉼 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