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 / 이기철
어떤 사소한 글이라도 그에겐 혈흔이다
어떤 글은 병이 되어 그의 생을 쉬이 저물게 한다
아무리 작가는 말을 만드는 사람이라 해도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는 말은 만든 말이 아니다
가슴으로 한 말이다, 피 뱉듯 한 말이다
동서고금의 시인 작가들이 다 생을 채색하며 살다 갔지만
그들이 남긴 수천수만의 미사여구도 읽고 난 뒤 수삼일 안에
캄캄한 페이지 안에 갇힌다
그러나 어제 암으로 죽은 작가의 말 한 마디는
나의 뇌리에 정으로 박혀 있다
손잡아 길 인도할 사람 없는 칠흑의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간 사람의 말이 또 불면을 데리고 온다
어디 뻘과 진창 구렁텅이 물웅덩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별의 말을 캐며 가는 사람
사람들이 시장으로 달려갈 때 그들은 문장 속으로 걸어간다
사람들이 황금을 암보다 무서워할 때
그들은 문학을 암보다 고통스러워한다
멋지게 잘 사는 꿈 한번 꾸지 않은 사람 있으랴
미식과 숙면과 향연을 마다할 사람 있으랴
그러나 스스로 고통을 수저질하며 사는 사람 있다
먼저 간 작가여
바람이 잎사귀를 흔드는 지상에서
오늘 밤에도 그대 남긴 말
다섯번째 베껴 쓰는 사람
여기 있다
* 문학이 암보다 고통스럽다
작고한 소설가 박영한이 죽기 전에 한 말.
[출처] 이기철 시인 5|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