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는 많은 기능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유리창을 닦아주는 와이퍼가 있고, 유리창의 먼지를 벗겨주는 워셔액 분사기가 있습니다.
냉난방을 조절하는 에어컨도 있고, 시트의 온도를 조절하는 열선도 있습니다.
내비게이션도 있고, 속도를 조절하는 쿠르즈 컨트롤도 있습니다.
방향을 유지하는 자율 주행 장치도 있고, 차량의 상태를 알려주는 계기판도 있습니다.
차선을 변경하는 깜빡이가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대부분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기능입니다.
그런데 깜빡이는 운전자는 물론 주위에 있는 차를 위한 기능입니다.
옆 차선의 차가 나의 차선으로 오겠다고 신호하면 나는 속도를 줄여서 올 수 있도록 배려합니다.
내가 옆 차선으로 가고 싶을 때 신호하면 뒤에 오는 차도 속도를 줄여서 배려해 줍니다.
비상등도 있습니다. 양쪽 깜빡이가 모두 켜지는 상황입니다.
앞의 차가 비상등을 켜고 있으면 속도를 줄이고, 뒤에 오는 차를 위해서 똑같이 비상등을 켭니다.
그렇게 하면 큰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뒤에 차가 있든 없던 상관없이 방향을 바꾸려면 깜빡이를 켜는 습관을 익히면 좋습니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면 위험하기도 하고, 짜증이 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깜빡이는 중요합니다.
깜빡이가 필요한데 지켜지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저는 국회에서 그런 모습을 종종 봅니다.
증인을 불러놓고 질문하면서 증인의 답변을 잘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증인이 답변하는데 큰 소리로 윽박지르기도 하고, 야단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의원이 질의 하는데, 상대 당의 의원이 끼어들기도 합니다.
차가 엉켜서 교통의 흐름이 엉망이 되는 것처럼 국회의 운영이 난장판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학급회의 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회의 할 때도 가끔 깜빡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목소리가 큰 분들이 있습니다.
오랜 경험과 연륜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회의 중에 가끔 안타까운 때가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예전에 해 보았는데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힘만 들고 효과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분위기가 가라앉기 마련입니다.
왼쪽 깜빡이를 켜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진행자는 방향을 정해 주면 좋습니다.
먼저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 좋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인들에게 방향을 정해주고 있습니다.
코린토인들 사이에 차가 엉켜서 오도 갈 수 없는 것처럼 분란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를 이렇게 합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러니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로지 자라게 하시는 하느님만이 중요합니다.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나 같은 일을 하여, 저마다 수고한 만큼 자기 삯을 받을 뿐입니다
.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고, 여러분은 하느님의 밭이며 하느님의 건물입니다.”
이보다 확실한 방향 설정은 없습니다.
이런 방향을 망각하면 공동체에 갈등과 분열이 생기곤 합니다.
성직자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등대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파수꾼은 악의 세력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말씀의 등불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성직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수도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야 합니다.
수도자는 이 세상에서 천상의 삶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수도자의 침묵과 기도에서 믿음의 향기, 희망의 향기, 사랑의 향기가 나와야 합니다.
교우들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교우들은 말과 행동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키우는 분은 하느님이심을 늘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출처 : 우리들의 묵상/체험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