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연중 제19주일
복음: 마태 14,22-33: 풍랑에 시달리는 배
1. 하느님의 현존은 “살랑거리는 바람” 안에
오늘 제1독서(1열왕 19,9.11-13)에서 엘리야는 호렙 산에서 하느님을 기다린다.
그분은 “크고 강한 바람에도, 지진에도, 불에도 계시지 않고, 부드럽고 조용한 소리 속에”(1열왕 19,12참조)
나타나신다.
엘리야는 그 소리를 알아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다(13절)
이는 하느님의 현존 앞에서 경외의 표시이다.
이 대목은 하느님이 “권능의 폭풍”이 아니라, “사랑의 친밀함”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느님은 인간의 삶 속에서, 큰 사건보다 작은 충실함 안에 현존하신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느님은 외적인 굉음 속에서가 아니라, 영혼의 고요함 속에서
말씀하신다.”(Hom. in 1 Regum 19 의역)라고 하였다.
따라서 기도와 침묵의 내적 공간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없다.
하느님은 오직 사랑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그 현시는 구원을 위한 자비의 행위이다.
2. 예수님: 풍랑 위에 서 계신 하느님의 아들
복음(마태 14,22-33)은 그 하느님의 현존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장면은 단순한 기적의 시범이 아니라, 하느님께만 속한 주권의 표징이다.
시편 77,20은 이렇게 노래한다. “당신의 길이 바다를, 당신의 행로가 큰 물을 가로질렀지만 당신의 발자국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다는 것은 바로 야훼의 현존(theophania)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즉, 그분은 단지 인간의 스승이 아니라, “자기 백성과 함께 바다를 건너시는 하느님”(탈출 14,21-22)의 완전한 현현이시다.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로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다의 격랑 위를 걸으심으로써, 피조물 위에 주권을 가지신 분임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나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이름을 드러내신다.”(In Matthaeum 14,27 의역)
예수님의 “나다.”(ἐγώ εἰμι)는 단순한 자기 확인이 아니라, 탈출 3,14의 “나는 있는 나다.”(Ἐγώ εἰμι ὁ ὤν)의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다시 울려주는 말씀이다.
3. 풍랑에 시달리는 배: 교회의 상징
제자들이 탄 배는 격랑에 휩싸여 있다.
교부들은 이 배를 교회의 상징으로 해석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바다는 세상이고, 배는 교회이며, 바람은 박해와 유혹이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시니 배는 결코 침몰하지 않는다.”(Sermo 75,4 요약)라고 한다.
교회는 역사를 항해하며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나아간다.
때로 주님이 “멀리 계신 듯” 느껴질 때가 있지만, 그분은 언제나 “풍랑 위를 걸으시며” 교회를 향해 오신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27절) 이 말씀은 하느님 백성의 역사를 통틀어 반복되는 구원의 언어이다.
이사야서에서도 “나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이사 41,10)라고 하셨다.
하느님의 현존은 언제나 두려움을 평화로 바꾸는 사랑의 힘이다.
4. 베드로의 믿음과 의심: 교회의 초상
베드로는 용기 있게 “주님,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28절)라고 청하지만,
거센 바람을 보고 곧 의심에 빠진다.
이것이 믿음과 두려움 사이에 선 인간의 모습, 곧 교회의 현실적 초상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바람을 보고 두려워한 베드로는 자신을 보았고, 믿음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나 손을 내밀어 붙잡으신 주님은, 곧 교회의 구원자이시다.”(In Ioannem Tractatus 2,5 의역)
교회의 위기, 세상의 풍랑, 신앙인의 불안 속에서도 그리스도는 손을 내밀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31절)라고 구원하신다.
이는 꾸짖음이 아니라 사랑의 초대이다. 다시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라는 초대이다.
5. 교부적·교의신학적 조명
성 그레고리오는 이 장면을 교회의 역사적 여정으로 해석하며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산에서 기도하시고 제자들이 바다에 있는 것은, 하늘의 주님과 땅 위에 있는
교회의 관계를 보여 준다.”(Homiliae in Evangelia 16,5 의역)
교리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와의 친교로부터 흘러나오며, 그분은 기도 속에서 우리를 위한 중개자로 계신다.”(2609항 요약)
즉, 주님은 “산에서 기도하시며 바다의 제자들을 지켜보시는 분”으로, 오늘의 교회와 신자들을 위해
계속 중개하고 계신다.(히브 7,25)
6. 결론: 믿음으로 걷는 삶
오늘 복음은 말한다.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32절)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함께 계시는 한, 어떤 풍랑도 결코 침몰시킬 수 없다.
믿음이란 풍랑이 없는 바다를 걷는 것이 아니라, 풍랑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걷는 것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믿음은 발이 닿지 않는 곳에서 걷게 하는 손길이다.”(Sermo in Nativitate Domini 3,2 의역)라고
하였다.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다.” 하시는 주님을 알아보고, 그분께 손을 내밀어 붙잡아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도 “진실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33절) 하고 고백하게 된다.
출처 -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글쓴이: 松谷 조덕현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